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몇몇 시민들은 ‘만민공동회’를 구성해 청와대로 향하고, 몇몇 시민들은 한 손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피켓, 다른 한 손에는 꽃을 들고 침묵행진을 한다.

보수언론은 이런 시민들의 움직임을 불필요한 정치 선동이라고 규정한다. 진상규명이든 뭐든 정치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입법을 통해 해결하면 되는 문제인데 무리하게 반정권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청년 우익단체는 “진정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 관련 데모를 비난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큰 사건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냥 지방선거에서 투표하면 되는 것일까? 여야와 대통령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켜보면 되는 것일까? 우리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들 무엇이 바뀔까? <사회를 바꾸려면>은 이러한 질문 앞에 직면한 일본인 활동가 오구마 에이지의 대답이다.

오구마 에이지는 그 모든 질문에 대해 ‘데모하라’고 답한다. 오구마 에이지는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의원이나 정당을 선택하고, 법률을 통과시키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것은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에 입각한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그것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협소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투표를 한다고 과연 잘 해결될까? 그래서는 사회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로비로 정치가를 움직이게 하면 생각이 통할까? 정치가는 관료에게 문제를 떠넘기고, 관료는 재계에게 문제를 떠넘기고, 재계는 정계에 문제를 떠넘기기 일쑤다. 서로에게 문제를 떠넘기는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데모’ 뿐이다.

데모는 데몬스트레이션(demonstration)의 데모이기도 하고 데모크라시(democracy)의 데모이기도 하다. 데모크라시는 데모스 크라토스(demoscratos)라는 고대 그리스어에 뿌리가 닿아 있다. 데모스 크라토스란 현대적인 용어로 ‘민중의 힘’이다. 즉 데모란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서 구호를 외치고 촛불을 드는 것이 아니라 민중에게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다.

   
▲ 사회를 바꾸려면 / 오구마 에이지 / 동아시아 펴냄
 
투표율은 점점 떨어지고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투표로 심판하겠다’는 의견도 많지만 이에 못지않게 ‘여야 모두 마음에 안 드니 투표를 안 하겠다’는 의견도 많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중을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데모를 통해 민중의 힘을 보여주고, 민중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민중의 의지를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 오구마 에이지의 주장이다.

데모도 벌이지 않는 침체된 사회에서 로비나 NPO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민중이 직접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힘을 보여주지 않는 분위기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구마 에이지는 ‘데모는 낡았고 NPO 활동이 신선하다’는 식의 제로섬 사고는 건설적이지 않다. 특효약과 한방약의 각각의 특성을 이해하고, 병행해 사용하는 것이 요즘 의학계의 조류”라고 말한다.

오구마 에이지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의 모습은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고용과 가족의 불안정화, 빈부격차의 확대, 정치의 불능, 의회제 민주주의의 한계봉착, 공동체의 붕괴, 노조의 약화, 이민자 배척운동 등 극우세력의 등장 등은 일본과 한국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에서는 정당이나 노조와 관계없는 네트워크형의 비폭력 사회운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2008년 한국의 촛불집회나 최근 ‘안녕들하십니까’ ‘가만히 있으라’ 등도 이와 유사한 사회운동이다.

오구마 에이지는 데모를 할 때 한 가지 유의해야할 점을 알려준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중을 대변하지 못해 위기에 처해 있는 만큼 데모는 민중을 대변할 수 있어야하며, 민중에게 그런 느낌을 주어야 한다. 집회 참가자들이 어떤 구호를 외쳐야할지, 지금 시점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쳐야 하는지 ‘진상규명’을 외쳐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데모는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옵션’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구마 에이지는 “사회를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침묵을 지키다 서서히 침몰하든가, 어느 지점에서인가 파국을 맞이하든가, 명백하게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든가 이 셋 중 어느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끔찍한 세월호 참사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메시지다. 가만히 있다가 다시 이런 참사를 반복하든가, 아니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든가 둘 중에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 앞에는 데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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