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믿어주신 지지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4일 오후 6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지상파 3사 공동 출구조사 결과를 보지도 않고 선거 사무실을 떠난 후 남긴 말이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징후는 감지됐지만 예상 밖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지지도 1위를 거의 놓치지 않았던 고 후보는 그러나 최종 3위로 추락하는 참담한 결과를 맛봐야 했다.

이번 서울 교육감 선거의 가장 큰 변수는 단연 후보자의 ‘가족’이었다. 조희연 후보의 아들은 아버지를 ‘좋은 후보’로 만든 반면 고 후보의 딸은 그를 ‘나쁜 후보’로, 별다른 가족의 도움을 못 받았던 문용린 후보는 남의 가족과 연락하는 ‘이상한 후보’가 됐다. 유권자들은 당연히 좋은 후보(아빠)를 택했고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나쁜 아빠 후보’에 등을 돌렸다.

고 후보가 패배한 가장 큰 요인은 이번 선거에서 표심을 좌우하는 데 중요한 동기였던 가족을 놓쳤다는 점이다. 주지의 사실대로 이번 지방선거는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치러진 첫 선거였고 세월호 사건이 국민에게 안겨준 큰 공감대 중 하나가 ‘가족의 소중함’이었다. 자식들이 배 안에 갇혀 차디찬 바닷속에 있는 것을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모로서의 미안함, 가족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울림’이 온 국민의 마음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고 후보는 가족에게서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 그와 이혼한 전 부인이자 고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차녀 박유아씨(47)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고희경씨(27)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녀의 교육을 방기한 고 후보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큰 파문이 일었다.

고 후보는 다음날 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재력’과 ‘권력자’ 집안의 딸인 전 부인과 자녀 교육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1998년 전 부인이 자녀 둘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후 일방적으로 양육권을 빼앗겼다”고 해명했다. 자진 사퇴가 아닌 전 처가 공격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에 희경씨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대중에게 개인적인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응답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고 후보로부터 박태준 회장 가족과 ‘야합’했다는 의혹을 받은 문용린 후보는 고 후보와 딸의 갈등에 대해 ‘패륜’이라고 비판하며 고 후보를 승객을 두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과 빗대기도 했다.

결국 고 후보는 지난 3일 선거 유세 마지막 날 “못난 아버지를 둔 딸아, 정말 미안하다”고 절규를 토해냈지만, 이 장면이 담긴 보도 사진이 인터넷과 SNS상에서는 오히려 풍자의 대상이 됐다. 득표 결과를 볼 때 강남의 ‘앵그리 맘’(angry mom)들도 그에게 돌아섰다.

그는 또 3일 발표한 마지막 성명서에서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최악의 선거로 기록될 것”이라며 “한 인간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한 삼류드라마가 펼쳐졌고 그 주인공은 나 고승덕이었다”고 술회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자신의 말한 마지막 호소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고 후보가 이번 교육감 선거 낙선에 대해 가족을 뼈저리게 원망하고 있을지, 아니면 진심으로 속죄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 후 서울 서초구 자택으로 떠나면서 더 이상 가족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고 후보에게 등을 돌린 유권자들은 그가 가족을 버린 것에 대한 단죄가 아닌 진정한 화해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아프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굿바이 고승덕’을 외친 시민들의 목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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