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를 청문회에 세우려 사력을 다하고 있다. 문 후보자를 사이에 두고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대립각을 세웠던 중앙일보가 23일자 신문에서 KBS의 문 후보자 망언 보도를 강하게 비판하며, 노골적으로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1면 <류근일‧서경석‧김동호 등 482명 “문창극 총리 후보자 청문회 해야”>에서 “학계‧언론계‧종교계‧문화계 등 각계 원로‧중진 인사 482명이 22일 성명을 내고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개최를 공식 요구했다”며 류근일‧서경석 등 보수 인사들의 성명서를 전했다.

이들 482명은 “문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검증 과정을 지켜보면서 왜곡보도와 마녀사냥식 인격살인이 진행되는 데 분노와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KBS가 문 후보자가 (온누리)교회에서 한 강연의 일부만 인용해 친일‧반민족으로 몰아간 것은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너무도 중대한 잘못”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내용을 동영상으로 본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KBS의 심각한 사실 왜곡을 고발하고 있다”며 “심각한 사실 왜곡에 의한 오도된 여론몰이로 청문회도 없이 문창극씨가 낙마한다면 우리 사회가 합리와 상식을 외면하고 야만의 나라로 가는 것이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중앙일보 23일치 6·7면
 
중앙일보는 6면 <문 후보 교회 강연 43분 방송 뒤 “청문회 열자” 확산>과 7면 <“KBS 왜곡보도로 중요 사안 잘못 결정해선 안 된다”>를 통해 KBS 보도를 ‘거두절미식 왜곡보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중앙일보는 지난 20일 MBC가 문 후보 관련 긴급대담을 편성한 뒤부터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는 “언론의 머리와 꼬리를 잘라낸 (KBS의) ‘거두절미(去頭截尾)’식 보도가 여론 악화를 부르고, 여기에 여당 인사들까지 우왕좌왕하면서 문 후보자의 거취는 안갯속에 놓였다”며 “그러나 최초 논란을 부른 대목, 즉 문 후보자가 친일사관을 가졌는지 여부를 인사청문회에서 차분히 가려보자는 목소리가 ‘묻지 마 낙마 요구’에 묻혀 있다가 박 대통령의 결단을 앞두고 조금씩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MBC는 20일 문 후보자 관련 긴급 대담을 편성해 문제의 교회 강연(70분 중 43분 분량)을 공개했다. 방송 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그동안 욕 엄청 많이 했는데 미안합니다’라는 등의 글이 쏟아졌다”며 “열흘 가까이 문 후보자 비판 기사가 거의 모든 언론에 쏟아진 만큼 전체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인터넷 각종 게시판엔 20일 이후 점차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댓글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의 ‘문창극 구하기’는 23일자 칼럼에서도 이어졌다. 이철호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은 <총리후보 ‘인격살인’ 악순화 끊자>에서 “지난 주말 MBC가 ‘문창극 총리 후보 긴급대담’을 내보냈다. 그의 교회 강연 풀 동영상을 내보내 6.6%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며 “앞뒤 문맥을 잘라 친일로 몰고 간 KBS와 비교된다. ‘잘 보았다’는 칭찬 글이 MBC 게시판에 넘치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진실에 목마르다는 반증이다”라고 밝혔다.

이 위원은 “자의적 고무줄 잣대로 안대희에서 문창극까지 ‘인격살인’의 야만적 굿판이 꼬리를 물고 있다. 국무총리 적합도를 따지기에 앞서 이는 한 인간을 대하는 예의에 관한 문제”라며 “언론들부터 일방적으로 몰고 가기보다 그냥 팩트라도 제대로 보도했으면 한다. 총리 청문회도 반드시 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 동아일보 23일치 5면
 
이날 중앙일보는 또 다른 보수 언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논조와 판이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문 후보자가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도록 해명 기회를 충분히 가진 뒤 자진사퇴하는 방향으로 설득하고 있는 단계”라는 청와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전망했다. 조선일보 역시 문 후보자 사퇴 여부에 집중하며 청와대 분위기를 전했다.

동아일보는 5면 <“文에 충분한 해명기회 주고 자진사퇴하도록 설득”>에서 “청와대는 문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밟겠다고 버티더라도 지명철회라는 ‘극단적 카드’를 쓰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며 “지금까지 대통령이 직접 지명철회를 한 사례는 2006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뿐”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청와대 안팎에선 늦어도 23일에는 문 후보자가 자신의 거취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귀국 후 문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재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마냥 시간을 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압박했다.

조선일보는 6면 <48시간 두문불출 문창극, 사퇴 방법 놓고 고민>에서 “문 후보자가 조만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뒤 사퇴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총리실 주변에서는 문 후보자가 인사청문회까지 고집하지 않고 중도 사퇴하더라도 최소한 명예 회복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며 문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출구전략 가능성을 분석했다.

동아일보는 기사에서는 문 후보자 자진 사퇴를 전망하는 것에 그쳤지만, 칼럼에서는 달랐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KBS 보도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은 <‘광우병 선동’ 뺨치는 KBS 문창극 보도>에서 “2008년 촛불시위의 불을 댕긴 MBC ‘PD수첩-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안전한가’와 KBS의 문창극 뉴스는 파고들면 들수록 유사점이 드러난다”며 “사실 속에 진실을 교묘히 숨겨 여론을 호도하는 모습이다”라고 밝혔다.

   
▲ 동아일보 23일치 김순덕 칼럼
 
김 위원은 “전파가 노조원 것인 양 노영(勞營)방송으로 불리던 MBC는 그 후 그야말로 뼈를 깎은 끝에 비로소 공영방송답다는 찬사를 듣게 됐다. 길환영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물러난 지금의 KBS는 어쩐지 ‘데자뷔’ 느낌”이라며 “정연주 사장 시절 뿌려놓은 씨가 ‘점령군’으로 되살아나 ‘부역자’ 거세 중이라는 웅성거림이 KBS 안에서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문창극은 첫 희생자일 뿐, 그들의 입맛과 이념에 맞지 않는 누구라도 ‘딱지’만 붙이면 훅 가버리는 납량 공포세상이 도래했다며 모두들 입을 다물려 한다”며 “과거 MBC가 냈던 사과문처럼 ‘잘못된 방송이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는 상황이 이젠 국가기간방송 KBS에 의해 벌어질 판”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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