검찰이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선거개입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원 전 원장과 공모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은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구형받았다.

14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원 전 원장은 국정원의 역할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사이버 여론조작 활동 지시를 통해 선거개입을 주도했고, 이 전 차장과 민 전 단장은 국정원장 지시로 상명하복의 정보기관 지휘체계에서 중대 범행에 장기간 가담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은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수행 보좌가 곧 국가안보라는 국정원장의 그릇된 인식으로 정부·여당에 반대한 정치인과 단체를 모두 ‘종북’으로 규정, 사이버 여론조작 활동을 하며 국가안보 기능에 한정한 국정원법의 원칙과 한계를 넘어선 범행을 저지른 일”이라며 “민주적 의사 형성에 필수적인 자유로운 사이버 토론 공간에 정보기관이 일반 국민인 것처럼 가장해 인위적으로 여론을 조성하며 민주적 근간을 흔든 반헌법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특히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불법 행위가 원 전 원장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원 전 원장이 주재한 전부서장 회의와 지시·강조 말씀 녹취록에 따르면 정보기관 수장으로선 단 한 번이라도 언급해선 안 될 정치관여·선거개입 지시가 빠짐없이 등장한다”며 “직원들에게도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올라갈 수 있도록 적극 활동할 것을 지시하고 국가안보를 넘어 여당을 위한 활동까지도 국정원의 당연한 활동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망각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 업무를 실제로 수행했던 직원들 또한 전부서장 회의 지시사항은 업무에 반영해야 하는 중요 지시사항이므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토대로 심리전단 활동을 위한 이슈·논지를 작성했다. 또한 이 같은 지시사항은 전 직원에게 시달돼 조직적인 인터넷 댓글과 찬반클릭 활동 업무에 활용됐으며 활동 결과는 지휘체계에 따라 국정원장에게까지 보고됐다.

그러면서 검찰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우리의 정보기관은 대통령 직속으로 입법부 통제도 견고하지 못해 국정원의 위법 월권행위를 통제할 방법은 사후적 사법 통제가 유일하다”며 “만약 이런 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기강 문란과 안보역량 약화를 초래하게 돼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선 원 전 원장 등의 책임에 준엄함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 변호인은 “원 전 원장 등과 직원 사이에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공모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고,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과 전부서장 회의 내용도 국정원장의 평소 생각을 정리한 것이어서 직원이 업무에 참고할 수 있으나 직무상 지시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며 “북한의 사이버상 왜곡 선전·선동에 대응하는 활동을 정치관여와 선거개입으로 힐난할 수 없고, 이는 국가안전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정원의 책임이므로 국가안보와 관련한 내용에 대응을 안 하는 것은 국정원으로서 직무유기”라고 반박했다.

이날 원 전 원장은 공판 최후진술을 통해 “내가 국정원장으로 재임할 당시 대선개입 요청을 받은 적도 지시한 적도 없고 취임 후 국정원은 모든 기관과 사회 전 분야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정말 선거개입을 하려고 했다면 선거 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NLL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도 하지 않아 여당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항변했다.

원 전 원장은 이어 “심리전단을 확대한 것은 천안함 폭침 주장 등 북한과 종북 세력이 SNS를 통한 대남 사이버 심리전을 강화함에 따라 정보환경 변화에 대응해 약화된 심리전 역량 강화에 최선을 다한 것”이라며 “국정원의 사이버 방어심리전은 이적 세력을 색출하는 정당한 방첩활동으로 정보활동 일환으로 일부 문제된 게 있어도 선거개입과 정치중립 위반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과 변호인이 내달 8일까지 최종 의견서와 변론 요지서를 제출하면 재판부는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오는 9월 11일 오후 2시 1심 선고를 내일 예정이다.

이범균 부장판사는 “재판부로서도 지난해 첫 재판을 시작하며 정치적 색채를 가능한 한 빼고 법리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며 “지금까지의 공판 기록을 세밀하게 검토해 판결문을 작성하며 후회가 안 남는 올바른 법률적 결론을 내도록 남은 시간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