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불편한 언론을 옥죄고자 한다. 군사정부 시절, 권력은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내놓으며 언론을 직접 길들이거나 탄압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시민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은 그 수단을 바꾸게 된다. 명예훼손 소송이다.

언론사를 상대로 한 청와대의 굵직한 소송은 문민정부 때부터 입길에 오른다. 현직 대통령 일가가 언론사 소송에 뛰어든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96년 김광일 김영삼 대통령정치특보는 시사저널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고발했다. 시사저널은 그해 11월 “청와대가 현대그룹으로부터 1백만 달러를 지원받아 재미교포를 통해 북한에 밀가루 5천 톤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김 특보는 기사 삭제 요구와 함께 이 기사를 쓴 이교관 기자, 김훈 편집국장, 박상기 편집장 등 3명을 고소·고발했다. 김 특보가 전면에 나섰지만 이 사건 고소·고발인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한승수 전 비서실장도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사실상 대리인이었던 김 특보는 97년 9월 자진 소 취하했다.

이보다 앞선 94년,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는 ‘한약상 로비 의혹’을 제기한 한겨레신문을 상대로 20억 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94년 4월 27일 한겨레는 “김현철씨 쪽에 1억여 원 줬다”는 기사에서 한약업사 정재중씨가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 아들 김씨에게 무면허 한약업사에 대한 구제 조건으로 정치자금 1억 2천만원을 건넸다고 폭로했다. 당시 김씨는 ‘소통령’이라 불리며 정치권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법원은 이듬해 한겨레신문사에 4억 원 배상판결을 내렸고, 한겨레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김씨는 97년 2월 소송을 취하했다.

김영삼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도 95년 10월 동아일보 기사와 관련해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 등 관계자 5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손 여사가 대선 직후인 92년 12월말 수행경호원을 대동하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백화점에서 쇼핑하던 중 거액을 소매치기 당했다”는 동아일보 보도가 화근이었다. 동아일보는 손 여사의 고발이 있자 정정기사를 통해 서둘러 사과의사를 밝혔다. 이에 손 여사도 자진해서 소를 취하했다.

국민의 정부도 언론사와의 소송을 마다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99년 10월 김한길 청와대 정책기획수석(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이 “위장전입 등 탈법 수단을 통해 그린벨트 내 주택, 농지를 매입해 보유 중”이라고 밝혔다. 언론중재위 중재가 결렬되자 김 수석은 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중앙일보는 ‘위장전입 탈법건축 없었다/김한길 수석 관련 기사 사실과 달라’라는 제하의 정정기사를 내보냈다. 김 수석도 정정보도 이후 소를 취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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