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사장의 해임 이후 공석 상태였던 KBS의 새 사장으로 조대현 전 KBS 부사장이 선출됐다. 사내 구성원들의 저항이 심할 것으로 예상된 사장 후보인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과 홍성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피했지만 조 후보자 역시 사장 임명까지 녹록치 않은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는 1차 투표에서 과반으로 당선됐다. 홍성규 후보와 2파전 양상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야당추천이사들이 1차 투표부터 조 후보자를 지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야당추천이사는 1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면접 당시 조 후보자는 제작자율성을 많이 강조했다”며 “타당한 인사를 강조하는 등 전반적으로 청사진을 꼼꼼히 제시한 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 행적이다. 조 후보자는 PD 출신으로 이명박 캠프 특보 출신인 김인규 사장 당시 부사장에 올랐다. 지난 2008년 제작본부장 시절에는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가 폐지된 바 있다. 이에 지난 2009년 KBS PD협회 설문조사에서 74%에 불신임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KBS노조)은 조 후보자를 “부적격자”라고 평가하며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KBS노조는 9일 밤 발표한 성명을 통해 “조대현 전 부사장은 정부에 비판적인 시사프로그램을 무력화시키고 KBS를 관제방송으로 전락시키는데 앞장 선 사람”이라며 “KBS미디어 사장 재직 시 거액의 손실을 입힐 수 있는 이벤트 사업을 계약하기도 하는 등 경영능력에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KBS노조는 “KBS사장이 될 수 없는 요소를 두루두루 갖춘 인물”이라며 “게다가 양성수 이사는 오전 면접을 누락했고 이사가 사장후보의 면접에 들어가지도 않고 최종표결절차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심각한 절차적 흠결”이라고 지적했다. KBS노조는 “절차적 하자로 선정된 부적격자 조대현은 KBS에 한 발짝도 들여놓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 조대현 신임 KBS 사장 후보자. 사진=KBS 제공
 
반면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KBS본부)는 여지를 남겼다. KBS본부는 “부적격후보였던 조대현 전 부사장을 선임했다는 것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대현은 김인규 사장과 함께 KBS를 청와대 방송으로 전락시킨 김인규 체제의 핵심인물이고 김인규 체제하에서 TV본부장과 방송 부사장을 맡아 KBS의 프로그램을 망친 장본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KBS본부는 “조대현 씨가 부적격후보라는 딱지를 떼고 정상적으로 사장직을 수행하려면 KBS 구성원들의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특별다수제 등 방송법 개정 입법청원 추진, 취임 1년 후 신임평가, 주요국장 임명동의제 등 국장책임제 도입, 부당인사 원상회복과 인적 쇄신, 대화합 조치를 실시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KBS의 한 이사에 따르면 조 후보자는 면접 당시 국장 임명동의제와 국장책임제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사는 “KBS 구성원들이 충분히 반발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후배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새로운 KBS 만들겠다는 말을 믿고 싶다”고 말했다.

KBS 안팎에선 조 후보자의 경우 KBS본부와 입장을 좁힐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하지만 KBS노조 측의 입장이 강경해 진통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KBS노조 관계자는 “일단 양성수 이사가 오전 면접을 누락하고 사장선임 표결에 참여한 것은 심각한 절차적 흠결”이라며 “KBS본부에서 말하는 자질문제는 절차상 하자의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절차상 문제가 어떻게 해소되겠느냐”며 “조 후보자가 사장에 임명돼도 이는 그의 핸디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S본부는 오늘 오전 11시에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갖고 향후 대책을 논의한다. KBS노조도 오늘 오후 경 집행부 회의를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영·홍성규라는 ‘최악의 길’은 피했지만, 여전히 험로에 놓인 KB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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