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저녁 불교 신자가 아닌 신학대학교 학생들이 거리에서 삭발을 했다. 감은 두 눈에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주먹을 움켜쥐고 입은 앙다물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태어나지 않았을 이들이 자신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걸 보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고 이를 지켜보던 학우와 시민들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로 화답했다. 

이날 삭발을 한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회를 비롯해 한신대 민중신학회·신학과 학생회·기독교 교육학과 학생회, 감리교신학대학교 도시빈민선교회, 사람됨의 신학연구회 등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가 전면 수용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유가족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중 감신대 도시빈민선교회 등은 지난 8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동상에 올라 “박근혜 정권은 퇴진하라”며 기습점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던 학생들이다. 이들은 지난 19일부터 한신대 민중신학회 단식농성에 합류해 내달 4일 지방선거 전까지 릴레이 단식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종건 감신대 도시빈민선교회 회장(감신대 신학과·21)은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종대왕 동상에 올랐을 때 우리의 이런 행동이 유가족들과 시국에 도움이 안 되고 끝나지 않을까 두려움도 앞섰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어린 학생들도 많아 걱정됐지만 실천에 옮기고 나니 오히려 더 담대해졌고 후회도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박 대통령의 담화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지만 곧장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 가서 원전건설 행사에 참석하는 등 안전과 전혀 관계없는 행보들을 계속하고 있다”며 “해경 해체는 유족들이 바란 것도 아니고 박 대통령의 가식적인 반성 태도를 봤을 때 이 사태를 장기적으로 보고 우리도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에 한신대 민중신학회 등과 연대체를 꾸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박 대통령이 전면으로 내세우고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규제 완화와 노동유연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없는 민영화가 결국 세월호 참사를 불렀다”며 “우리는 안전한 고용 보장과 비정규직 철폐, 본질적인 생명의 자본화를 막아내기 위해 박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고, 대통령 퇴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저녁 한신대 신학대학원 학생회와 감리교신학대학교 도시빈민선교회 등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삭발과 함께 시국단식농성을 선언했다. 사진=강성원 기자
 

앞서 21일 저녁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은 서울 청계광장에서 삭발과 함께 시국단식농성을 선언하며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요구 전면 수용과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책임과 비통함을 말하면서 뒤로는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는 국민을 향해 폭력과 연행을 자행하는 정부에게서 어떻게 진정성을 찾을 수 있단 말이냐”며 “세월호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사고의 모든 진상이 규명되고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상처를 치유할 확실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박 대통령이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가만히 있으라’는 정부와 경찰의 감시·억압에도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위해 싸우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민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감신대 동문으로 알려진 한 중년 시민이 감신대 신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서울 종로구 인문사회과학서점 ‘레드북스’에 세종대왕상을 점거했던 학생들에게 책을 사달라며 기부금을 전달했다.

이 회장은 “단식농성을 하는 학생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간식을 전달하거나 단식이 끝나면 치킨 20마리를 사주겠다는 시민도 있어 고맙다”며 “지방선거 후에도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고 유가족들에게 불리한 판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뭐든지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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