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발’[足]에서 시작해서 ‘말’[言]로 끝난다. 심판의 호각소리가 끝을 알려도 괜한 아쉬움에 친구들과 호프집을 찾는 데에는, 응원구호가 여전히 입가에 맴도는 까닭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감동이 있어서다. 그러나 말의 맛은 짧다. 대신 글의 맛은 길다. 축구의 감동을 말에서 글로, 오래토록 남기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축구 칼럼니스트다.

축구 현장을 누비며 전략과 전술, 구단과 선수의 희노애락 등을 고스란히 전하는 칼럼니스트 3인방을 소개한다. 김현회(프리랜서), 손병하(베스트일레븐), 한준(풋볼리스트)이 그들이다. 이들은 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음, 네이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현직 칼럼니스트다. 지난달 29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축구 칼럼니스트가 된 까닭을 먼저 물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셔널리그 고양국민은행은 굉장히 매력적인 팀이었다. 언론 관심이 부족했던 게 늘 안타까웠다. 이 팀을 알리기 위해 내셔널리그 명예기자에 자원했고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팬심’이 너무 과도해 고양국민은행 승격 거부 당시 1인 시위를 했고, 경기장 난입 시위까지 벌이다 내셔널리그 명예기자에서 잘렸다. 글을 실을 곳이 없어져 고민하던 차에 축구 전문지에 입사하게 됐다.”(김현회)

한준은 2002년 한일월드컵, 손병하는 2006년 독일월드컵을 계기로 본격 전문 글쟁이가 됐다. 한준은 “선수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기회가 되는대로 세계 축구 현장에 가보려 한다”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 축구 종사자들과 직접 교류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료를 통해 접하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에 발품 파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김현회 칼럼니스트(왼쪽)와 한준 칼럼니스트.
 

‘재미’와 ‘전문성’, 두 마리 토끼

인터넷 보급과 포털의 성장, 해외축구에 대한 관심과 미디어의 확대는 칼럼에 대한 수요가 증대된 이유였다. 수많은 칼럼 중에서도 스포츠 칼럼의 매력 포인트가 궁금했다. 이들 무엇보다 ‘재미’를 꼽았다.

“글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다. 특히 스포츠는 정치나 경제 같은 분야보다 가볍다. 재미와 흥미가 깔려 있다. 물론 축구도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다룰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재미’라는 요소를 뺄 수는 없다.”(손병하)

“축구 칼럼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축구를 보는 사람들은 삶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재미’를 추구한다. 축구를 다룬 글 역시 재미가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에 치중해 사실을 왜곡하고, 잘못된 의견을 개진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같은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더라도 읽기 쉽게 재미있게 써야 한다”(한준)

칼럼과 기사는 다르다. ‘기사는 주장이 아니다.’ 수습기자가 흔히 듣는 고언이다. 도처에 깔린 숱한 팩트를 취사선택한다. 실로 바늘귀를 꿰듯 팩트를 엮는다. 스트레이트 기사 작성법이다. 칼럼은 어떨까. 3인방에게 ‘칼럼론(論)’을 물었다.

“축구 전술을 쭉 나열한다던가, 기자회견장에서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라는 식으로 쓰는 건 칼럼이 아니다. 전술을 분석하고 여기에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야 한다. ‘이 전술은 이 팀과 맞지 않는다’, ‘이 전술에 필요한 건 이 선수다’라는 확고한 자기 견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저 포털에 자기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쓰면 그게 칼럼이라고 착각한다. 한 달에 20편 가까운 글을 연재하고 있지만 그중 ‘칼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김현회)

한준은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자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칼럼을 쓸 수 있는 단계에 오르기 위해선 그 분야 전문가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며 “이론적인 부분과 현장성은 물론, 해당 분야 및 사회 전반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칼럼니스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축구 칼럼니스트는 직업이다

축구종가 잉글랜드 출신 축구선수 게리 리네커(Gary Winston Lineker)는 은퇴 후 전문 해설가로 자리매김했다. BBC 장수 프로그램 ‘매치 오브 더 데이(Match of the Day)’ 진행자인 그는 각종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며 선수 시절에 버금가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차범근, 조광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칼럼을 기고하거나 박성화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축구 전술에 대한 해박한 필치를 선보였지만 이들 이름 뒤에는 칼럼니스트보다 ‘감독’이 먼저 붙는다. 한국과 축구 선진국,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이웃 일본만 보더라도 전 세계를 누비는 프리랜서 축구 기자 수가 적지 않다. 국내 칼럼니스트는 수입이 불안정하다. 축구 선진국 칼럼니스트는 보통 단어 당 혹은 장 당 고료를 계산한다. 한국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그 글을 통해 그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는 독자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자기 글을 소개하고 싶어 하는 해외 유명 칼럼니스트를 만나 봤으나 고료가 맞지 않아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중요하지만 한국은 그만한 투자를 할 정도의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한준)

이에 대해 김현회는 “한국 칼럼니스트는 대부분 기자라는 직업을 병행하고 있다. 언론 매체에 속해 기사를 쓰면서 포털 사이트와 계약해 부업 형식으로 칼럼을 게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한국은 축구선수가 은퇴하면 지도자를 맡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외국은 은퇴 후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는 이들이 많다. 축구 선진국에서는 칼럼니스트도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축구 칼럼을 가장 편하게,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포털’이다. 브라질 월드컵 기간 동안 네이버 등 포털은 인터넷 지면을 개편했다. 칼럼의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포털 의존도 역시 높아졌다. 포털의, 포털에 의한, 포털을 위한 칼럼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비딱한 시선을 갖고 물었다.

“장단이 있다. 포털 하나만 들어가도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개별 언론사 사이트 방문자 수를 늘리는 일이 어렵다. 마니아들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글이라도 포털에 게재되면 그 수요가 는다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한준)

“포털이 기사를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여론이 좌지우지되거나 이슈 파급력이 달라진다. 좋은 기사라도 포털이 메인 배치하지 않으면 묻힌다. 포털의 기사 배치에 의해 대중의 관심도가 갈린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포털의 기사 배치로 인해 소외받는 선수나 팀 이야기가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장점과 단점 모두 공존한다.”(김현회)

   
▲ 지난 4월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수원과 전남 경기에서 골을 넣은 수원 염기훈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글로만 먹고 살 수 없다? 있다?

포털과의 계약과 수입은 민감한 주제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불안정함’에 대해서는 입을 모았다. 김현회는 “(포털과의) 계약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계약직 신분이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늘 안고 있다”며 “인지도와 칼럼 질에 따라 원고료 차이는 있지만, 예전과 비교해 고료는 인상했고 외고도 많이 늘었다. 수입은 칼럼니스트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밝혔다.

한준도 “기본적으로 장기 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안정성이 부족하다. 고용 안정성을 포기할 만큼 수입이 높은 편도 아니”라며 “(수입은) 매체에 따른 기사별 액수 및 제공 횟수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월 단위 액수에는 칼럼니스트마다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칼럼을 제공 받는 측의 개별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혔다.

손병하 역시 “스타와 무명 선수의 연봉이 크게 차이 나듯 여기서도 스타와 무명의 차이는 매우 크다”며 “외국의 경우 칼럼을 유료로 소비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글쓰기 방식은 우리와 다르지 않으나 시장의 크기가 달라 축구 칼럼니스트 대우에 있어 큰 차이가 난다”고 덧붙였다. 

무기를 개발하라

축구 칼럼니스트를 꿈꾸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최근 18세 축구 칼럼리스트 건국대 임형철 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류 매체의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개인 블로그, SNS, 팟캐스트를 통한 ‘입소문’은 스타 칼럼니스트를 배출한다. 전문 칼럼니스트를 소망하는 이들에 대한 조언을 끝으로 물었다.

“축구만 알아선 곤란하다. 이 직업은 축구란 스포츠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개인 능력으로 소화해 글로 재생산하는 직업이다. 축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다. 또 올바른 시선으로 축구를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역량도 필요하다. 이 두 가지가 우선될 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축구는 그 다음이다.”(손병하)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특정 팀에 편향된 생각과 시선,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칼럼을 쓰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공부해야 한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오락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축구만 알아서는 안 되며 세상을 알아야 한다. 축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독자가 읽어도 이해가 가능할 글을 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한준)

“자신만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미 다수가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리그에 대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리그와 무대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 생소한 남미축구나 아프리카 축구에 대한 지식은 무기가 될 수 있다. 한때 내 무기는 한국 실업축구인 내셔널리그였다.”(김현회)

‘월드컵 바라기’ 지상파, 소외받는 국내 축구
K리그를 위한 축구 3인방의 쓴소리…“K리그 수준부터 높여야”

MBC는 2010년 이래 4년 동안 K리그 생중계를 딱 3번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통계를 보면 같은 기간(2010~2013) KBS는 13번, SBS는 11번 생중계했다. MBC가 눈에 띄게 저조한 수치를 기록했지만 현재 지상파 방송사가 브라질 월드컵에 쏟고 있는 자원과 노력을 고려하면 K리그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김현회 칼럼니스트는 “K리그 시청률이 떨어지는 데 상업성을 띈 방송사가 관심을 덜 갖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축구뿐 아니라 국내 스포츠에 관심을 갖지 않은 채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만 공력을 쏟는다면 결국 모든 국내 스포츠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이 중계권료를 얼마나 더 받을지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K리그가 대중에 더 노출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며 “지상파 방송사가 탐내는 A매치 중계권을 국내 리그 중계와 연계해 판매하는 등 다각도로 콘텐츠 노출에 신경 써야 한다. 무조건 방송사에만 요구할 게 아니라 축구계에서 국내 축구를 더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손병하 기자 역시 K리그 시장 확대를 우선 과제로 꼽았다. 손 기자는 “K리그 시장 확대가 필요하다. 스타 선수를 발굴하고 경기 수준을 끌어 올려 흥미롭게 만들어야 한다”며 “그러면 관중이 늘고 TV로 K리그를 보려는 사람도 많아지게 될 것이다. 중계 카메라와 기업의 눈은 자연스럽게 국내 축구장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준 기자도 “경기력과 경기장 내 분위기 변화를 위해 구성원 모두 노력해야 한다”며 “축구 언론 역시 축구계 일원이기 때문에 축구계 전체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충분한 시청률만 보장된다면 다양한 방식의 광고를 통해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 홍명보 감독이 지난달 30일 귀국 직후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 KBS)
 

K리그가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지난 6월 포항스틸러스 미드필더 이명주(24)가 최고 대우를 받고 아랍에미리트(UAE) 알 아인으로 이적한다는 소식은 국내 축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K리그 내에서 키운 스타가 중동이나 중국으로 이적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손 기자는 “어린 선수들에게 K리그에서 뛰어야 할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며 “K리그 위상을 높여 선수들이 명예와 위상을 갖게 만들든지 아니면 충분한 보상으로 프로란 이름에 맞는 대우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 기자 역시 “K리그는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K리그는 경제적으로 기반이 취약하다. K리그가 선수들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이는 자연 해결될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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