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자가 거듭된 논란에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인사난맥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가개조’를 내걸고 시도한 개각은 문창극 사태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모든 언론이 문 후보자를 비판하며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창극의 친정인 중앙일보만 유일하게 이 사안을 ‘정치쟁점’ ‘권력투쟁’으로 바라보고,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비판이 ‘인격살인’이라는 목소리를 전하며 문 후보자를 방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아베 정권이 일본군과 정부가 위안부 모집과 동원에 간여했다고 밝힌 고노담화 무력화 수순에 들어갔다. 고노담화 검증팀이 내놓은 보고서는 담화가 객관적 근거 없는 외교적 타협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는 물론 보수‧진보언론 가릴 것 없이 모든 언론이 일본의 고노담화 ‘무력화’를 비판했다. 한일관계가 급격히 냉각될 전망이다.

다음은 14일자 아침종합신문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고노담화 작성 때 한‧일 간 문안 조정”>
국민일보 <日 ‘고노담화 흔들기’>
동아일보 <日 ‘위안부 강제동원’ 부인 시도>
서울신문 <아베, 고노담화 훼손…한‧일 ‘격랑’>
세계일보 <日 고노담화 교묘한 훼손…정부 “깊은 유감”>
조선일보 <日, ‘고노담화’에 먹칠하다>
중앙일보 <아베, 고노담화 흔들다>
한겨레 <고노담화 ‘외교 산물’ 격하…위안부 과거사 흔들기>
한국일보 <“고노 담화 韓과 문구 조정”…日의 역사 농간>

박근혜 정부 뒤흔드는 문창극 사태, 대통령이 풀어야

‘문창극 사태’로 박근혜 정부가 뒤흔들리고 있다. 경향은 “국정은 ‘비정상’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경향은 “박 대통령은 당초 18명의 국무위원 중 총리를 비롯해 8명을 교체해 2기 내각을 출범시키려 했지만 ‘문창극 사태’로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는 아직도 국방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며 “안보 최일선인 국가정보원장 공석 사태도 한 달 가까이 됐다. 일부 장관 내정자의 경우 각종 의혹이 양파껍질처럼 불거지면서 2기 내각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처음으로 넘어서는 등 여론은 악화일로다.

결국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명철회를 하든 사퇴를 종용하든 박 대통령이 해결해야한다는 것이다. 경향은 “사상 첫 총리 후보 지명철회 등 박근혜 대통령의 ‘특단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총리 인사권자인 대통령 결단만이 소모적인 국정 마비를 막을 수 있다. 문 지명자가 버티는 것도 박 대통령이 ‘귀국 후 검토’라는 여지를 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27면
 

동아일보도 사설을 통해 “문 후보자는 청문회를 통해 ‘친일 반민족분자’라는 너울을 벗겨내고 싶겠지만 인사청문회가 공직 후보자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는’ 자리는 아니다”며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을 확신하고 새누리당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즉각 청문 요구서를 국회에 보내기 바란다. 그렇지 못하다면 조속히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민의를 따르는 국정운영”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자성과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문창극 후보자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주춤하는 사이 문 후보자는 ‘셀프 청문회’를 벌이고 있다. 문 후보자의 출퇴근길은 기자들과 벌이는 ‘청문회’ 현장이다. 20일 문 후보자는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날 있었던 국회 대정부질문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투르크메니스탄 순방, 일본의 고노담화 검증 발표 등 국정 현안 하나하나를 ‘만기친람’하듯 거론하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회견 아닌 회견은 20분 간 이어졌다.

문 후보자는 전날인 19일에도 기자들과 만난 퇴근길 자리에서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을 존경하는데 왜 저보고 ‘친일이다, 반민족적이다’라고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며 친일 식민사관과 위안부 발언, 민족성 비하 논란 등에 대해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적극 해명했다.

   
한겨레 7면
 

한겨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전날에 이어 20일 이틀 연속 역사관 논란 등에 대해 20여분씩 발언하는 등 적극 해명에 나섰다. 야당은 물론 정부·여당까지 등을 돌려 인사청문회 통과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문 후보자가 출퇴근 때 언론을 통해 사실상 ‘자체 청문회’를 여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경향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셀프 인사청문회’를 방불케 했다”고 전했다.

세계일보는 문 후보자의 이런 태도를 두고 ‘원맨쇼’라고 비판했다. 세계는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친일사관 논란을 불식시켜 반전을 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라면서 “격한 감정을 토해내고 국가 현안에 대한 입장까지 밝혀 ‘희화화’를 자초하고 있다. 고립무원에 처한 그로선 명예회복을 명분으로 국회 인사청문회 관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싸늘해진 여론이 돌아서기엔 한참 멀리 왔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역시 그의 셀프 청문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전했다. 동아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연일 해명하고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여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동의안 재가를 미뤄 자진사퇴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라며 여권에서도 이미 문 후보자에 대해 등을 돌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보도 책임자 문책해야” 문창극 지키는 외로운 중앙

모든 언론이 문창극 후보자를 비판하고 나선 가운데 문창극 후보자가 ‘주필’을 지낸 중앙일보만이 유일하게 문 후보자 지키기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기사 세 개를 털어 문 후보자를 적극 방어했다.

중앙은 <정쟁에 권력투쟁에 휘둘린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이번 사태를 ‘정치권력 주체들 간의 갈등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중앙은 “문 후보자는 언론인 시절 강한 보수 성향의 칼럼을 많이 써 평소 야권 인사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지난 10일 청와대가 문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자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극우 꼴통 시대가 열렸다. 낙마를 위해 총력 경주하겠다”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중앙은 “이념 성향의 문제가 ‘친일’ 문제로 둔갑한 것은 11일 KBS의 보도가 계기가 됐다. KBS는 교회 특강 내용을 발췌 보도하면서 문 후보자가 일제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며 “여론이 악화되자 새누리당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7·14 전당대회와 7·30 재·보선을 앞두고 있어 여론 상황에 극도로 민감한 상태”라고 전했다.

중앙은 또한 새누리당 비주류가 “문 후보자의 사퇴가 김기춘 실장의 동반 퇴진으로 이어져 기존 당·청 질서가 바뀌기를 내심 기대한다”며 “평소 김 실장이 당의 시어머니 역할을 한다며 불만을 터트려왔던 비주류는 문 후보자를 엄호하는 데 당력을 소진하지 말고 차라리 인적 개편의 불쏘시개로 삼자는 계산”이라고 전했다. 중앙은 “새누리당에서조차 문 후보자 발언의 진상을 가리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 채 “여론이 나빠졌으니 물러나야 한다”는 정치 논리가 가득하다”며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이 보수 성향이란 이유로 공격받고 있는 문 후보자를 방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공세 대열에 가세하는 자기부정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비판한다.

   
중앙일보 5면
 

중앙은 또한 조용중 전 연합통신 사장,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황경춘 전 AP통신 서울지국장 등 원로 언론인 모임인 대한언론인회가 회원들은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모임을 갖고 ‘문창극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발표한 것을 상세히 전했다.

이 자리에서 대한 언론인회 회원들은 “일부 언론이 편파보도를 해서 국민들을 화나게 만들어놓고, 그 조작된 여론을 빙자해서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본인한테 소명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 “문 후보자가 총리가 되든 어쩌든 완전히 인격살인을 하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편집한 교회 강연을 보고 친일이라 하기 때문에 전체 1시간10분짜리 동영상을 다 봐야 한다”며 “청문회에서 전 국민에게 생중계를 하든지 해서 전체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팩트로 판단해야 한다” “문 후보자가 우파인 건 확실하지만, 어떻게 우파가 친일파가 될 수 있느냐” 등 문 후보자를 방어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들은 심지어 KBS 보도 책임자를 문책해야한다는 주장까지 했고, 중앙일보는 이들의 목소리를 상세히 전했다. 대한언론인회 회원들은 7개 항으로 된 결의문에서 이들은 “무책임한 보도로 국민을 기만하고 여론을 오도한 데 책임 있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엄중한 경고와 응분의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며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동영상을 직접 들어본 많은 사람들은 이 보도가 전체 문맥을 고의적으로 거두절미한 심각한 편파 왜곡 기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문 후보자의 친일 논란은 지난 11일 KBS가 9시 뉴스를 통해 문 후보자가 과거 교회 강연에서 일제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발언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증폭돼왔다”고 밝혔다. 중앙은 또한 “KBS는 현재 사장이 공석인 리더십의 혼돈 상태다. 길환영 전 사장이 지난 5일 이사회에서 해임되고 이를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이를 재가, 현재 사장 공모절차(23~30일)를 밟고 있다. 길 전 사장의 사퇴를 주장하며 파업에 들어갔던 노조는 지난 6일 파업을 푼 상태”라며 이번 문창극 사태를 파업으로 빚어진 KBS 혼돈 사태의 일환으로 파악하는 태도를 보였다.

고노담화 검증팀 “고노담화는 정치적 타협” 결론…한국정부‧언론 반발

일본 고노담화 검증팀이 20일 일본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담화 발표 전 한일 사이에서 문안 ‘조정’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노담화발표 전날인 1993년 8월3일 일본 외무성, 주일한국대사관, 주한일본대사관과 한국 외무부 사이에 집중적으로 문안조정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은 당시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일본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총리에게까지 보고됐다.

보고서는 또한 “(담화 작성 당시) 한국 정부의 의향과 요망에 대해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거부하는 자세로 문안 조정에 임했다”며 담화의 토대가 된 위안부 증언에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입증 조사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위안부 관련 항목에서 구체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조정’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위안부 모집 주체에 대한 담화 문안의 구체적인 표현과 관련, ‘군의 의향(意向)을 받은 업자’로 명기하자는 일본 측과 ‘군의 지시를 받은 업자’로 표기하자는 한국 측이 조정에 나서 ‘군의 요망(要望)을 받은 업자’라고 표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위안소가 '군의 요청에 의해 설치됐다'는 내용도 한국과 조율을 거쳤다고 말했다. 보고서에는 ‘양국이 문안 조정 사실을 대외 공표하지 않는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보고서는 이처럼 협의 과정을 시간 순서로 상세하게 언급했고, 또한 구체적 표현 하나하나까지 언급했다.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고노담화가 객관적 사실이 아닌 정치적 타협에 의해 탄생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고노 담화 발표 이후 한국 정부가 법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5년 발족시킨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에 한국 정부가 당초 찬성했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위안부 문제가 이미 끝난 문제이며, 한국정부도 이에 동의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정부는 크게 반발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면서 이를 검증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행위다. 그럼에도 검증을 강행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일본 측 보고서의 세부 내용에 대해 우리의 평가와 입장을 별도로 분명하게 밝힐 것이며, 국제사회와 함께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언론 인터뷰와 성명 등을 통해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반박했다. 외교부는 고노담화가 정치적 조정을 거쳤다는 보고서 내용에 대해 “당시 우리는 (군 위안부 동원의) 진상규명은 교섭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견지했다. 그런데도 일본 측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비공식적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 국민일보 2면
 
국민일보는 “또 위안부 동원에 대한 진실 파악에 있어선 '우리 정부의 의견'이 중요했던 게 아니라 당시 조사대상이던 16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 그 자체가 어느 의견이나 문건보다도 더 강력한 증거라는 입장”이라며 “일본도 피해자 증언을 청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증언 청취를 도와준 우리 정부에 사의를 표명했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외교부는 일본이 보고서에서 자신들이 설립한 아시아여성기금에 우리 정부가 수용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한 대목도 사실 왜곡이라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당시 우리 정부는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책임 인정이 있어야 한다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기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데 대해 분명히 반대했다. 이런 내용으로 1997년 1월 11일에 대변인 성명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인식도 피력했었다.

고노담화 발표 당시 장관이었던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고노 담화 발표를 앞두고 한일 간에는 교섭이나 협상이 없었다. 일본이 문안을 통보해 와 한국의 의견을 줬을 뿐”이라며 “(의견 전달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필요한 절차”라고 설명했다.

한 전 장관은 “한국이 문안을 통보받은 뒤 의견을 줬다고 해서 고노 담화가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고노 담화가 한국 정부의 요구 때문에 나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만큼 당시 일본 정부가 허약하고 형편없었다는 걸 자인하는 셈이며 이는 일본이 ‘누워서 침 뱉기’ 하는 셈”이라고 반박했다.

담화 발표 당시 외무부 아주(亞洲)국장이었던 유병우 전 주터키 대사도 “단언컨대 일본과 문안 교섭과 같은 정부 간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 전 대사 역시 “당시 ‘금전 보상은 필요없다, 진실 규명과 책임을 인정하라’는 한국 요구에 외교적 수세에 몰린 일본이 스스로 고노 담화를 내놓은 것”이라며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일본 정부가 인기 영합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치졸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선은 “일본 정부가 20일 발표한 검증보고서에 대해 짜맞추기 조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고노 담화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기보다 한국의 요구로 만들어진 억지 담화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며 조선일보는 보고서가 네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3면
 
조선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은 수많은 피해자의 증언과 문서를 통해 확인된 역사적 사실”인데도 “보고서는 한·일 간 외교적 타협의 산물로 고노 담화가 발표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외교적 교섭 내용을 일시별로 구체 서술, 마치 ‘밀실 야합’에 의해 고노 담화가 만들어진 듯한 인상도 준다”고 문제점을 짚었다.

조선은 고노 담화가 작성된 것은 일본 내에서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됐다는 문서가 발견된 것이 직접적 계기였는데도 검증팀이 방위연구소의 문서는 물론 담화의 근거가 된 각종 문서에 대해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자기들 입맛에 맞는 문서만 읽고 조사를 끝냈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선은 또한 고노 담화 발표 이후 위안부 문제와 관련돼 500건 이상의 자료가 새로 발견됐는데, 검증팀은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마지막으로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 검증팀이 중립적인 법조인·교수·학자·언론인 등 5명이며 이 중 여성이 3명으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전문가는 ‘위안부는 공창제가 전쟁터로 옮겨진 것뿐’이라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해온 극우파 학자 하타 이쿠히코(82)씨가 유일했다”며 검증팀이 비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고노담화 수정” 의도 없다? 못 믿겠다

이번 검증 보고서를 두고 일본은 공식적으로 ‘고노담화를 수정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담화를 수정하지 않고 계승한다는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무력화를 위한 수순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경향신문은 “아베 정권은 그동안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검증을 계속해왔다. 이는 고노담화를 사실상 ‘빈껍데기’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부린 ‘꼼수’라는 것이 외교가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경향은 “이번 검증 결과는 두고두고 불씨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보수 우익세력에 담화 폐기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셈이 됐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담화내용을 지속적으로 부정해온 일본 보수세력들이 이번 결과를 들이밀며 ‘고노담화는 협상의 산물일 뿐 진실이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고노담화를 승계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정부 안에서도 담화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담화를 발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 경향신문 3면
 
동아일보 역시 “보고서는 고노 담화가 한일 정부의 정치적 협상물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며 “일각에서는 ‘전후 체제 탈피’를 향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국민 기억 ‘재프로그래밍’ 전략의 하나로 이번 발표를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역시 “세세한 내용은 어찌 됐든 이번 보고서는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전 조율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담화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서울신문은 “고노 담화가 공동화(空洞化), 무력화될 공산이 커졌다”며 “아베 총리가 헌법에 금지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각의 결정을 통해 행사를 용인함으로써 헌법 9조를 공동화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노 담화의 성립 자체가 마치 한·일 정부의 합작품인 것처럼 보고서를 냄으로써 담화가 공동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일본 정계의 중진인사의 말을 전했다. 헌법 개정의 절차를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여부를 국민들에게 물어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각 결정이라는 꼼수를 통해 우회하려는 아베 정권의 정치 수법이 고노 담화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고노 담화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해 결정된 것처럼 이미지를 조작, 위안부 문제를 호도할 우려가 커진 것도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다”며 “고노 담화 보고서는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증언을 청취하는 등의 절차는 밟지 않았다. 따라서 강제성 여부를 재론할 여지는 없지만 당시 양국 정부의 의견 교환을 공개함으로써 마치 담화 작성에 한국 입김이 작용했다거나 나아가 “한국에 당했다, 속았다”거나 “자학 외교”라는 우익 성향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의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 서울신문 3면
 
한국일보는 “일본 정부가 20일 발표한 고노 담화 검증 결과는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부 강제 연행에 간여했다는 역사적 사실보다 담화가 나오기까지 한일이 물밑에서 벌인 문구 조정 작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담화 문구가 어떤 영향력으로 바뀌게 됐는지 조목조목 따졌고, 그래서 담화를 둘러싼 정상적인 외교 과정이 마치 정치적인 타협으로 비치도록 한다”며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가 주체적으로 판단했다고 명시했고 이날도 일 정부는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부가 사실상 담화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 무력화시키려는 교묘한 시도를 벌이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노담화, “아베가 주연 일본 우익들이 조연”

이번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가 유신회 등 일본 우익집단과 산케이신문 등 일본 우익언론들이 아베 정권과 합작품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계일보는 <아베가 주연 우익이 조연>이라는 기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오래전부터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담화’ 흠집 내기에 집요하게 집착해왔다”며 아베 총리가 제1차 내각이던 2007년 3월 쓰지모토 기요미 의원(민주당) 질의에 대해 “정부가 발견한 자료들 중 군이나 관헌(官憲·관청)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답한 점을 예로 들었다. 이는 ‘감언, 강압에 따라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를 모집한 사례가 많이 있고 관청 등이 이에 직접 가담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고노담화를 정면 부인하는 말이다.

아베 총리는 이어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각의 결정과 고노담화는 함께 고찰되어야 한다”며 고노담화의 수정론을 제시한 적도 있으며, 같은 해 11월 4일 미국 한 지역신문에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신문 광고에 국회의원 4명과 함께 참여했다. 이들 의원은 모두 아베 내각에서 각료가 됐다.

세계일보는 “아베 총리는 이번 고노담화 검증을 ‘지휘’했다. 그는 지난 2월20일 중의원에서 일본유신회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의원이 “고노담화를 검증하라”고 계속 추궁하는 것에 마뜩해하던 스가 요시히데(管義偉) 관방장관에게 3차례나 채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세계일보는 또한 “일각에서는 우익정당 일본유신회가 국회에서 주도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산케이신문이 고노담화 수정 여론몰이에 가세하면서 검증 파동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며 “아베 총리가 이 시나리오를 짰음은 자명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 세계일보 2면
 
국민일보 역시 “고노 담화에 대한 검증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과 일본유신회, 산케이신문의 합작품”이라며 “검증을 이끌어내기 위해 3자가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짠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강경우익 성향인 산케이는 2012년 12월 말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고노 담화 작성과정에서 한·일 간에 물밑 협의가 있었다'는 등의 보도와 사설을 줄기차게 쏟아냈다. 이후 우파 진영이 담화 수정 문제를 공론화하며 여론몰이에 나섰고 정부도 입을 맞춘 듯 이에 응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또한 “지난 2월 2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우익 야당인 일본유신회 야마다 히로시 의원이 정부를 상대로 고노 담화 검증 의사가 있느냐고 질의하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검토하겠다"고 발언한 게 검증의 시발점”이라며 “사실상 '주문 제작'된 질의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민일보는 “아베 총리부터도 총리 취임 전에 고노 담화 수정 필요성을 여러 차례 제기했었다. 그는 2월 24일 담화 검증 문제를 제기한 야마다 의원을 치하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4일 뒤에는 스가 장관이 고노 담화 검증을 위한 조사팀을 정부 내에 설치하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등 이번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 작성이 갑자기 이루어진 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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