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길환영 체제’에 대한 KBS 내부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KBS 이사회가 18일 회의를 통해 차기 사장 공모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KBS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성과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19일에는 KBS 기자협회, PD협회, 기술인협회, 경영협회 등이 주관하는 ‘KBS의 독립성과 공익성 실현을 위한 대토론회’가 열렸다.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장기적으로 KBS가 보도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제안했고, 이와 함께 KBS 구성원들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가깝게는 이번 사장 선임과정에서 ‘제2의 길환영’을 방지하기 위한 제언이 쏟아졌다.

사장선임구조와 관련해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대부분 특별다수제와 사장추천위원회를 제안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현재 방송법 개정이 안 된 상황에서 추천위원회는 불가피하다”며 “특별다수제는 시대정신으로 볼 수 있는데 법을 당장 바꿀 수 없지만 이사회에서 정관을 만들 수는 있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추천위원회에서 사장 후보를 추천하고 이중 특별다수제를 통해 단수 후보를 선출한 뒤 만장일치로 새로운 사장을 뽑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며 “KBS 내부 구성원들도 보다 덜 정파적인 사장이 온다면 그가 복잡한 KBS의 구조를 장악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덜 정파적인 사람을 요구하면서 그 리더십을 인정한다고 결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권오훈 본부장은 “길환영이 나간 뒤 역설적으로 KBS 내부는 활기차졌다”며 “그만큼 KBS에서 사장·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사장 선임의 문제는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고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안을 찾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어제(18일) 이사회에서 사장 공모절차를 진행한다는 것만 정하고 나머지는 전혀 정하지 못했다”며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다수 이사들이 특별다수제와 사추위는 불법이어서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인식이라면 또 다른 파행이 불가피하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 19일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KBS의 독립성과 공익성 실현을 위한 대토론회’ 사진=정상근 기자
 
KBS노동조합 백용규 위원장은 “KBS를 진정으로 국민의 방송으로 만드는 것은 정치권으로부터 얼마나 독립된 KBS를 만드냐는 것”이라며 “특별다수제를 하자고 요구했지만 이사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백 위원장은 “정치경력 3년 이내의 사람은 사장으로 안되고 인사청문회의 취지는 이사들도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사추위도 틀림없이 구현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KBS 이사회는 사추위, 특별다수제, 청문회 실시를 도입해야 한다”며 “어제(18일) 이사회에서 최소 상식도 포함시키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KBS 이사회도 제대로 정신 차려야 하고 학계도 그 몫을 해야한다”며 “만약 현재 언급되고 있는 3명으로 사장 선임이 된다면 우리는 KBS 해체 운동으로 가겠다”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방송 독립성과 공익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개선책도 나왔다. 서울대 이준웅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방송독립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의 기자들이나 PD가 못나서 그렇다기보다는 한국 언론매체 체계가 정치체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생기는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언론인들도 ‘나는 출세해 청와대 갈거야’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며 “내부의 공정보도에 대한 불만처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공정보도위원회라는 책임기관을 사장 휘하에 두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이어 “공정성에 대한 시청자 불만이 제기되면 이와 같은 방송이 어떻게 될 수 있었는지 시청자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일수 기자협회장은 “내부 구성원들의 윤리규범과 전문직 종사자로서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잘 새겨야 할 대목”이라며 “실제 현장에서도 어떤 대안이 있느냐 고민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체적인 대안은 실효성과 상관없이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진표 PD협회장은 “사장이 누가오던 제작 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내부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4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며 “KBS의 양대 노조의 노노간 단합은 지속해야 하고, 기왕이면 굳이 진을 따로 구축해야 하는지 과감하게 문제제기 해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노사는 제작 자율성과 보도독립성을 침해하지 않고 보존·존중하겠다는 합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어 “이번 사태는 ‘길환영 아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며 “시청자와 국민들은 국무총리 후보자를 두 번째 아웃시키려는 상황인데 KBS 문제를 쉽게 넘어가겠나?”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을 밝히고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겠다는 정확한 약속을 진정성을 갖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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