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주년을 맞은 한국일보가 ‘디지털 퍼스트(Dgital First)’를 선언했다. 60년 동안 종이신문에만 ‘올인’한 한국일보가 종이신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전 세계 미디어가 ‘디지털 혁신’이라는 생존 경쟁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한국 언론계에서 한국일보의 이런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일보는 지난 9일 창간호에 <언론의 미래>라는 특집 면을 냈다. 두 특집 면에는 <2030년 뉴스 소비자의 하루><2030년 한국일보 뉴스룸을 가다> 등의 기사가 실렸다. 첫 번째 기사는 미래 뉴스 소비자의 하루를 보여준 후 “종이신문은 거의 화석 같은 존재가 됐다. 신문을 찍는 언론사는 단 둘뿐”이라고 전망했다. 두 번째 기사는 지난 4월 신설된 디지털뉴스부의 최진주 팀장이 예상한 16년 후 한국일보의 모습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한국일보는 2030년 6월 9일자 아침판을 끝으로 더 이상 종이신문을 발행하지 않는다. 76년 동안 만든 한국일보의 종이신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뜻이다. 기사에서 한국일보의 이런 변화를 이끈 것은 2015년 시작한 ‘디지털 퍼스트’ 전략이다. 한국일보는 “종이신문과 디지털 뉴스 중 이전에는 전자에 방점을 두었지만 이때부터는 후자를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는 올해 준비를 마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펼치겠다는 한국일보의 구상을 보여준다. 이 기사에는 한국일보가 고민하는 “구성원들의 머릿속에 뿌리 박힌 구습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다양한 슬로건”이 나온다. “종이신문 제조회사가 아니라 콘텐츠 생산 회사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종이가 아닌 디지털 기기로 뉴스를 소비한다.”

물론 한국일보의 역사이며 근간인 종이신문을 버리는 건 내부의 여러 반발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는 이렇게 예상했다. “‘단독기사를 다음날 아침까지 묵히지 말자’ ‘디지털에 적합한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취재기자가 기획자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등등 변신을 촉구하는 기자들의 요구사항은 ‘기자가 발로 뛰고 취재를 잘 하는 게 중요하지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16년 후 종이신문을 버리고 완전한 ‘디지털 언론사’로 전환하려는 한국일보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일보는 지난 5월 19일 온라인 사이트인 ‘한국일보닷컴’을 열었다. 기존에 한국일보 기사를 게재하던 ‘한국아이닷컴’과는 콘텐츠 공급 계약을 해지했다. 배경에는 장재구(현재 구속 수감중) 전 한국일보 회장의 지분 문제 등의 요인이 있지만, 한국일보는 이를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았다.

‘한국일보닷컴’을 보면 한국일보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낚시 기사’와의 결별이 가장 눈에 띈다. 기존 한국아이닷컴엔 한국일보 기사뿐만 아니라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낚시성 기사’가 많았다. 다수는 한국아이닷컴 기자들이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를 넣어 만든 트래픽 확대용 기사였다.

새로 문을 연 한국일보닷컴에도 ‘온라인 전용’ 기사가 있다. 그러나 무조건 트래픽을 올리기 위한 검색어 기사나, 똑같은 기사를 일부 표현만 고쳐 발행하는 ‘어뷰징 기사’가 아니다. 종이신문에는 게재되지 않지만, 한국일보라는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 품격(?) 있는 온라인 전용 기사다. ‘클릭, 클린! 반칙 없는 뉴스’라는 슬로건을 건 ‘한국일보닷컴’은 사이트에서 선정적 기사와 유인성 제목, 광고 등을 걷어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온라인을 바라보는 한국일보 구성원들의 시각 변화다. 이전까지 한국일보 경영진과 기자들은 온라인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종이신문 기사를 ‘인터넷한국일보(구 자회사)’에 제공해 콘텐츠 비용을 받는 또 다른 수입원의 하나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종이신문 구독자는 줄어들고, 대다수 독자들은 실시간으로 디지털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자회사가 아니라 편집국 안에 직접 디지털뉴스부를 만든 이유다. 디지털 공간이 더 이상 뉴스 유통채널 중 하나가 아니라, 언론사가 앞으로 살아야할 시장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일보는 한국일보닷컴을 만들면서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디자이너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채용했다. 또한 한국일보는 회사 차원의 디지털 전략을 짜기 위해 디지털전략본부를 신설하고, 황상진 전 부국장에게 본부장직을 맡겼다.

최진주 디지털뉴스팀장은 “한 경제지는 계속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닷컴에 들어가면 선정적 기사, 낚시기사, 지저분한 광고가 나온다. 신문만 예쁘게 만들지 (사이트는) 전혀 바뀐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도 신문만 우리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온라인은) 얼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장기적으로 우리 얼굴이 될 것으로 확실시 되는데 여기엔 ‘똥칠’을 하고, 종이신문에만 ‘분칠’하는 게 의미가 없다. 돈을 벌기보단 우리 명성에 똥칠하지 않고 시작하겠다는 것이 한국일보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최진주 한국일보 디지털뉴스팀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한국일보도 디지털 혁신에 대한 내부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디지털 전략과 관련한 보고서다. 작년 한국일보 사태 끝난 후 11월쯤 시작해서 2월에 발표했다. 정상원 비대위원장, 김주성 부위원장 등 10명 정도가 참여해서 만들었다.

한국일보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점을 우리가 스스로 세워야 하고, 새 주인에게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엔 디지털 전략을 세우고 그렇게 가고 싶어도 회사가 어려워서 못했다. 새 주인이 들어오면 투자를 한다고 하니 우리 스스로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어서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

- 보고서 골자는 무엇인가?
‘디지털 퍼스트’로 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디지털에 맞춰 뉴스룸도 바꾸고, 잡다한 광고 없애고, 어떤 식으로 수익 모델을 실험해보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일보가 디지털에서 치고 나가기 위해서 왜 ‘한국아이닷컴’에서 분리해서 웹 사이트를 별도로 만들어야 하는지도 포함됐다. 또 다른 (닷컴)자회사를 세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운영해야 하는 이유도 있다. 대부분 언론은 자회사가 닷컴을 운영하는데 (자회사)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 본지가 투자하거나 지원하지 않으니, 지저분한 광고가 붙고 낚시 기사를 만드는 거다.

- 보고 결과는 어떤가?
이준희 한국일보 사장도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황상진 전 부국장이 디지털전략본부장(국장급)으로 발령이 나서 회사 차원의 디지털 전략을 짜게 됐다.

   
▲ 한국일보가 온라인 전용으로 만든 월드컵 '선수 카드'. 이미지=한국일보닷컴 갈무리.
 
- 한국일보닷컴 콘텐츠관리시스템(CMS·집배신)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일단 5월 19일까지 (사이트를) 띄어야 했다. 만들어가는 단계라 아직 50%정도밖에 안됐다. 지금은 기능을 그냥 넣어둔 것이지 사용자 편의를 위한 UI, UX가 되지는 않았다. 웹 사이트도 ‘디벨롭’ 할 부분이 많다.

- 한국일보닷컴 CMS 제작에는 어느 정도 비용과 기간이 들었나?
4월에 시작해서 5월 19일 공개했다. 두 달도 안되는 기간이다.

- 기존 종이신문 집배신과 어떻게 연동되어 있나?
(기존) 집배신은 2008년에 만든 거고, 라이센스는 양재미디어가 가지고 있다. 지금은 일단 한국일보닷컴 에디터가 이 집배신에서 승인된 기사를 긁어온다.

신문용으로 만든 집배신은 심각하다. 텍스트밖에 안되고, 사진도 안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연동되어 있는데, 워드로 저장하면 지저분한 html이 생겨서 닷컴에 가져올 때 문제가 된다.

- 앞으로 언론사 집배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최종적으로 닷컴 형식으로 집배신을 바꿔야 한다. 기사가 올라오면 데스크가 승인하고, 바로 (온라인에) 노출돼야 한다. 또 취재 기자들은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직접 사진, 영상도 고르고 넣어야 한다. 취재 기자가 일이 많아진다.

디지털 퍼스트로 가면 기사는 (실시간으로) 계속 나오고, 종이신문은 이 기사들을 모아서 다음 날 내는 거다. 취재 기자 일상도 바뀌게 된다. 지금은 아침 보고하고 지면 기획이 확정될 때까지 취재하거나 쉰다. 오후 2시 반쯤 지면 계획이 나오면 그때부터 기사 써서 마감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디지털 퍼스트에선 낮에 기사를 많이 써야 하니깐 취재할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완전히 종이신문 제작 시간에 익숙해진 것과 비교하면 업무량은 늘어난다.

- 그러면 통신사 기자들처럼 일하게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1보, 2보는 통신사가 하는 것이고, 우리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도 쓴다. 실제 사람들은 낮에 해설기사도 원한다. 그런데 낮에 모바일 네이버에 들어가면 연합뉴스 기사밖에 없다. (종이신문은) 낮에 쓰지 않으니깐 없는 거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뉴스를 낮에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를 보자. 우리 기사는 하나도 안 나오고, 다음날 아침에 종이신문으로 나왔다.

- 기자들이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회사 차원의 보상도 필요하고, 투자가 많이 필요하다. 전에는 하고 싶어도 못했다. 새로 인수자가 되겠다는 쪽은 뉴미디어에 투자를 많이 하겠다고 하니, 그걸 염두하고 하는 것이다. 사기 진작 등은 있어야 한다.

- 편집국 구성원 모두가 이런 방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보고서가 나왔을 때 ‘지금 인원으로 부족하다’ 등의 저항이 있었다. 지금 디지털뉴스팀이 편집국 안에 있음에도, 자기가 할 일은 종이신문이라는 생각을 뿌리 깊게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또 우리 부서를 ‘한국아이닷컴’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이든 분들은 오히려 조심스럽다. 젊은 기자 중에 종이신문 기자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기자들이 있다.

- 한국일보닷컴 DB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한국일보닷컴의 기사 텍스트 DB는 평문(Plain Text)으로 구성된다. 정확히는 리치 텍스트 포맷(Rich Text Format·RTF)이다. 가디언이 최근 공개한 기사 입력기도 RTF다. 가디언도 같은 고민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텍스트가 따로 저장되어 있으니, 다른 포맷에서도 활용하기가 편리하다. 지금 칭송받는 워드프레스는 태그가 들어있는 상태로 저장된다. 사진도 있고 영상도 들어가 있는데 그걸 또 변형하려면 삭제 과정이 필요하다. 또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데 html5 이후에 뭐가 나올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워드프레스는 블로그용으로 만든 거라 하루에 기사 200개씩 내는 언론사에는 맞지 않는다. 나중에 웨어러블 기기에도 기사를 넣어야 하는데 다양한 곳에 활용하기에는 텍스트를 별도로 저장하는 게 좋다.

-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 것인가?
조금 있으면 한국일보닷컴에 멀티미디어 기능을 추가할 거다. 뉴욕타임스 렌즈(Lens) 같이 슬라이드쇼 기능도 넣을 것이다. 또 여러 종류의 기사 템플릿을 만들 예정이다. 같은 내용도 다른 템플릿을 선택하면 모양이 바꿔지도록 개발하려고 한다. 개발 시간이 너무 적어서, 하고 싶은 걸 다 못했다. 아직 할 게 많이 남았다.

우리가 솔루션을 갖고, 우리 개발자를 키우고, 스스로 만들고 싶다. 퀴즈형 기사를 만들고 싶으면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 서울시스템스, 양재미디어 CMS를 사용하면 그 형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워드프레스도 마찬가지다. 더 최적화를 하면 10분의 1 비용으로 현재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스마트폰의 경우도 갤럭시 사양이 더 좋은데도 아이폰이 더 빠른 건 최적화 때문 아닌가.

- 한국일보에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있나?
최근 디지털뉴스팀에서 함께 일할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채용했다. 이전에는 한 명도 없었다. 한국일보는 정말 순수한 종이신문사였다. 온라인은 한국아이닷컴이 모두 알아서 했다.

- 네이티브 광고를 시도할 것인가? 온라인 수익모델이 궁금하다.
처음엔 투자 개념으로 갈 수밖에 없다. 광고 외에 수익원을 최대한 발굴해야 한다. 우리가 디지털 쪽 사업을 해본다든지, 회사 자체 사업과 연계해서 하든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애드버토리얼, 중장기적으로는 네이티브 광고를 생각하고 있다.

종이신문에서는 광고주나 마케터가 원하는 것을 구현하기가 어렵다. 보는 사람도 적고, 젊은 사람이 거의 안 본다. 그러니 만날 하던 특집면만 한다. 그런 거로는 사실 만족스러운 광고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광고는 광고주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네이티브 광고는 그런 차원에서 나왔다고 본다. 기사처럼 광고가 들어가지만, 광고라는 건 확실히 명시한다. 좋은 시도로 보이긴 한다.

(다만) 한국에선 네이티브 광고가 스폰서를 밝히는 게 어려울 수는 있다. 조금 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포털 전송 문제다. 약관 위반 가능성이 있다. 콘텐츠가 가치가 있더라도 포털이 받을 수 있겠는가? 광고주도 포털을 의식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 전 세계 언론계에서 ‘헌집 고치기‘와 ’새집 짓기‘가 한창이다. 많은 기성 언론인들이 신규 매체로 이동하고 있다. 왜 나가서 새로운 (디지털 퍼스트) 언론사를 만들지 않는가?
(아무래도) 새집을 짓는 게 쉽지 않을까. 나와서 만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한국일보에 대한 애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일보라는 매체의 역할이라는 게 있다고 본다. 작년에 고생하면서 지켜낸 매체인데 저버리고 나간다는 생각은 못했다.

(오히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는 혁신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 사람들은 종이신문이라는 자부심과 고정관념이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미국 드라마는 ‘워싱턴 헤럴드’라는 언론사를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에서 미국 기자들은 부장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젊은 기자가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걸 무시한다. 또 기자가 자기 ‘브랜딩’하면서 방송을 하면 “왜 그러냐”고 하는 걸 보고, ‘미국도 똑같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일보는 거기보다 낫다. 스타기자가 돼야 하고, 그게 디지털 시대에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국일보는 한때 ‘4대지’였지만 법정관리까지 가서 바닥을 본 회사다. 종이신문에선 어차피 가망이 없는 것 아닌가? 아직 아무도 안하고 있는데 ‘디지털과 온라인에서 치고 나가자’ 이런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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