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KBS 노조)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KBS본부)의 공동 총파업 막이 열렸다. KBS 양대 노조는 29일 오후 3시부터 KBS 개념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지난 2009년 양대 노조가 갈라진 이후 첫 공동 총파업이 양 노조 조합원 1000여명(주최측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됐다.

첫 공동 총파업인 만큼 이 자리에선 ‘연대’가 강조됐다. 백용규 KBS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하나였다”며 “잠깐 생각이 달라 갈라져있지만 언젠가, 조만간 합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훈 KBS본부장도 “시작을 같이 했으니 끝도 반드시 성공해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두 노조는 서로의 깃발을 교환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왔다. 특히 KBS 사내 게시판에 처음으로 ‘반성문’을 올린 KBS 38기 사원들은 ‘우리가 먼저 반성하자’고 강조했다. 보도영상국의 38기 촬영기자는 “나는 진도에 내려가면서 ‘기레기’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을 찍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며 “본인의 욕심에 인간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이 내홍에 대해 혹자는 ‘너희는 이미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 아니었냐’고 말했다”며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KBS 나가’라고 소리를 질러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욕먹고 쫒겨나도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많은 보도들이 삭제되는 것을 목격했다”며 “이제 우리의 욕심을 접고 공영방송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자”고 말했다.
 
공연을 위해 나온 38기의 한 PD도 “어제까지 우린 길환영과 다르지 않았다”며 “지금 우리는 길환영과 달라지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길환영이 승승장구할 때 우린 무엇을 했나”라며 “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수신료를 낸다고 생각할 때 순간순간 죄스럽고, 비참하고 내 자신이 역겹고 증오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PD는 “이 싸움은 이제 우리가 시작했다”며 “그 싸움의 끝장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린 아직 어려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만 몸으로 뛰겠다. 사장실에 뛰어 올라갈 만큼 건강한 폐와 다리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하겠다. 대신 선배님들은 약속해달라. 다음 자리에도 꼭 이렇게 나와달라”고 호소했다.

38기의 한 기자는 “7일 반성문을 썼을 때 38기 막내기자들이 주축이 됐다”며 “기자들은 새노조, 촬영기자는 1노조여서 잘 될까 망설였지만 막상 대화를 시작하자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부터 이 광장에 모여 양대 노조가 투쟁하는 상상을 했는데 그 상상을 선배들이 만들었다”며 “우리 새 역사를 썼고 새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총파업 출정식을 시작하면서 KBS 양대노조 조합원들이 세월호 보도를 비롯해 지금까지 공정하지 못했던 방송을 시청자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29일 오후 3시 KBS신관앞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조합원들이 '길환영 사장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KBS가 세월호 참사 보도를 친 정부성향으로 했었던 자료화면들을 보면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MBN, 채널A, JTBC, TV조선 등 종편 4사 카메라가 총출동해 KBS 총파업 출정식을 취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길환영 사장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도 물론 쏟아졌다. 백용규 위원장은 “그동안 KBS 내부에서는 청와대가 KBS의 인사와 보도에 간섭하고 있을 것이란 말이 있었는데 이번에 청와대가 ‘의견’이라는 하찮은 말로 보도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인정했다”며 “길환영은 큐시트를 가져다 놓고 이걸 빼라, 해경을 비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백 위원장은 “청와대와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이 명확한 사실로 드러났다”며 “또한 길환영이 우리를 좌빨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좌빨이냐, 길환영이 임명한 300여명의 간부들이 좌빨이냐”고 덧붙였다. 백 위원장은 “처음으로 KBS가 정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양대 노조가 같이하고 각 협회와 보직간부들도 함께 하기로 했다”며 “이것은 KBS 전 직원과 길환영의 운명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권오훈 본부장은 “KBS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길환영이 불법을 운운하며 우리를 협박하고 있고, 앞으로 징계나 협박을 남발해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우리 뒤에는 KBS의 정치적 독립을 명령하는 국민들이 있다”며 “지금까지 말로만 싸웠다면 앞으로 KBS 밖에서 몸으로, 행동으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진 KBS노조 부위원장은 “이미 ‘돌아가는 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의 플랑카드를 써놨다”며 “우리의 싸움이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KBS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국민들께서 알고 지지해주셨으면 하고 우리 스스로 흩어지지 않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마음으로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함철 KBS본부 부위원장은 “양대 노조가 공동 투쟁을 벌이면서 모든 지혜와 힘을 합치자”며 “길환영을 몰아내고 박근혜의 KBS 장악 의지를 꺾기 위한 대장정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함 부위원장은 “나는 오늘이 승리보고대회장 같다”며 “이 자리에 새로운 KBS를 건설할 주역들이 모였다. 반드시 승리를 이끌어 내 새로운 KBS를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출정식을 마친 KBS 양대조합원들은 신관을 출발해 본관을 한 바퀴 돌며 길환영 사장 퇴진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언론계 각종 파업에 대해 합법파업 판결을 이끌어낸 신인수 변호사는 이 자리에 참석해 “그동안 KBS와 MBC를 떠받는 두 가지 뉴스가 날씨와 동물”이라며 “날씨가 덥고, 얼마나 덥고, 왜 덥고 보도를 보다가 더위를 먹어버렸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그래도 어제까지는 길환영 사장이 미웠는데 오늘 수천명을 하나로 만드는 리더십을 봤다”며 “이렇게 나서준 것에 대해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이제 사회는 바뀌었다”며 “MBC의 170일 파업은 공정방송을 내 걸을 파업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방송법에는 누구든 방송에 개입할 수 없게 되어있고 이는 단협과 편성규약에도 나온다”며 “따라서 나는 여러분이 파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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