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반드시 진실로써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 길이 정의의 길이라는 저의 뜻을 분명히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진실 규명을 위해 경찰 간부직을 내려놓고 시민사회 활동과 학업에 정진하겠다던 권은희(40)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돌연 마음을 바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다. 시민후보 추대 형식이나 경선 절차를 통한 출마가 아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전략공천에 의해서다.

이제 더 이상 전 경찰 간부가 아닌 새정치연합 광주 광산을 후보가 된 권 전 과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7·30 재보궐 후보자 공천장 수여식에 참석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진실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보상이 될 수가 없다”며 “지금도 변함없이 정의로운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 끝에 결정했다. 저들이 가로막은 진실을 위해 아직도 밝혀낼 게 많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지난 10일 광주에서 가진 7·30 재보궐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진정성은 진실에 의해 담보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그의 진정성은 지난달 30일 경찰을 사직하며 밝혔던 ‘재보선 불출마’를 입장을 불과 9일 만에 번복하면서 이미 크게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인 광주 지역 재보선 후보로 전략공천이 된 것은 권 전 과장의 경찰 사직 전 그를 시민후보로 추대하기 위해 결성됐던 ‘권은희와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보기에도 뜻밖의 결정이었다.

   
11일 오전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실에서 열린 7·30 재보선 공천장 수여식에 참석한 권은희 광주 광산을 후보가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와 기념촬영 하고 있다.
ⓒCBS노컷뉴스
 
백무현 시민행동 대변인은 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당초 권 전 과장에게 직접 출마를 권유하면서 서울 동작을 지역으로 나와서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 쟁점을 만들길 기대했는데 광주로 출마한 것은 매우 아쉽다”며 “솔직히 살벌하기 짝이 없는 정치판에서 다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권 전 과장의 재보선 출마를 권유한 이유에 대해 백 대변인은 “다음 총선에 비례대표로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그때는 박근혜 정권 말기이고 국정원 진상규명도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어 오히려 명분과 순수성이 더 없다고 생각했다”며 “이번에 국회에 들어가는 게 국정원 사건의 다루는 데 공무원으로서 신분상 제약도 없고 정보 접근성에도 상당히 우월적 지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광주지역 내에서도 권 전 과장의 전략공천이 결코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그가 스스로도 밝힌 것처럼 충분히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정략적인 이해관계로 복잡한 국회에 들어갈 경우 경험할 좌절과 상처가 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광주 내 대표적인 시민정치운동 단체인 참여자치21 오미덕 사무처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후보 자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많지 않을 것이지만 재보선 공천 갈등으로 시끄러운 이런 상황에서 준비 없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많은 염려가 있다”면서 “차후에 (정치인으로서) 준비 과정을 거쳐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시점에서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도 과연 어느 정도 활동력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광주 광산을의 경우 이달 초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보궐선거 전략공천 방침을 정한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난하며 논란의 중심에 선 곳이기도 하다. 지난 6·4 지방선거 때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윤장현 광주시장을 전략공천한 것에 이어 또다시 시민의 민주적 선택권을 박탈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오 처장은 “전략공천은 공당에서 충분히 쓸 수 있는 카드지만 그야말로 전략적인 선택이 돼야 하는데 사실 광주는 공천이 곧 당선이고 안 대표는 지난 시장 선거에서도 사전에 시민과 교감을 못 해 사과했는데 이번에 또 그랬다”며 “ ‘광주는 우리 텃밭이니까 우리 의견에 동조해 줄 거다’는 오만한 자신감에 광주시민은 분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권 전 과장도 광주가 아닌 중앙에서 국민의 선택과 평가를 받도록 해야 국정원 진상규명이라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며 “지역 국회의원의 기득권 싸움에 어떻게 버텨낼 지도 걱정이고 안철수·김한길 대표의 소방수 역할을 하며 특정 정치인의 공천 배제용 일회성 카드로 활용될까 봐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