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16일로 내정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제출은 기약이 없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은 문 후보자 임명동의안 재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사실상 청와대가 문 후보자에게 자진사퇴를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임명 철회는 청와대가 국무총리라는 자리를 놓고 제대로 된 검증도 안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문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를 일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 후보자는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안중근 칼럼을 소리 내어 읽으며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안중근과 안창호 선생”이라고 밝혔다. 이는 자신을 둘러싼 친일 역사관 논란을 정면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퇴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여러 차례 밝혔다.

결국 지금 상황은 청와대가 국무총리를 지명했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화들짝 놀라 이를 접으려 했는데, 정작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하지 않고 버티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의 인사시스템의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사 참사’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가 눈에 띈다.

   
▲ 조선일보 6월 19일자. 5면.
 
사실 조선·동아일보는 그동안 문 후보자에 대해 반대하는 기류를 형성해왔다. 중앙일보의 경우 문 후보자가 자사 출신이기 때문인지, 대체로 문 후보자를 옹호해 온 편이다. 다만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경우, 비판은 초기 ‘책임총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2일 지면이다, 문 후보자의 민족비하 논란에 대해 한겨레와 경향 등은 이를 1면 톱기사 제목으로 뽑았지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문 후보자가 “책임총리 처음 들어 본다”고 말한 사실에 주목했다. 문 후보자의 과거 발언에 대해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입장이었다.

즉 총리감으로서는 부적절하지만 야권 등이 쳐놓은 친일 사관 논란 전선에는 거리를 둬 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친일 사관을 가진 인물을 총리로 올렸다’는 비판보다 ‘책임총리에 부적절한 사람을 총리로 올렸다’는 비판이 가진 무게 차이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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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 대통령이 사실상 문 후보 카드를 철회할 듯한 태도를 보이고 새누리당의 기류가 급속도로 바뀌자 이들 언론은 청와대 인사검증 체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기존까지는 ‘청문회에서 기회라도 주자’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동아일보는 아예 청와대가 책임을 지고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조선일보는 문 후보자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에 결함이 잇따르자 19일 <장관·수석들도 크고 작은 흠, 검증서 걸러지긴 한 건가> 사설에서 “청와대 인사검증팀이 이런 기초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면 아예 처음부터 검증할 의지가 없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한 발 더 나아가 19일 <문 총리 후보에 거취 압박하는 청와대는 무책임하다> 사설에서 “인사청문 요구서 제출도, 지명철회도 하지 않으면서 문 후보자에게 자진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의 부담을 덜기 위한 ‘방책’이란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며 “현재 문 후보자를 둘러싼 사달은 애초에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사람을 총리감으로 추천했거나, 제대로 검증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6월 19일자. 사설.
 
결국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청와대에 대한 직격탄을 쏘기 시작한 셈인데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의 초기 사설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1일 당시 문창극 총리 후보자 내정에 대해 “이번 인사가 또다시 좌초하면 정권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인사는 사실상 좌초했고, 박근혜 정부 전체가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조선·동아일보의 고민도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MBC도 문 후보자가 임명된 지난 10일 “총리 후보로는 이른바 ‘관피아’나 전관예우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관료나 법조인 출신이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언론계 인물을 통해 신선감을 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MBC는 문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문 후보자의 해명을 적극 반영해왔는데 이런 기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MBC는 지난 19일 <뉴스데스크>에서 문 후보자의 ‘안중근’ 발언 등을 전하며 “사퇴를 기대하는 기류는 점차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는 야당 측 발언을 인용한 것 이외에는 없다. 여야 ‘공방’의 차원으로만 다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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