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KBS사장이 세월호 보도 등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허원제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 부위원장이 “KBS 사장은 보도내용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예상된다. 방송법이 보장하는 편성 자율권을 훼손하며, 경영진의 보도 관여를 정당화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KBS 출신인 허 부위원장은 29일 오전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방통위 상임위원 회의에서 “방송법 4조는 논란이 많은 조항이며, 영국 (공영방송) BBC의 편성 책임자는 사장이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관련기사 : 길환영과 청와대 보도통제, 어떻게 이루어졌나]

방송법 4조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내용이다. 1항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고 명시하며, 2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김재홍 방통위원이 길 사장의 보도 개입문제를 지적하자, 허 부위원장은 “(2항의) ‘누구든지’에 사장이 포함되느냐는 논란이 많기 때문에 그걸 기정사실화해서 말하는 건 부적절하다”라고 말했다.

   
▲ 허원제 방통위 부위원장
 
허 부위원장은 회의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더 확고한 신념을 밝혔다. 그는 “경영 책임자인 KBS사장은 편성에 대해 자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사장을 완전히 배제한다고 하면 편성의 의미가 무엇인가. 편성은 경영의 핵심인데, 이걸 배제해서 사장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면 대외적인 의전 사장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경영은 편성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방송은 편성이 100%”라고 덧붙였다.

허 부위원장은 KBS 사장이 뉴스 내용에 대해서도 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KBS 사장이 보도 내용에 대해서도 본인의 의견을 낼 수는 있다. 그걸 보도 책임자가 어떻게 수용해서 받아들이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길 사장의 해경 비판 자제 지시 등을 옹호하는 발언이다.

이에 대해 방송업계 관계자들은 “말도 안되는 해석”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KBS 사장이 전체회의에서 전반적인 편성 방침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보도 내용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보고받거나 이야기하는 건 사장의 권한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4조 2항의 ‘누구든지’에 당연히 사장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 지난 23일 오전 서울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길환영 사장 퇴진과 박근혜 대통령 사죄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KBS 양대 노조 집행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KBS본부)도 사장은 당연히 편성에 관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KBS본부 관계자는 “4조 2항에 대해 논란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며 “4조 3항은 방송사업자(사장)가 편성책임자를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사업자와 편성책임자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건 그만큼 편성에 대해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KBS 내부 편성 규약도 '취재 및 제작 책임자'는 KBS 규정상의 해당 분야 책임자로서 본부장, 국장, 부장급 등의 책임간부로 규정하고 있다. 경영진인 사장은 편성책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야당 추천 김재홍 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세월호 왜곡보도’ 논란으로 촉발된 KBS 파업 사태에 대한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이를 토대로 행정처분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허원제 부위원장은 “KBS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부가 나서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고, 이기주 위원도 “자료요구는 재허가 시점에서 할 일이며, 방통위가 시정명령할 사안이 아니”라고 반대했다. 결국 이 안건은 계류 처리돼, 실질적으로 방통위가 KBS 사태에 대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관련기사 : KBS 사태 악화되지만, 여당 방통위원 “가만히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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