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도착한 건 24일 오후 10시였다. 경찰은 보신각 주변을 포위했다. 시민은 보신각을 넘어 청와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경찰 수는 시민보다 많았다. 촘촘하게 인간 띠를 만든 경찰과 그것을 뚫으려는 시민의 대치는 이후 한 시간 이상 계속됐다.

청와대로 행진을 이어 가려는 사람, 발에 땀이 나도록 현장을 뛰어다니는 기자, 멀찌감치 떨어져 멍하니 담배를 물고 있는 아저씨, 가방을 멘 채 ‘가만히 있으라’ 피켓을 들고 있던 학생 그리고 이 상황을 재밌게 바라보는 생때같은 아이들. 24일 오후 10시 보신각 모습이었다. 이 낯선 조합은, 누군가에 의해 ‘한데’로 묶여, 자기 자리에서 한 발짝씩 뒤로 밀려나야만 했다.

힘에서 우위가 있는 경찰은 어떻게든 시민을 보신각 쪽으로 압박했다. 시민들은 버텨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정당한 통행권을 막지 마라”는 시민과 “깃발 든 사람을 검거하라”는 경찰의 몸싸움은 수십 분 동안 계속됐다. 울타리를 만들어 경찰의 저지를 막으려던 시민들이 넘어지면서 부상자가 나오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 ‘대치선’ 안쪽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 와중에 시민 1명이 실신했다. 11시께 구급차가 도착했다. 119구조대가 군중 속으로 진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를 찍는 사진 기자들이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민은 “기레기는 나가라”, “사진 찍지마”라며 기자들을 저지했다. 이 시민은 응급실로 후송됐다. 시원한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24일 밤 보신각은 ‘용광로’였다.

   
▲ 24일 오후 11시경 보신각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시민이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지난 주말에 이어 30여 명이 연행됐다. 시민들은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찰 병력은 자꾸만 늘어나 충돌까지 낳았다. 현장을 지휘하던 한 경찰은 ‘몇 명이 투입됐느냐’는 질문에 “지원을 온 거라 나도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주말 다양한 표현과 문화의 공간이 보장돼야 할 광장이 경찰에 의해서 막히는 상황이 반복됐다. 

“박근혜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노신사가 툭 던진 말이다. “박근혜”를 언급하는 이가 부쩍 많았다. 청와대로 향하는 초입부터 긴급히 사전 차단하는, 이 정부의 조급함을 시민들은 지적했다. 또 다른 시민은 “세월호 사건 때는 그리 늑장을 부리더니 이런 일에는 이렇게 빠른지”, “누가 (청와대를) 잡아먹기라도 한다니?”라며 혀를 끌끌 찼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KBS 앞에서, 청와대 앞에서 이런 ‘답답함’을 경험했다.

   
▲ '가만히 있으라' 제안자 용혜인씨가 24일 오후 11시 30분경 서울 보신각에서 청중 발언을 하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경찰과 집회 참가자의 대치가 정리된 시각, 보신각 한 쪽에 50여 명이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제안한 용혜인씨(25)가 있었다. 

“이 나라 이 정부는 끊임없이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태어나기 8년 전, 광주에서 시민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80년 5월 광주가 역사가 된 이유는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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