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대해 잘라 말했다. 34일 동안 눈물 하나 흘리지 않다가 질문도 받지 않고 출국해버리는 것 자체가 국면전환용이라는 비판이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뉴스중단 사태가 예고된 공영방송 KBS에 대한 청와대 개입에 대해서도 입을 닫았다. 시시콜콜하게 보도방향을 지시하고 인사에까지 관여한 청와대는 그저 묵묵부답일 뿐이다. 청와대의 ‘보도지침’은 KBS뿐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사에 전달됐다. ‘큰 형님(빅 브라더)’을 자처하는 청와대는 ‘불법적 지시’를 ‘당연한 임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온 방송사의 카메라 앞에서 흘린 박 대통령의 눈물도 고도의 연출에 따른 것인가. 그래서 박 대통령의 눈물은 더욱 ‘악어의 눈물’로만 보인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대국민 담화 전날 밤 열린 추모촛불집회에 참여한 국민을 토끼몰이식으로 잡아들인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언론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뒷편으로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을 마구잡이로 잡아가는 이중적 태도이다. 더구나 대국민담화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찰은 유가족을 미행하다가 덜미를 잡혔다. ‘방송검열기구’로 지탄받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인수위원회 출신인 박효종 전 교수를 발탁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는 “언론을 장악해서도 안 되고 장악할 수도 없다”고 선언하고, 실제로는 ‘방송검열’을 통한 방송장악을 강화하겠다는 속셈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종북몰이’를 통해 공안정국을 조성해 놓고 국민을 옥죄어온 김기춘 비서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을 감싸안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국민여론에 이끌려 억지춘향식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세월호 참사가 잊혀져가면 공안정국을 조성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바로 코 앞에 월드컵 축구가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 계단에서 열린 기자협회 제작거부 결의대회에 참석한 기자들이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언론을 장악해야 권력을 잡을 수 있다.’ 전두환 독재정권의 언론학살을 주도한 허문도의 ‘명언’이다. 박 대통령도 허문도의 명언을 되새기고 있는 것 같다. ‘방송을 장악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아버지 박정희의 유신독재시절 언론탄압을 재현하고 있다. 허문도도 박정희의 언론통제를 모방했으니까. 언론장악의 원조인 아버지를 따라하고 있다는 지적이 옳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가장 큰 덕목은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고 아버지를 따라한다’는 것이다. 역시 ‘이기적 유전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폭로내용만 보아도 그렇다. “내 사퇴가 청와대 뜻이라면서 길환영 사장은 눈물까지 흘렸다.” 공영방송 보도책임자의 인사를 청와대가 쥐락펴락한 것이다. 특정기자를 청와대 출입기자로 선임해달라는 부탁도 있었다고 한다. 길 사장은 ‘박대통령만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이 해경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보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으로 현재까지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을 ‘청와대 방송’으로 만들어 권력유지수단으로 악용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전두환 독재정권시절 언론학살의 뿌리는 박정희였다. 언론사 통폐합과 보도지침 시달, 언론인 강제퇴직 등은 이미 박정희가 시작했다. 이를 허문도가 동시에 강행한 것이다. 박정희는 두 차례에 걸쳐 언론사들을 통폐합했다. 또한 언론사 편집국과 보도국에 중앙정보부 요원을 상주시켜 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기자 개인의 정치성향을 파악하는 사찰이 주임무였다. 이밖에 매일 시시콜콜한 보도지침을 내려 언론보도를 엄격하게 통제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중앙정보부가 있는 남산에 끌려가 치도곤을 맞아야 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신원조회 등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야 했다. 일부는 청와대에서 선임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인들은 ‘제도언론’이라는 학생 등 재야의 비난에 못 이겨 자유언론 수호투쟁에 나섰다. 성명을 발표하고 제작거부와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를 통해 자사신문에 성명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강제퇴직이었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은 아직도 거리를 헤맨다. 동아투위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아직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통제 수법은 이를 꼭 빼닮았다. KBS에 대한 인사개입과 ‘보도지침’ 시달이 그렇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가관이다. 청와대는 “당시 KBS 말고 다른 언론에도 ‘구조가 시급한 단계에서 해경의 사기를 너무 죽이진 말아 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언론사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대통령 해외순방 때마다 꼭지 늘리기 고민이 컸다”는 발언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순방 때 대통령의 활동이 언론에 좀 더 실리도록 노력하는 것은 참모들의 당연한 임무 아니냐.” 언론통제를 ‘당연한 임무’라고 주장하는 비뚤어진 언론관이 엿보인다. 보도국장 사퇴압력 주장에 대해서는 “유족이 찾아온 후 사안의 심각성을 KBS에 전달했을 뿐”이라고도 했다. 최고 권력기관의 한마디를 언론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는가.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있었던 보도지침 사건 공판에서 검사와 정부는 단순한 ‘협조요청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지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수용여부는 언론사의 몫이라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똑같이 닮았다.

박 대통령은 “방송장악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해왔다. “방송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심도있게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 실천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말은 허언(虛言)에 불과했음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공약도 공약(空約)으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생명인 언론을 시녀처럼 부리려 한 사실이 만천하에 들통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국민의 방송’을 장악하여 정권 유지와 홍보수단으로 악용해왔음이 사실로 드러났다. 공영방송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데 대한 치부를 보도국장이 폭로한 것은 자업자득이다. KBS의 기자와 PD 등 대다수 내부구성원들이 사장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거부에 들어간 것도 사필귀정이다. ‘박 바라기’ 방송을 고발한 세월호참사 유족의 항의와 농성에서 비롯된 KBS 구성원들의 애끊는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길 사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KBS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공영방송 KBS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바닥에서부터 철저히 바꾸어 내야 한다. 고질적 병폐인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저해하는 제도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지적처럼 제도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언론연대는 “길 사장뿐 아니라 그를 앞세워 권력에 기생했던 부역세력들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의 독립을 짓밟고 유신독재의 부활을 기도하는 정치세력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도 했다. 언론연대는 4가지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의 이정현 홍보수석 해임, 길환영 사장의 사퇴, KBS 보도통제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실시, 국회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 처리 등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입버릇처럼 행한 거짓을 고백하고 사죄해야 한다. KBS를 ‘청와대 방송’에서 ‘국민의 방송’으로 돌려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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