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보도 누락’ 사태를 두고 기자들의 기수별 성명이 올라오고, SBS 기자협회가 17일 총회를 거쳐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는 등 기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SBS 기자들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이번 사건을 일회성 사건이 아닌 그간 누적된 문제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창극 보도 누락’ 사태는 지난 10일 오후 시작됐다. SBS 정치부 기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후보자를 지명한 10일부터 검증 보도에 착수했고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등 논란이 된 발언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입수해 10일 데스크에 보고했다. 보도국 간부들이 ‘교회 연설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다’ ‘시간을 두고 보완취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기자들은 11일 보완 취재를 해서 다시 보고했으나 결국 이 사안은 SBS <8뉴스>에 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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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은 세월호 참사 보도 관련해 SBS 내부 토론회가 열렸던 날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기자들은 전원구조 오보나 사고 초기 자극적인 보도 그리고 유병언 회장에 집중한 보도 등 SBS의 세월호 참사 보도에 문제가 없었는지 논의했다. 이러한 내부 논의가 있었던 바로 그 날 ‘보도 누락’ 사태가 벌어졌다.

   
▲ 11일자 SBS ‘나이트라인’ 갈무리. SBS는 KBS가 9시뉴스에서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을 보도하고 난 이후 나이트라인에서 관련 소식을 전했다.
 
SBS의 한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10일 토론회는 SBS의 세월호 보도를 돌아보면서 재난보도를 제대로 하고, 민감한 사안도 똑바로 보도하자는 의지를 다지는 자리였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문창극 후보자 관련 기사가 누락되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많은 기자들이 이 사태를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SBS의 17기 기자들은 지난 12일 저녁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성명서에서 “세월호 보도의 문제점을 돌아보는 기자총회가 열린 바로 다음날 문창극 발언 기사가 누락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절망감은 어느 때보다 깊고 크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언론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부 발표 받아쓰기, 정부 비판 보도의 상실 등 수많은 문제가 드러났고, 이후 언론사 내부에서 자사 보도를 반성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보도가 누락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본부장 채수현)는 지난 13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오보, 이어진 정부 비판 보도의 실종으로 기존 언론들은 시청자의 눈과 마음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뼈저린 자기비판과 더 피나는 취재와 보도를 위한 노력만이 언론사 SBS를 되살리는 길이라는 사실을 노사 양측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어떤 경로로 건전한 취재와 정당한 논의 과정을 틀어 막았는지 사측은 분명히 밝혀야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 보도국 간부들도 입장을 밝혔다. 정승민 정치부장과 성회용 보도국장은 13일 편집회의와 16일 편성위원회 등을 통해 ‘확인이 더 필요했다’ ‘시간을 들여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판단착오였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기자들은 보도국장의 설명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17일 열린 기자총회에서 기자들이 지적한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취재 기자들이 문창극 후보자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오픈소스’이고 타 매체에서 먼저 보도할 수 있다는 점을 보고했음에도 ‘취재보완’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를 미뤘다는 점이다. 둘째, 단독기사라 보안이 문제가 될 경우 과거에는 큐시트에 제목만 올리고 편집회의에서 논의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 경우 그런 과정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SBS가 세월호 관련 ‘보도 누락’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팀은 지난 5월 8일 교양국장과 제작본부장과 논의를 거쳐 5월 31일 방송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내용을 다루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9일 교양국장과 제작본부장은 담당PD에게 6.4지방선거 이후 방송하라며 제작을 중단시켰다. 논란이 커지자 장광호 제작본부장은 원래대로 5월 31일 방송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10일 간 제작이 중단된 상태에서 예정대로 방송을 하기는 힘든 상황이 됐고, 결국 <그것이 알고싶다> ‘세월호 참사편’은 지방선거 이후인 6월 7일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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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세월호 참사의 불편한 진실 2부’ 편 갈무리
 
지난달 26일 <그것이 알고싶다>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이웅모 사장, 장광호 제작본부장, 신용환 교양국장 등과 노조 측이 참여한 편성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장 본부장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이템을 다루기에 충분히 준비된 내용이 없어서 (제작을 보류했다)”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채수현 SBS본부장은 “담당 PD와 결정하시는 분들 사이에 소통이 잘 될 수 있도록 고민을 좀 해주셨으면 한다”며 “문제가 이렇게 커지게 된 것은 순수하게 생각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오해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는데 이 시기에 이렇게 되면 당연히 정치적이라고 의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것이 알고싶다> 사태가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보도가 누락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SBS 한 중견기자는 “문창극 보도 누락 사태에 기자들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세월호 보도와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그간 쌓인 것이 누적돼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SBS 기자협회는 17일 기자총회에서 이번 문창극 보도 누락 사태를 새로운 보도국장 취임 이후 1년 동안 쌓여온 ‘불통의 리더십’ 문제가 쌓인 것으로 규정하고, 과거 1년 동안 유사한 사례들을 추가 수집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보도가 누락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기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재발방지책과 책임자 문책을 논의하는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다.

한편 보도 누락 사태를 두고 SBS 안팎에서 정승민 정치부장과 윤세영 SBS 명예회장이 문창극 후보자와 같은 ‘서울고’ 출신이라는 점, 성회용 보도국장이 중앙일보 출신이라는 점이 보도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성 보도국장은 지난 13일 편집회의에서 문 후보자와 일면식도 없고 악수조차 한 적 없고, 마주친 적도 없다며 판단 착오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 한 기자는 “문 후보자와 같은 서울고 출신이라서 보도가 막혔다는 이야기가 돈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다”며 “보도 누락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안 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까지 도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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