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의 외교․안보 항로는 안전과 침몰, 어느 쪽인가. 세월호 참사는 더 큰 재앙의 예고인가.

세월호 참사에서 근본적인 교훈을 얻고 환골탈퇴 하지 못한다면 국가와 민족의 위기가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외교, 안보 현안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적 모색을 진지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 직후 아랍에메리트를 방문한 것과 관련해 뒷말이 많다. 세일즈 외교라면서 국왕도 못 만나고, 원전 기공식에 참석해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는데도 왕세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이라크 장병들을 격려한다고 요란하게 홍보했지만, 정작 박 대통령은 부대 방문도 하지 않고 호텔로 일부 장병들만 불러 만났다고 한다. 시간이 촉박했다는 청와대쪽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외교와 일정을 그렇게 허술하고 서툴게 다룰 수 있는 건지 박근혜 외교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박근혜 정부 외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간판과 파는 물건이 다르다는 점이라고 최근 전직 외교장관들이 평가했다고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드레스덴 선언 등 박 대통령의 구상들이 그럴듯한 간판으로 나왔지만, 실제의 정책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구상들이 한결같이 허울 좋은 간판으로 그쳐 버리는 건 너무나도 필연적인 결과다.

박 대통령의 구상들의 공통점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호응이 없으면 그 구상들은 한 걸음도 진전될 수가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북한으로서는 사실상 ‘항복’이나 ‘굴욕’으로 보일 전제조건을 내걸고 북한이 먼저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이라고 요구해 왔다. 악화일로로 치달은 남북관계는 북방한계선에서 포탄이 오가고 원색적인 막말 비난을 서로 주고받을 정도로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문제는 북핵 문제의 악화다. 미국의 북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최근 미국의 한 세미나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수가 현재 약 10개에서 2016년에는 약 20개로 두 배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오로지 대북 강경책밖에 모르는 박근혜 정부의 또 다른 ‘무능’의 결과로 북한의 핵 능력만 향상시켜준 꼴이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지난 달 29일 북한과 일본의 전격적인 합의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과 제재, 이를 위한 국제 공조에 틈새가 생겨 김이 빠지고 말았다.

북한이 일본의 납치문제 요구를 대폭 받아들이고, 일본이 송금 제한 등 일부 대북 제재조치를 풀기로 두 나라가 서로 적극적인 호응을 한 결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북한을 방문해 북․일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개선을 도모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처럼 동북아 국가들 간의 관계가 복잡하게 미묘해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주도력과 입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악화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 간의 대립구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갈등과 대립의 구도가 격화할수록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의 현안 문제들의 해결이나 해소가 더욱 요원해진다.

재정적자로 군비축소를 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은 중국을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일본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미․일 미사일 방어(MD) 체제의 추진 등으로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일본이 재무장을 해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봉쇄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최근 일본 주변에서 미사일 방어망을 대폭 강화하는 조처들을 취하고 있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2017년까지 일본 주변에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춘 이지스함을 현재의 5척에서 7척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런 조처들을 통해 일본과 미국 본토의 방위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강하겠다고 강조한 헤이글 장관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이 자신을 겨냥한 미․일 MD 체제 및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가만히 있을 리 있겠는가.

중국의 대외전략이 몰래 힘을 키운다는 덩샤오핑 시대의 ‘도광양회’에서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주동작위’로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공세적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MD 체제의 강화에 매우 민감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 5월 20-26일 벌인 군사훈련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것으로 훈련 장소를 중국과 일본의 분쟁지역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부근으로 한 것도 의도적인 게 분명하다. 냉전이 점차 격화되자 미국이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적 침탈의 역사 청산을 덮어 둔 채 영토 분쟁의 불씨를 남겨 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동아시아 지배에 대한 도전의 의도가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군사력이 증강되면서 미국의 군사 패권에 대한 중국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2030년 중국의 군사력과 미․일 동맹: 전략적 순평가’ 보고서에서 중국과 일본, 중국과 미․일 동맹 간에 제한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 것은 매우 주목된다. 동북아의 긴장 고조와 함께 한반도를 비롯해 센카쿠열도, 대만에서 군사적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어찌해야 하는가.

중국이 매우 예민하게 보는 미국 주도의 MD 체제를 미국이 한반도에 전개하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미국의 제임스 위너펠드 함참의장과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고(高)고도 MD 체제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추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드’ 배치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그 이유와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겨냥한 것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사드’의 요격 고도는 40-150km로 중국과 러시아를 포괄한다.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KAMD)의 요격 고도 40km이하인 단거리미사일 표적의 하층 방어용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게다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는 중국 나아가 북한, 러시아와의 대립 구도를 더욱 심화시킬 게 분명하다. 특히 위너펠드 미 합참의장이 거듭 강조한 ‘한․미․일 삼각 미사일방어체제’의 추진에 중국이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미국의 한국 내 MD 배치를 동북아의 화약고인 한반도에 미국이 위험한 인화물질을 갖다놓는 것으로 여긴다. 중국의 심장부에 가장 가까운 한국이 미국의 MD에 편입되면 중국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벼랑 끝으로 몰아갈 것이며, 중국은 한국에 대한 전략을 바꿀 것이라는 베이징대 주청 교수의 발언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중국의 지난 5월 29일치 <신화통신>이 “한국이 미국의 MD를 받아들이면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어찌 생각하는가. 한국의 제1통상국으로 한․중 간 무역총액이 한․미, 한․일 무역총액을 합한 것보다 많은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킬 수 있겠는가.

한․미․일의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3국의 MD가 추진될 경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국은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맡겨 놓은 터다. 미국의 요구 또는 묵인 아래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미국과의 군사작전으로 한반도 사태에 개입하겠다면 어찌할 텐가.

강대국들 간의 대립과 갈등 구도에서 한반도, 한민족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동북아 평화체제를 위한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국이 동북아의 격랑을 헤쳐 나갈 방향과 주도적인 동력을 잃고 대립과 갈등의 풍랑에 휘말리게 되면 그 결과는 침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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