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KBS 사장의 21일 사내 특별담화문은 지난 19일 입장발표의 재탕이었다. KBS 내부 상황은 팀장급 이상 간부들의 보직사퇴가 이어지고 있고 KBS 기자협회의 제작거부도 특파원들의 참여로 더 커졌으며 KBS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총파업 찬반투표 돌입으로 더 심각해졌지만, 길 사장은 동어만 반복하며 내부 구성원들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길 사장은 아직 시작도 안한 노동조합의 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했다. “명분과 절차로 보아도 파업을 결의한다면 이것은 분명한 불법”이라며 “명분 없는 불법파업으로 회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헛된 꿈을 접으라”고 말했다. “공영방송으로서 불법파업이 일어난다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며 “불법 선동과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장보다 엄중히 그 책임을 물어 KBS가 힘으로 밀어붙이고 정치세력에 휘말리는 구태적인 문화를 척결하겠다”고도 했다.

KBS노조와 KBS본부의 파업 절차 돌입이 불법일까? 안타깝게도 길 사장은 노동법에 대해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하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에 의한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된다.

만약 양대 노조의 파업 찬반투표 도중,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을 경우, 그 때는 이를 ‘불법’이라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KBS노조의 부재자 투표와 KBS본부의 본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이 과정에서 불법적 요소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길 사장은 아직 끝나지도 않은 파업 찬반투표를 놓고 이를 이미 ‘불법’으로 규정했다.

   
▲ 21일 KBS 사원들을 대상으로 특별담화문을 발표하는 길환영 KBS 사장. 사진=정상근 기자
 
두 번째는 명분이다. 양대 노조의 명분은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폭로한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 나아가 청와대로부터의 압력이다. 이른바 ‘방송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것이고 이는 방송법과 KBS 단협 위반이 될 수 있다. 길 사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으나 길 사장의 말만 놓고 봐도 보도 독립성을 침해한 사례는 확인할 수 있다.

길환영 사장은 ‘해경에 대한 비판을 삼가라’고 했다. 이는 길 사장도 인정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21일 대정부질의에 출석해 이 사실을 인정했다. 실제로 KBS의 초기 뉴스에는 해경의 구조활동 등에 대한 문제점이 보도되지 않았다. 대통령 관련 뉴스는 방송 20분 이내 소화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본인이 밝혔다. ‘로컬뉴스 편성’ 때문이라지만, 중요하지 않은 대통령 뉴스를 반드시 전 국민이 시청해야 할 이유는 없다.

길 사장이 지난 9일 세월호 참사로 피해를 받은 유족들 앞에서 사과할 때,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도 본인이 밝혔다. “이미 예정된 일”이라고 했지만 청와대 정무수석이 KBS 사장에게 ‘청와대 앞에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라’는 취지로 전화를 했다는 사실은 청와대와 길환영 사장의 관계의 일단을 보여준다.

특히 보도공정성 문제로 인한 언론사의 파업은 최근 법원에서 ‘합법’ 판결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서울남부지법은 “위법 상태를 시정하고 공정방송을 확보하려는 노조의 파업은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5부도 2010년 KBS본부의 파업을 “파업은 목적, 시기 및 절차, 수단 및 방법에 있어 정당한 쟁의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길환영 사장은 아직 시작도 안한 파업을 ‘불법’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부당노동행위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6장 부당노동행위 조항에는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길 사장의 ‘불법’ 운운과 ‘엄단’ 엄포는 노동조합의 파업찬반투표 행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다.

김민아 노무사는 “시작하지 않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목적과 절차도 문제라고 했는데 방송법과 KBS 단체협약에는 공정방송과 관련된 부분이 들어가 있다”며 “공정방송은 근로조건에 해당된다는 판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목적이 정치적 파업이 아니”라며 “절차적인 부분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길 사장이 그런 식으로 발언한 것은 파업을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로 조합 활동에 대한 방해”라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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