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을 27주년을 맞아 시민사회 각계 단체들이 10일 저녁 청와대 인근에 신고한 세월호 추모 관련 집회를 경찰이 전면 금지하면서 주최측을 비롯한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저녁 9시경 우천으로 집회 참가자들이 분산되면서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십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만민공동회와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등 종교·시민단체 등은 이날 저녁 8시경부터 청와대로 향하는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 인근에서 6월항쟁 정신계승과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를 열었다.

이에 경찰은 이들의 집회가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을 위반한 미신고 불법집회”라며 해산명령을 내렸다. 종로경찰서 경비계장은 집회 참여자들을 향해 “만민공동회는 시민이 통행하는 인도를 가로막고 불법 집회로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해 전원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집회 측 “공권력에 맞설 것” vs 경찰 “불법시위자 검거할 것”

앞서 청와대 만민공동회 등은 청와대 앞길과 브라질대사관 앞에서 ‘6·10 청와대 만인대회’를 열고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며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6월10일 함께 모여 광장을 메우고 청와대를 둘러싸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지난 주 서울종로경찰서에 ‘6월항쟁 정신계승 및 세월호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위한 거리기도회’, ‘세월호 길거리 토크’, ‘세월호 참사 추모대회’ 등을 열기 위해 61곳에 집회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집시법상 집회신고를 위한 48시간도 안 남은 지난 9일 12시경 집회 금지통고서를 집회 측에 전달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집시법에 따라 주거지역과 학교시설 주변에서의 집회 시위 금지 제한, 교통 소통을 위한 금지 제한 등을 이유로 들었다.

종로서 관계자는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집회 신고가 들어온 지역은 예전부터 집회가 불허됐던 곳이고, 주거 지역이 많아 대규모 집회가 될 경우 시민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며 “집회로 주민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어 해당 지역 주민들이 탄원을 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세월호 관련 집회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미신고 집회로 변질되고 묵과할 수 없는 불법 행위가 발생하면 진압과 연행을 할 것”이라며 “현장 상황과 인원,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지만 미신고 지역으로 진입하는 등 불법이 있다면 엄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집회가 신고된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비롯한 광화문시민열린마당 등은 기존에도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를 받아줬던 곳이다. 특히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추모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처럼 경찰의 의도적인 집회 불허에 대해 6·10 청와대 만인대회 주최 측은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지만 공권력은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와 행진을 집회 금지와 경찰폭력으로 막고 있다”며 “이는 사실상 청와대가 시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며 청와대 인근은 헌법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우리의 목소리와 행동을 막는 공권력에 맞서 ‘6.10 청와대 만인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며 “저녁 8시 청와대 앞 길에 모일 것이고, 저녁 10시부터는 청와대로 입구 브라질대사관 앞에서 분노와 항의의 목소리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만인대회를 함께 준비한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많아지면 경찰 폭력의 강도도 세질 수 있는데 우리는 노란 리본과 꽃과 피켓 등을 들고 평화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겠다”며 “경찰이 막더라도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시도할 것이고 연행을 각오한 시민과 학생들도 많아 경찰이 어느 정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해 주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의 세월호가 보여준 이윤 중심의 정부 정책과 기업을 바꾸기 위한 민주적 시민들의 분노가 바로 6.10 청와대 만인대회”라며 “세월호 국면에서 적당히 얼버무리면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적당히 넘어가지 못하게 외치는 국민 목소리 듣는 게 청와대와 정부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청년·대학생들도 입감(入監) 불사 ‘청와대 행진’

한편 6·10 민주항쟁 27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9일부터 ‘청와대 행진’을 예고하는 대학생들의 시국선언과 대자보 행렬도 이어졌다. 9일 고려대 안암동 캠퍼스 정경대 후문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에서 교수님들이 그만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불손한 제자들’이 쓴 ‘교수님에게 부치는 편지’ 대자보가 붙었다.

이들은 대자보에서 “27년 전 연세대학생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았고, 전국에서 몇 천 명이 시위를 하다 경찰서로 연행됐는데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불의에 항거에 쏟아져 나와 몇 백만이 거리에서 만났던 87년 6월을 기억하느냐”며 “내일 당신들의 제자들이 6월을 맞이하러 다시 거리로 나간다”고 밝혔다.

이들은 “무참히 밟히고 깨지고 결국 경찰서로 잡혀가더라도 청와대로 향할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 책임자가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인 사회를 만들 의지가 없어 보이기에 우리는 그것에 항의하러 간다”고 설명했다.

해당 대자보를 쓰고 ‘고대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여했던 김아무개(국어국문학과 09학번) 학생은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청와대로 막연하게 향하는 것이 무모해 보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세월호 참사 해결 의지가 없는 청와대를 향함으로써 현재 정치권력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진상규명과 책임 촉구라는 1차적 요구를 넘어 박근혜 정권뿐만 아니라 이전 정권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고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인 사회를 우리 스스로 만들겠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1987년의 발걸음을 잇고자 하는 성공회대 학생들’도 10일 성명을 내고 청와대가 아닌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집회를 하는 ‘6.10 민중항쟁 27주년 기념 국민촛불대회’를 비판하며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청와대를 향해 가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대학생과 시민 등 수많은 이들이 10일 만인대회를 열고 청와대로 가기로 결의한 이때에 불쑥 6·10 민중항쟁을 청계광장에서 열고 청와대 반대방향으로 가겠다는 입장이 우리에겐 생뚱맞다”면서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곳에 무슨 6·10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당혹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6·10의 겉모양을 흉내내고 이야기하며 그것으로 만족하는 ‘기념’이라면 그것은 그날의 정신을 파내어 죽이고 박제를 만들어 박물관에 가두고자 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다음 세대에 오래된 동지의 유품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청와대를 외면하지 않고 박물관을 등지며 미래로 걷겠다”고 밝혔다.

앞서 ‘청년좌파’ 회원 41명도 “청와대를 등지느니 앞을 보고 입감 되겠다”고 연서하며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여야 한다고 믿는 비현실적인 이교도로서, 10일 입감을 결의하고 청와대로 행진할 것을 공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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