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 규정에 따르면 사장이 해임되고 1개월 내에 이사회는 신임 사장을 선임해야 한다. 길환영 전 사장이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로 사장직에서 해임됐으니, 1개월 중 벌써 일주일여가 지났다. KBS 이사회는 오는 18일 이사회를 열어 사장 선임 절차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문제는 여당추천이사 7명, 야당추천이사 4명으로 구성된 KBS 이사회 구조다. KBS 사장은 이사회 과반수 찬성으로 선임되는데 이 경우 제2의 길환영 사태가 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때문에 이사회를 이틀 앞둔 16일 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KBS노조)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KBS본부)를 비롯해 KBS 사내 직능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제2의 길환영’을 막기 위한 두 가지 제도적 장치를 요구했다.

KBS 내부 구성원들이 요구한 2가지 제도적 장치는 특별다수제와 사장추천위원회다. 특별다수제는 현 과반수 찬성을 요구하는 이사회 규정을 변경해 2/3 이상 찬성으로 사장을 선임하는 등 사장 선임과 같은 특별한 경우만 다수의 합의를 통해 선임하는 방식이다. 영국 BBC와 일본 NHK, 독일 ZDF 등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장을 선임한다고 KBS 구성원들은 주장했다.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앞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양대노조 위원장 등이 이사회에 특별다수제 도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렇게 될 경우 여당추천이사들 끼리의 합의로만 사장을 선임할 수 있는 방식에서 벗어나 야당추천이사들의 동의도 필요해진다. 이렇게 함으로서 KBS 신임사장은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고 신임 사장도 여권과 청와대의 눈치만 보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현재 이사회 구성상 과반으로 사장을 뽑는다면 제2, 제3의 길환영이 KBS 사장으로 올 수밖에 없다”며 “국회에서 방송법을 바꿔야 하지만 30여일 앞으로 다가온 차기 사장 선임까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권이 이 시간 내 합의를 도출해내리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사회가 먼저 특별다수제를 채택하라”고 요구했다.

두 번째 장치는 사장추천위원회(이하 사추위)다. 여야추천 이사들이 사장 후보를 내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 언론단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사추위를 구성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이사회에 부여된 사장 임명제청권의 실질적 권한은 보장하면서 사추위에서 후보자들을 철저히 검증해 정치 독립적이고 공정방송을 보장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사회에 두 가지 제도를 요구하며 “우리는 파업을 끝낸 것이 아니라 잠정 중단한 것”이라고 압박했다. KBS 이사회는 18일과 20일 회의를 열 예정인데, 20일 회의는 19일로 예정된 KBS 내 직능단체들의 토론회 결과를 이후에 진행될 예정이어서 토론회 결과를 의제로 삼을지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규환 야당추천이사는 “20일에 일정을 잡은 것은 19일 토론회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경청해서 그 내용도 같이 논의를 하자는 뜻”이라며 “18일 이사회는 첫 만남인 만큼 간담회 형태로 일정을 논의하게 될 것이고 구체적인 방법은 20일 논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용규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의견이 모여 방송법 개정안에 3년 이내 정치권 경력이 있는 사람은 KBS에 들어올 수 없고, KBS 사장의 인사청문회를 하기로 했지만 우리가 그토록 외치던 특별다수제는 여야 정치싸움에 묻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다시 법을 바꾸기에는 차기 사장 선임 시기가 너무 짧고 그나마 인사청문회 등 법 적용조차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백 위원장은 “그래서 이번 이사회에서 사장을 뽑을 때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여야 논의 취지, 길환영 사태에 대해 KBS 구성원들이 한 목소리를 냈던 취지를 반드시 녹여내야 한다”며 “이번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원한다면 이사회는 반드시 특별다수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오훈 본부장은 “길환영 사장의 해임으로 1단계 투쟁은 끝났다”며 “2단계는 정권으로부터 KBS를 독립시키기 위해 권력의 눈치를 안보는 사장을 뽑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권과 사장의 간섭 없이 공정한 방송을 하는 것”이라며 “청와대와 국회가 추천하고 임명한 이사들이 길환영을 뽑은 만큼 정치권도 KBS 사태에 책임이 있으니 KBS가 더 이상 청와대 부역방송, 불공정 편파방송을 다시 못하도록 할 책임도 정치권에 있다”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특별다수제는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KBS사장을 뽑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며 “사추위 역시 사장후보에 자질과 자격을 검증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분명히 말하지만 양대 노조는 파업 종료가 아니라 파업을 잠정 중단했다”며 “길환영 사장의 해임이 청와대와 정권으로부터 사사건건 이루어진 부당한 지배와 간섭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라면 당연히 후임 사장을 뽑는 절차부터 바로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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