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엄중 문책을 촉구하는 두 번째 시국선언을 했다. 지난 20일 발표한 시국선언이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 중심이었다면 이번 선언에는 소속과 정치적 성향을 망라한 교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서울대 교수 204명은 30일 오후 ‘세월호 참사, 섣부른 처방보다 면밀한 진단이 먼저다!’는 제목의 선언문 발표하며 “대형 참사가 되풀이될 때마다 우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문제를 느꼈지만 세월과 함께 곧 잊어버리고 지내왔다”며 “그것이 마침내 ‘세월호 괴물’로 우리에게 되돌아왔고 참사를 잉태하고 낳고 키운 부도덕은 암 덩어리처럼 국가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그 괴물을 낳은 부도덕의 카르텔은 넓고 깊어 지난 대선캠프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각 부처 수장들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조롱하고 초월적 권한을 행사하되 책임에는 눈감거나 비켜갔다”면서 “4월16일 오전 8시48분 마각(馬脚)을 드러낸 괴물 세월호는 그들의 합작품으로 탄생했다”고 힐난했다.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지난 2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교수회관에서 정부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인적쇄신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외국 언론이 ‘문명권 최악의 부도덕한 해난사고’로 규정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문명권 밖으로 내치는 참사였지만 서울대 교수들은 끝까지 탑승자들을 구하다 희생한 ‘의인’들이 숭고한 정신을 높이 기렸다.

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믿고 물속에 잠겨버린 절망의 상황에서도 학생과 교사, 시민, 서비스직 선원들이 보인 양보하고 배려하며 희생하는 정신이야말로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의 부도덕한 카르텔에도 우리나라가 왜 ‘문명권’에 속하는 나라인지를 고통스럽게 재확인시켜줬다”며 “학생들에 대한, 가르치는 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과 가장 낮은 생존율을 보인 교사들의 희생이 아프게 가슴을 찌른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들은 “유가족들 호소는 충격요법의 조직개편보다 실종자 수습과 진상규명이 먼저이니 이를 위해 국민이 함께 해달라는 것”이라며 “그들의 요청대로 유가족대표가 참여하고 정부로부터 독립된 진상조사기구를 특별법으로 설치해 사고 전 단계별 경위와 인명구조가 실패한 원인을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조사 전 과정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해 모두가 열람하고 이를 내일의 거울로 삼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조사대상인 정부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협조해야 하며, 국회는 유가족의 의견이 곧 민의임을 직시하고 ‘실종된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음은 서울대 교수 204명의 시국선언 전문이다.

세월호 참사, 섣부른 처방보다 면밀한 진단이 먼저다!

우리 현대사 최악의 재난사고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하고 열흘이 지났다. 그 사이 인명구조를 바라던 유가족들의 희망은 눈물과 고통 속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실종자 유가족들은 이제 시신이라도 빠짐없이 수습하여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하라고 절규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이 장면들을 지켜보는 국민은 함께 통곡하면서 추모와 자원봉사와 자기성찰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분노하고 있다.

외국 언론은 이번 참사를 “문명권 최악의 부도덕한 해난사고”로 규정하였다. 참사를 잉태하고 낳고 키운 부도덕은 암 덩어리처럼 국가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대형 참사가 되풀이될 때마다 우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문제를 느끼곤 하였지만, 세월과 함께 곧 잊어버리고 지내왔다. 그것이 마침내 이렇게 ‘세월호 괴물’로 우리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더할 수 없는 최악의 지경에 이른 이번에도 우리는 또 그러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 스스로 우리나라를 “문명권” 바깥으로 내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괴물을 낳은 부도덕의 카르텔은 넓고 깊다. 정부당국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문명의 규제를 풀어 기업의 이윤추구 자유가 왜곡되어 도를 넘게 만들어버렸다. 연구용역을 맡은 일부 교수들은 전문가의 이름으로 거기에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문명의 규제를 벗어난 자유는 그 주체가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야만의 자유다. 이번 참사에서 정부는 정부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선장과 ‘관피아’는 그들대로 야만의 자유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게다가 대선캠프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각 부처 수장들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조롱하면서 초월적 권한을 행사하되 책임에는 눈감거나 비켜갔다.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마각을 드러낸 괴물 세월호는 그들의 합작품으로 탄생하였다.

그러나 세월호가 전복되기 시작한 바로 그 때 국가의 재난대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탑승객을 모두 구조하여 인명피해 없는 사고로 끝낼 수 있었다. 10시 31분 완전 침몰하기까지 전원구조가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의 구난과 구조 과정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정부대응이 배의 전복 사고를 최악의 참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주요 언론은 정부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 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고, 정부는 ‘받아쓰기’를 강요하였음이 내부자의 고백과 집단 성명으로 드러났다.

유가족과 국민은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라며 인명구조와 시신수습의 최종책임을 묻고 있다. 기실 박근혜정부는 대선공약에 따라 국민안전을 위한다며 안정행정부를 출범시켜 재난업무에 대한 총괄조정기능을 맡겼다. 그러나 경주 리조트 체육관 참사에 이어 불과 두 달 만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어이없게도 안행부 장관은 구조책임은 해경에 있고 자신은 그 “보고를 받아 종합하고 발표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발뺌하였다. 사고 직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였다. 한 달 후 대통령은 5.19담화에서 처음으로 최종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니까 사고 당시에는 구조와 구난의 지휘부가 사실상 아예 없었던 셈이다. 안행부와 해수부, 해경과 해군 사이에 신속한 인명구조를 위한 협조는 원천적으로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허둥대고 늑장부리고 몸 사리고 윗선 보고에 신경 쓰는 사이 천금같은 1시간 40분이 유가족의 절규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믿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학생과 교사와 시민, 서비스직 선원들은 물 속에 잠겨버렸다. 그 절망의 상황에서도 그들이 보인 양보하고 배려하며 나누고 희생하는 정신이야말로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의 부도덕한 카르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왜 “문명권”에 속하는 나라이며 왜 공화국인지를 고통스럽게 재확인시켜주었다. 학생들에 대한, 가르치는 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과 가장 낮은 생존율을 보인 교사들의 희생이 아프게 가슴을 찌른다. 우리가 지금 이 고통을 감내하면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더 이상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진실로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유가족들은 대통령의 5.19담화를 지켜본 후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서 국민에게 호소하였다. 충격요법의 조직개편보다 실종자 수습과 진상규명이 먼저이니 이를 위해 국민이 함께 해달라는 것이다. “치유의 시작은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자기반성이고 그 완성은 철저한 진상규명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그동안의 연속된 참사는 진상규명도 그에 따른 엄중한 문책도 없이 탁상에서 마련된 섣부른 대책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웅변한다.

이에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학과 교수 개개인은 과연 그 본연의 원칙과 책임에 얼마만큼 충실했는지 자문하면서, 유가족의 호소에 호응하여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이제라도 국가가 적극 나서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첫걸음은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5월 16일 대통령이 유가족 대표와 만나서 "유가족 여러분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견을 주면 꼭 바로잡겠다."고 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1. 유가족들의 요청대로, 그 대표가 참여하고 정부로부터 독립된 진상조사기구를 특별법으로 설치하여 배의 전복-침몰-참사의 단계별 경위와 인명구조가 실패한 원인을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해야 한다. 조사대상인 정부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협조해야 하며, 국회는 유가족의 의견이 곧 민의임을 직시하고 ‘실종된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1. 조사결과에 따라 책임을 엄히 묻는 인적 제도적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과정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여 만인이 열람하고 이를 내일의 거울로 삼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곳곳에 똬리를 튼 ‘세월호 괴물’과의 격투는 이렇게 시작되어야 한다.

2014년 5월 30일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서명자 명단(가나다 순)
강남규(자연대), 강대중(사범대), 강상진(인문대), 강성춘(경영대), 강성훈(인문대), 강영호(의대), 강우성(인문대), 강진호(인문대), 계승혁(자연대), 고길곤(행정대), 고재성(의대), 고철환(자연대, 명예교수), 곽덕주(사범대), 구명철(인문대), 권오현(사범대), 권태억(인문대), 김각균(치대), 김건태(인문대), 김경민(환경대), 김기배(공대), 김덕수(사범대), 김명호(인문대), 김명환(인문대), 김민수(미대), 김범수(자유전공학부), 김상종(자연대), 김성균(보건대), 김성준(의대), 김세균(사회대, 명예교수), 김영수(의대), 김영철(약학대), 김옥주(의대), 김용창(사회대), 김웅태(자연대), 김인걸(인문대), 김장주(공대), 김재범(자연대), 김재용(의대), 김재원(의대), 김점용(사범대), 김정욱(경영대), 김정욱(환경대, 명예교수), 김종욱(인문대), 김종일(인문대), 김종철(사범대), 김준(농생대), 김창호(자연대), 김춘수(미대), 김태균(국제대), 김태웅(사범대), 김현(인문대), 김혜란(사회대), 김홍기(치대), 김홍중(사회대), 김희백(사범대), 남동신(인문대), 도영경(의대), 류재명(사범대), 모경환(사범대), 문숙영(사범대), 문중양(인문대), 민기복(공대), 민병천(사범대), 민복기(미대), 민홍기(자연대), 박배균(사범대), 박성춘(사범대), 박승관(사회대), 박용선(자연대), 박정재(사회대), 박주용(사회대), 박진수(경영대), 박진호(인문대), 박찬구(사범대), 박철환(자연대), 박태균(국제대), 박태성(자연대), 박평식(사범대), 박혜준(생활대), 박흥식(인문대), 방민호(인문대), 배은경(사회대), 백대현(자연대), 백도명(보건대), 백명기(농생대), 변현태(인문대), 서기원(사범대), 서병무(치대), 서봉원(융합과학기술대), 서영채(인문대), 석승혁(의대), 석승훈(경영대), 석차옥(자연대), 설재홍(자연대), 성상현(약학대), 송준호(공대), 신애선(의대), 신좌섭(의대), 신혜란(사회대), 안동만(농생대), 양일모(자유전공학부), 오근희(의대), 오능환(환경대), 오명석(사회대), 오수창(인문대), 우종학(자연대), 우희종(수의대), 유성상(사범대), 유요한(인문대), 유용태(사범대), 윤대석(사범대), 윤성철(자연대), 윤순진(환경대), 윤여창(농생대), 윤인영(의대), 윤충식(보건대), 이강재(인문대), 이건수(자연대), 이건우(인문대), 이경민(의대), 이관휘(경영대), 이도원(환경대), 이동수(환경대), 이동신(인문대), 이두갑(인문대), 이만기(인문대), 이상훈(자연대), 이석재(인문대), 이석호(의대), 이선복(인문대), 이성헌(인문대), 이승복(자연대), 이승재(인문대), 이시내(사범대), 이용환(농생대), 이일하(자연대), 이장희(치대), 이정전(환경대, 명예교수), 이정훈(인문대), 이종묵(인문대), 이준구(사회대), 이준호(자연대), 이준환(사회대), 이지영(자연대), 이진석(의대), 이창숙(인문대), 이철범(자연대), 이철희(사회대), 이현숙(자연대), 이형목(자연대), 임선희(자연대), 임정묵(농생대), 임종태(자연대), 임현진(사회대), 임호준(인문대), 임홍배(인문대), 장경섭(사회대), 장대익(자유전공학부), 장승일(사범대), 장원태(인문대), 장진성(인문대), 장태안(의대), 전봉희(공대), 전상직(음대), 전상학(사범대), 전주홍(의대), 정용욱(인문대), 정원규(사범대), 정원재(인문대), 정종호(국제대), 정현채(의대), 조국(법대), 조남혁(의대), 조영달(사범대), 조은수(인문대), 조항만(공대), 조현설(인문대), 조형택(자연대), 조흥식(사회대), 주병기(사회대), 최갑수(인문대), 최경호(보건대), 최권행(인문대), 최기영(공대), 최무영(자연대), 최병선(사회대), 최승언(사범대), 최영기(사범대), 최영찬(농생대), 최지은(의대), 최진영(공대), 한성일(인문대), 한숭희(사범대), 한정숙(인문대), 허원기(자연대), 허창회(자연대), 호원경(의대), 홍기선(인문대), 홍석경(사회대), 홍성욱(자연대), 홍성필(공대), 홍종호(환경대), 황상익(의대), 황인이(경영대) / 총 20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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