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눈이 ‘기춘대원군’으로 쏠렸다. 24일자 주요 일간지들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인해 이번 ‘안대희 책임총리 카드’가 퇴색될 거라는 분석에 입을 모으고 있다. 그간 박근혜 정부에 온건한 입장이던 조선일보까지 가세했다. ‘PK 편중 인사’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안대희 vs 김기춘
불 보듯 뻔하지만

한국일보는 24일 <김기춘 유임... '안대희 카드'가 퇴색>에서 “그간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식 국정 운영으로 내각이 무기력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며 “이런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책임 총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권 내에서도 제기됐다”고 밝혔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도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대통령을 진정으로 보좌하기 위해 바른길, 정상적인 길을 가도록 가감 없이 진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 후보자의 뜻대로 풀릴지는 수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김기춘 실장이 검찰총장 시절 안대희 후보자는 평검사에 불과했던 까마득한 후배”라며 “상하관계가 분명한 검찰 문화의 특성상 안 후보자가 김 실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회의적이란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책임총리’ 하겠다는 안대희, ‘청와대 김기춘’ 넘을 수 있을까>에서 “안 후보자는 공직사회의 부패 척결과 혁신, 비정상의 정상화를 본인의 역할로 규정했다”며 “그러나 헌법상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려 한다면 박 대통령이 온갖 국정을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 그 뒤에 자리잡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관계 설정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내각을 총괄해야 하는 안 후보자는 일단 청와대 비서실의 수장인 김 실장을 넘어야 한다”며 “안 후보자는 김 실장보다 16년 어린 데다 검사 동일체 원칙이라는 상명하복 문화에 익숙한 검사 선후배 사이다. 안 후보자가 ‘소신’을 발휘할 경우 김 실장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5월 24일자 사설
 

조선일보 강공 “김기춘, 그동안 뭐했나?”

조선일보도 사설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판했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왕실장’으로 인한 민심 악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청와대는 지난해 8월 ‘좀 더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청와대가)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 정권 출범 5개월여 만에 김기춘 비서실장을 새로 기용하는 등 수석급 10명 가운데 절반을 바꿨다”며 “‘김기춘 비서실’이 지금까지 경제 활성화나 고용·복지 같은 핵심 정책에서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수석비서관들의 대통령 말 받아쓰기는 국무회의장 풍경과 다를 게 없었고, 김 실장은 내내 ‘왕(王)실장으로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신문은 “청와대 개편이 없다면 국민이 '달라진 대통령' '달라진 정권'을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박 대통령은 김 실장을 유임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박 대통령 스스로 정권 내 언로(言路)를 열고 '대통령 혼자만 보이는' 국정 운영 스타일을 바꾼다는 전제 없이 김 실장 체제만 그대로 유지한다면 정부 개편의 효과는 곧바로 반감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지금 공무원 사회에선 청와대가 모든 인사권을 행사해 숨도 쉴 수 없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있고, 김 실장이 그런 청와대의 얼굴이 돼 있다”라며 “김 실장도 왜 자신이 이런 논란의 표적이 됐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한국일보 5월 24일자
 

입법·사법·행정, PK ‘싹쓸이’

부산 출신 정의화 새누리당 의원이 23일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대한민국 입법·사법·행정부 수장 자리가 모두 부산·경남 출신으로 채워졌다. 앞서 말한 안대희 총리 후보자는 경남 함안 출신이다. 새누리당 몫 부의장 후보로 선출된 정갑윤 의원도 울산 출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 출신이다. 그러나 국회의장, 대법원장(양승태, 부산 출신), 헌법재판소장(박한철, 부산 출신) 등 국가 의전서열 상위 2~5위는 모두 PK 출신이다. 김진태 검찰총장(경남 사천), 황찬현 감사원장(경남 마산)도 PK 인사다.

청와대에서도 장관급인 박흥렬 경호실장이 부산 출신이고 홍경식 민정수석도 마산 출신이다. 대통령이 TK 출신임에도 PK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는 현상은 김 실장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걸 입증한다.

야당에서도 김 실장에 대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특별법·김영란법 대책회의’에서 “(안대희 총리 후보자 지명은) 국민을 위한 인선이 아니고 ‘왕(王)실장’을 위한 인선이 아닌가 해석된다”고 꼬집었다.

우원식 최고위원도 YTN라디오에 출연해 “김 실장이 (청와대에) 그대로 있다”며 “새카만 검찰 후배인 안 후보자가 얼마나 자기 소신을 지켜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한국일보가 인용한 새누리당의 수도권 한 재선 의원도 “지역별로 정책 요구가 점점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핵심 요직을 특정 지역에서 독점하다 보면 자연스레 편중된 정책이 나올 수 밖에 없다”며 “향후 개각에서 탕평 인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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