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전설 펠레의 입이 봉쇄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6월 브라질 주요 도시에서 월드컵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하자 펠레는 “모든 시위를 멈추자! 셀레상(브라질 대표팀 애칭)이 우리 조국이며, 우리의 피라는 사실을 명심하자!”라고 말했다가 되레 화를 입었다. 그가 태어난 도시, 트레스 코라코에스 주민들이 노란 테이프를 둘둘 말아 펠레 동상에 입막음을 한 것이다. 개막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는 시위가 단순 ‘안티 월드컵’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브라주카’(월드컵 공인구)를 비추는 미디어와 그라운드 밖 사정은 온도차가 크다. 최루가스와 고무탄 사용, 무차별 체포 등 시위대를 향한 정부의 가혹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지만 브라질 최대 규모의 상업 방송국 글로보TV(GLOBO TV)는 여전히 월드컵 띄우기에 ‘올인’하고 있다. 축구 전문가를 총동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브라질에 입촌한 각 대표팀 연습경기까지 생중계하고 있다. 네이마르(바르셀로나), 오스카(첼시) 같은 ‘슈퍼스타’와 ‘통산 6회 우승’이라는 흥행카드를 적극 내세우고 있다.

글로보TV는 남미 지역 최대 방송국이자 미국 방송 CBS, NBC에 이은 세계 3번째 대형 방송국이다. 이 미디어그룹은 브라질 전역에 지역 방송사 120여 개를 가지고 있으며 국토 98%를 커버할 정도로 막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2013년 글로보TV 공식적인 매출액은 한화로 5조여 원에 달했다. 이 수치는 2, 3위 방송사 매출액을 합친 것보다 10배 이상 높다. 이 방송사는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지난해 이상의 매출액을 기대하고 있다.

글로보TV를 포함해 주요 언론이 월드컵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브라질 국민은 누적된 사회 모순에 신음하고 있다. 최근 한국 언론도 주목한 ‘파벨라’(Favela)는 브라질 슬럼가를 지칭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이하 리우)에는 900개가 넘는 파벨라가 있다. 2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밀집돼 있다. 브라질 정부는 안정적 자본 투자를 위해 이곳에 부동산 소유권을 정리하는 사업을 수십 년째 펼쳐 오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 불리는 도시 재활성화 정책은,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6 리우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환상과 조응하면서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 MBC 5월 30일 보도. 브라질 시위대가 활을 쏘며 월드컵 개최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 = MBC 뉴스데스크)
 

프랑스 언론 ‘르몽드’의 자크 드니는 “브라질은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세계경제 중심부에 비해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도 아직 싼 편이다. 투자자들이 몰려올 수밖에 없는 이유”라며,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런 이면의 움직임은 관광산업을 매개로 월드컵과 올림픽 등 거대 행사의 개최 예정지라는 전망 속에서 가속화했다”고 분석했다.

타격은 브라질 빈민이 입었다. 슬럼가까지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다. 월드컵 개최가 확정되자, 도로와 경기장 건설 계획은 강제퇴거 정책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됐다. 철거과정에서 수십 명이 사망했다. 브라질 경찰은 어린 아이를 향해서도 폭탄과 화학물질을 발사했다. 빈민촌은 화염방사기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월드컵과 올림픽 인민위원회’에 따르면, 최소 25만 명에 달하는 빈민이 터전을 잃었다. 이 중 절반은 리우(10만 명)에 사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밀려난 이들은 ‘인민 월드컵(La Copa Popular)’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8일 그들만의 월드컵을 열었다.

글로보 그룹이 브라질 내부의 적폐보다 국가가 주도하는 이벤트에 ‘심취’한 것은 특기할 만한 게 아니다. 마링요 가문(Marinho Family)이 소유한 이 방송사는 1964년에서 1985년까지 브라질 군부 독재 정권의 프로파간다 역할을 자처했다. 거대 미디어에 대한 시위대의 분노가 식지 않자 지난해 글로보가 이와 같은 사실을 직접 밝히고 사죄했다. 89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보수 여당 후보였던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에만 유리한 방송만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결국 콜로르는 선거에 승리했다. 이 선거에서 패배한 인물은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다.

글로보는 지난해 시위대에 의해 봉변을 당한 바 있다. 월드컵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글로보 미디어그룹 본사에 난입하고, 또 리우에 위치한 Leblon 지사를 공격하는 등 월드컵으로 가는 길목에서 ‘진통’을 앓았다. 글로보를 향한 이와 같은 시위대의 분노 때문에 리포터들은 철저한 보안 속에서 움직여야만 했다. 글로보 로고를 뗀 채. 과거 공영방송 KBS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을 비호하는 방송만 내보내 시청자들에게 ‘땡박뉴스’라는 비판을 받았던 역사와 유사하다. 글로보와 KBS 모두 방송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는 대신 독재 정권을 비호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와 언론은 월드컵, 올림픽 같은 메가이벤트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전두환 정권은 1982년 주택정책 하나로 ‘합동재개발’ 정책을 발표한다. 내세운 명분은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미관상의 이유로 판자촌들을 강제로 철거했다. 서울 목동, 사당동, 상계동이 대상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를 보면, 당시 목동 일대에는 가구주 2,500세대, 세입자 5,200세대, 약 32,000명이 뚝방촌에 모여 살았다. 무차별한 개발에 목동 주민들은 3년 동안 대학생들과 연대하여 철거 반대 투쟁을 했다. 수백 명이 연행 당하고 구속자가 발생했다.

이때 주요 일간지는 정권과 유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일보를 포함한 신문은 과열되는 시위만 부각하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조선일보는 1985년 <민원 관련 집단행동 엄단>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시위에 나선 이들을 ‘극렬행위자’라고 규정하며, 구속할 것이라는 검찰의 방침을 전했다. 중앙일보 역시 <목동시위 대학생 합세로 과열>이라는 제목으로, 시위대가 현장 사무소에 불을 지르고 경찰과 ‘화염병’으로 맞서는 등 폭력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올림픽을 명분으로 한 무리한 정책의 모순을 짚기보다 정권에 순치된 채 시위만을 부각하는 검‧경찰 발(發) 기사였다.

   
▲ 2010년 붉은악마가 시청광장에서 응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이 개최국이었던 2002년 월드컵도 거주민의 삶을 파괴했다. 이를 주목하는 언론은 드물었다. 국민, 언론과 정부가 하나로 뭉쳐 월드컵 개최에 열광하던 때였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상암동 철거민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상암동 월드컵-사람은 철거되지 않는다>를 제작한 손영성 감독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당시 보상공고 이후 들어온 세입자들은 고작 20만 원 받고 쫓겨나는 신세였다”며 “택시기사 가족이 있었는데, 딸까지 (경찰에) 끌려가면서 노부부 홀로 투쟁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용역업체는 매우 폭력적이었고 같이 연대하던 대학생들도 두들겨맞곤 했다”고 밝혔다.

그는 “동계철거는 안 된다는 국무총리령으로 제정된 조례도 있었으나 건설업체와 용역업체는 이를 무시하고 철거를 강행했다”며 “2000년대는 IMF 위기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다들 부동산에 혈안이 되던 시기였고, 그와 맞물린 월드컵 ‘광풍’ 속에서 철거민을 주목하는 언론은 전무했다”고 설명했다.

MBC는 2002년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상계동, 상암동 등지에서 활동하던 재개발 용역업체들의 폭력을 고발했다. ‘재개발의 그늘, 폭력철거’ 편을 제작한 이규정 PD는 현재 경기대 영상학과 교수다. 국가가 주도하는 이벤트 열풍 속에서 언론, 특히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그는 “방송사가 국가가 주도하는 이벤트에서 국익을 배제한 채 방송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공영방송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배려가 선행돼야 사회 구조적인 모순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간 한국 언론은 국가가 주도하는 대형 이벤트의 사업타당성을 검증하기보다 개최지 선정에만 촉각을 세웠다. 평창이 2018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는 순간에도 언론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만을 주목했을 뿐이다. 손 감독은 “개발도상국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메가이벤트를 유치하면서 자국 내의 모순을 감추고자 한다. 이벤트가 국가의 선전 도구가 되는 것”이라며 “그러나 건전한 미디어가 존재한다면 국가가 주도하는 이벤트가 가린 사회적 모순이 제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