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삼석 방송통신위워회(아래 방통위) 상임위원이 처음으로 참석한 방통위 회의에서 “세월호 보도참사 등 한국 언론이 죽었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방통위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고 위원은 12일 오전 경기도 과천 방통위에서 열린 상임위원 정례회의에서 “언론은 5인의 방통위원이 모두 임명됐기 때문에 ‘정상화’ 됐다고 하지만 인적 구성요건 충족만으로 정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같이 말했다.

고 위원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거대한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KBS와 MBC를 주축으로 한 공영방송의 역할 부재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며 “문제는 공공성과 공정성이 무너진 방송 현장에서 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통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고 위원은 이어 “제가 밖에서 지켜본 방통위는 당연히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다’고 강변하면서 책무를 회피하는 자세를 보였다. (여당 추천 위원들이)수적 우위를 무기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사진=방통위
 
고 위원은 KBS 길환영 사장 해임 이후 제기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에 대해서도 방통위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의 위상을 정립하고, 사회적 책무를 확립하는 것은 방통위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 중 현안”이라며 “박근혜 대통령께서 제시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이 빠른 시일 내에 논의되고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 위원은 정례회의가 끝난 후 이어진 위원 간 논의에서 “언론 자유를 요구하다가 해고된 분들이 MBC, YTN 등에 있다. 법적으로 방송사 노사문제라 방통위가 개입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방통위라면 아주 엄밀한 법 해석 보다, 법과 원칙이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면 법 개정도 해야 한다. 입장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방송에 발생한 사회적 문제는 우리(방통위)가 해결해야 한다. 청와대나 다른 부처에 넘길 것인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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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고삼석 방통위원의 모두발언 전문이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선배 위원님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 직원 여러분, 제3기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받은 고삼석입니다. 제 의지와 무관하게 74일 지각 합류했지만, 저는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학계에서 방송통신정책을 다뤘던 경험을 살려 방통위의 여러 현안들을 슬기롭게 처리하고, 방통위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힘을 더 하겠습니다. 모두 발언을 빌어 최근 상황에 대한 인식 및 방송통신정책에 대한 제 생각을 간략히 말씀드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지난 며칠 언론에서는 저를 포함 5인의 방통위원이 모두 임명되었기 때문에 “방통위가 정상화되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적 구성요건의 충족만으로 방통위가 정상화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보도참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실망은 큽니다. 혹자는 “한국 언론이, 방송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거대한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KBS와 MBC를 주축으로 한 공영방송의 역할 부재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문제는 공공성과 공정성이 무너진 방송 현장에서 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통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언론 노동자들이 방송의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다 부당하게 쫓겨나고, 징계를 당해도, 그리고 언론인과 국민들의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할 권리가 억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는 이러한 문제에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있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설치법> 제1조는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 제고,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을 방통위의 기본 책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방통위의 권리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의무입니다. ‘할 수 없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제가 밖에서 지켜본 방통위는 당연히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다”고 강변하면서 책무를 회피하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수적 우위를 무기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압도적 추천을 받아 임명된 만큼, 모든 사안을 방송통신 이용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눈과 귀는 항상 크게 뜨고 열어 놓겠습니다. 입장을 밝혀야 할 사안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행동이 필요할 때는 책임감 있게 움직이겠습니다. 법이 정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방통위원의 책무를 성실하고 바르게 수행하겠습니다.

방송과 통신을 비롯한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수단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각종 미디어는 범람하고 있지만 진정한 소통은 부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방송과 통신 미디어의 책임이 큽니다만, 이를 방치하고 있는 방통위의 역할 부재에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창조방송’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방통위 정책비전과 목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대변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또한 방송과 통신의 공공성과 공익성 구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방안 대신, 창조경제 구현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차가운 자본의 구호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과 통신영역이야말로 돈보다 사람이, 기업보다 소비자가, 사익보다는 공적 가치와 이익이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서 방송통신정책을 고민하고, 결정하겠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 둡니다.

마지막으로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의 위상을 정립하고, 사회적 책무를 확립하는 것은 방통위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 중 현안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께서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이 빠른 시일 내에 논의되고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영방송을 둘러싼 ‘낙하산 사장’ 논란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근절되도록 해야 합니다. 법과 원칙의 준수는 불문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방송과 통신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문제와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면, 즉 법과 원칙이 현실을 쫓아가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개선하거나,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군자무본(君子務本)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근본에 충실하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3기 방송통신위원회 임기 동안에는 대화와 타협, 존중과 배려, 이해와 양보 등이 위원회 운영의 기본 원리가 되기를 희망하고, 위원장님과 선배 위원님들께 많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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