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지난 20일 오후 문창극 총리후보자에 대한 긴급 대담회를 갑작스레 편성해 방송했다. MBC는 ‘문창극 후보자의 자격 논란을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며 긴급편성 취지를 밝혔지만, 논란이 된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전체를 내보내고 사회자가 거듭 “편집된 영상이 아닌 전체영상을 보니 뭐가 다르냐”고 묻는 등 문 후보자를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MBC는 20일 오후 9시 55분부터 약 2시간 동안 <긴급대담 :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을 편성해 방송했다. 이로 인해 원래 방영 예정이던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와 <7인의 식객>은 결방됐다. 김상운 MBC 논설실장이 긴급대담의 진행을 맡고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이진곤 경희대 객원 교수,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유창선 정치평론가가 패널로 참여했다.

MBC가 이 날 방송에서 문창극 후보자의 교회 강연 영상 전체를 내보내 논란이 일었다. 손석춘 교수는 “공영방송 MBC가 귀한 시간동안 저런 동영상을 오래 틀어도 좋은지 모르겠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홍성걸 교수는 “KBS가 일부를 발췌해서 트는 건 괜찮고 MBC를 전체 다 트는 건 안 되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단순히 ‘시청자가 다 보고 판단하라’는 취지로 동영상을 틀었다고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김상운 논설실장은 패널들에게 “본인 해명을 듣지 않고 (청와대가) 사퇴해라,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문제라는 이야기가 있다” “(문 후보자의 말이) 문맥과 상관없이 발췌된 말로 보나. 문 후보자의 진의가 조선민족이 게으르다고 하는 말이었다고 보나” “발언 모두를 들어보니 일제식민지를 정당화하는 발언이었다고 보나, 아니면 이번에 제대로 잘해보자는 입장이었다고 보나” 등의 질문을 했다. 김 실장은 대담을 마무리하면서도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실제 시청하신 내용을 짚어보고, 비교하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 20일 MBC ‘긴급대담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 갈무리
 
결국 이번 긴급대담을 통해 문 후보자의 발언을 왜곡‧편집된 측면이 있는 ‘논란거리’로 만들면서 “청문회에서 이를 검증해보자”는 식으로 여론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 후보자를 ‘방어’하는 측면에 섰던 홍성걸 교수와 이진곤 교수는 이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

홍성걸 교수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고 사퇴시키는 것이 나라 망신”이라며 “논란거리가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도산 안창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해서 나라가 망했다’는 말을 했다. 똑같은 말인데 문창극 후보자가 하면 친일파가 되고 안창호가 하면 애국적인 발언이 되냐”며 “본래의 뜻은 영상 보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진곤 교수는 “(문 후보자의 말로 인해) 국민들이 자극 받고 분개할 만하다”면서도 “그렇다고 ‘끌어내려라’하는 것은, 자격에 미달된다고 여론과 언론의 단죄를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런 식으로 비난할 것이 많을수록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따져보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반면 손석춘 교수는 “이런 사람이 총리 후보자가 되어 청문회를 연다는 것 자체가 망신살스럽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청문회가기 전에 사퇴하는 주장은 그래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요구다. 대통령이 문제되는 발언에 대해 모른 채 임명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알고 나서도 지명 철회를 안하는 것은 대통령의 생각도 비슷하다는 이야기 아닌가”라고 말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 역시 “아무나 청문회를 해도 상관없을 만큼 대한민국이 한가한 나라가 아니다”며 “어느 정도 단계까지 올라온 사람을 상대로 검증을 해야 의미가 있다. 문 후보자는 국민 검증에 의해 이미 총리후보자로서의 자격이 상실됐다”고 주장했다.

   
▲ 20일 MBC ‘긴급대담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 갈무리
 
패널들은 문 후보자의 발언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현저한 차이를 드러냈다. 홍성걸 교수는 문 후보자 발언의 문제를 ‘표현의 문제’로 바라봤다. 홍 교수는 “전관예우도 아니고 칼럼 두어개에서 나온 표현의 문제, 교인들을 상대로 강연한 내용의 이야기를 가지고 친일파라고 단정할 수 있냐”며 “40년 기자생활 한 사람의 역사관과 가치관을 판단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몇 줄 나온 거 가지고 친일파라 단정하고 국민들 여론을 들끓게 했다”고 말했다.

이진곤 교수도 “문창극 후보자도 결국 ‘극일(일본을 극복)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보는 방향은 같은데 방법론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며 “문 후보자가 표현을 하는데 있어 부주의했고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는데 곡해나 왜곡이 있었던 것은 맞는데 이걸 문 후보자의 본질이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안 된다”고 밝혔다.

반면 유창선 평론가는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문 후보자의) 골격, 논리 틀이 식민사관과 대동소이하다”며 “위안부 발언, 제주4.3 폭동으로 규정, 6.25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한 것도 있다. 셀프 교수 임용 등 도덕성의 문제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며 “또한 이런 문제를 대하는 문 후보자의 기본적인 태도와 자세는 고소하겠다, 사과할 거 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유 평론가는 “국민 정서를 기본적으로 읽을 능력이 없고, 국민 정서를 읽는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결격사유가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교회 내의 강연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홍성걸 교수는 “문 후보자의 발언은 종교인의 간증과 같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저 분의 발언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말이라면 나도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온누리교회에서 교인들에게 한 말 아니냐”며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간증으로 봐야한다. 총리 지명되고 나니 간증 발언을 앞뒤 맥락 다 잘라 친일파고 역사인식 문제 있다고 매도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진곤 교수는 “문 후보자가 하나님의 역사를 보라고 하면서 지나치게 (민족의 역사를) 과잉비하했다”며 “그렇다하더라도 자기들끼리(교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가 굳이 정색해서 민족반역자라고 흥분할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

반면 손석춘 교수는 “그가 교회장로로 머물러 있었다면 문제가 안 되지만 총리로 나서면서 국가를 기본부터 바꾸겠다고 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창선 평론가는 “설사 간증으로 인정한다 쳐도 문 후보자는 서울대 강의에서도 위안부 사과 필요없다는 말을 했다. 그것도 종교적인 간증이냐”며 “문 후보자의 말은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하게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문 후보자의 철학”이라고 주장했다.

패널들은 문 후보자의 발언을 두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펼쳤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했다. 홍성걸 교수는 “총리를 임명할 때 여야 지도부에게 미리 통보해서 조율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협치의 시대에 통치를 하는 방식을 바꿔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진곤 교수는 “대통령의 수첩에 의존하는 인사는 안 된다. 인선과정에서 그 사람들을 누가 천거했는지, 실명으로 기록에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유창선 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너무 자기 편만 고집하다보니 사람을 쓰는 폭이 제한되어 있다. 더 넓게 보고 넓은 범위에서 사람을 찾아야한다”고 밝혔다. 손석춘 교수는 “박 대통령에게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을 발탁하라는 건 무리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대선 때 박 대통령 주변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들과는 왜 함께하지 못하나”라며 “그런 이들과 남은 임기를 같이해야 국민들이 내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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