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후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령의 ‘참을 수 없는 문제인식의 가벼움’에 분노를 표출했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한 대응과 부실한 대책에 대한 시민사회 각계 전문가들의 비판도 쏟아졌다. 

22일 오전 참여연대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등이 주최해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와 재난안전 문제에 대한 심층 토론회에서 유경근 세월호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19일 세월호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관련해 “우리 가족들이 대통령 담화에 많이 분노했던 이유는 실종자 구조와 수습에 대한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 시점에 해경 해체라는 상상도 못 한 조치와 대안을 발표하자 진도에 있는 부모들은 담화를 들으면서 통곡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 대변인은 “심지어 유가족들은 ‘버려졌구나. 진짜로 이제 잊혔구나. 이제 남은 일은 우리가 다 같이 죽어 없어져야만 이 문제가 해결되겠구나’라고까지 말했다”며 “우리의 시급한 요구는 남은 실종자들에 대한 빠른 구조와 수습, 그리고 철저한 진상규명이지 이후 이 나라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부처를 새로 만들고 없애고 하는 것은 솔직히 관심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이면 대국민 담화에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철학이 담겨 있을 줄 알았는데 드러난 현상에 대한 화려한 개선책만 있지 근본 원인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이 사회를 사람과 생명을 첫 번째로 두는 것이 아닌 돈과 이윤을 우선시하는 천박한 대한민국 자본주의가 지배한다면 이런 사고는 또 일어날 수밖에 없고, 사고에 대한 근본 처방이 없으면 더 큰 사고 이어질 텐데 그런 내용이 담겨있지 않은 것이 많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가 지난 16일 오전 안산 와스타디움 2층 회의실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아울러 그는 “가족대책위는 일정한 사회·정치적 목적을 가진 결의 단체가 아니므로 대통령·정권 퇴진 주장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은 모두 배제할 것”이라며 “개인 주장을 접고 이 사고로 촉발된 문제점이 다 해결되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떠나고 싶지 않은 나라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선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명심하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억압을 바꿔나가기 위한 실천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문도 나왔다.

“아디오, 아디오 리멤버 미(Adieu, Adieu, Remember me)”

셰익스피어 소설 <햄릿>에서 햄릿 앞에 나타난 그의 아버지 유령이 덴마크에 닥친 재난의 진실을 알리고 사라지기 직전 했던 말이다. 햄릿의 부친은 동생 클로디오스의 계략으로 피살당한 뒤 유령으로 나타나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아들 햄릿에게 알렸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동연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에 따르면 억울하게 죽은 유령의 대사 “리멤버 미”는 통상 ‘나를 기억하라’로 번역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내 말을 명심하라’는 뜻이 들어 있다.

이 교수는 “유령의 마지막 유언은 단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추모하라는 당부가 아닌, 내가 말한 죽음의 진실을 절대로 잊지 말고 억울한 원한을 풀어달라는 간절한 요청을 담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됐거나 실종된 사람들을 향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는 말 역시 추모를 위한 ‘조문의 언술’이 아닌, 죽음의 진실과 현실의 상황을 명심하는 ‘맹세의 언술’이 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번 세월호 참사는 우연이라기보다 위험을 안고 사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들, 그 위험의 가중과 심화를 야기하는 한국적 재난 자본주의의 특이성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담화에서 밝힌 해경 해체론과 같은 강수들은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겠다는 진정성의 담론이라기보다는 강력한 국면돌파용 카드로 제시된 통치성의 언술”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청와대-KBS로 이어지는 세월호 보도통제 사태에 대해서도 “중립성을 지켜야 할 KBS 사장이 오히려 청와대에 유리한 보도 가이드라인을 보도국장에게 제시했다고 폭로된 것도 리스크(위험) 담론, 재난 담론을 통치성의 관점에서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생각에 기반한다”며 “지배 정치권력은 ‘좌파들의 시체장사’, ‘경제 불황 걱정’, ‘선거 불똥’, ‘대통령 비난’ 등을 운운하며 재난을 당한 인간을 배제하는데, 한국에서 발생했던 대형 재난 참사의 담론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참여연대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등이 주최한 세월호 참사와 재난안전 문제에 대한 심층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강성원 기자
 
또한 이날 토론회에선 재난안전 위기관리 분야를 청와대 컨트롤타워에서 배제하는 현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국가 중대 재난상황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역임했던 류희인 전 공군 소장은 “박근혜 정부는 ‘국민 안전’을 국정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설정했으나 재난 등 비군사 분야는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의 기능과 업무에서 배제하고 안전행정부 및 각 부처에 일임했다”며 “대통령의 안전 강조가 부처 수준에서는 부처 이기주의와 공무원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질됨에도 청와대 내 모니터링 시스템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돌발적으로 발생하고 진행 과정이 긴박해 대응 시간이 매우 촉박한 위기상황에 대한 컨트롤타워 기능은 청와대가 맡아 필요 시 전 국가적 역량을 신속히 투입하고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 고도의 정치·행정적 의사결정으로 발휘해야 한다”며 “대통령 직속의 위기관리 총괄 조직을 설치·운영해 국가 위기상황 발생 시 대통령의 직접 지휘하고 지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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