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KBS 사장의 사퇴 거부로 정면충돌은 불가피해졌다. 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KBS노조)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권오훈·KBS본부)는 21일부터 총파업 투표 일정에 돌입한다. 관건은 양대 노조가 동시에 총파업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 여부다. 만약 양대 노조 동시파업이 결정된다면 노조가 분리된 이후 첫 사례가 된다.

KBS본부는 총파업 가결을 확신하고 있다. KBS본부 측 관계자는 “불신임이 98%가량 나온 것은 역대 최고”라며 “이런 상황에서 총파업 관련 찬반투표를 할 경우 상당한 수의 찬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파업 돌입시점은 비대위에 위임을 했는데 조합원 요구나 주변 정세가 빨리 (파업을) 해야 한다는 정서가 높다”며 “이를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KBS노조는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KBS노조 측 관계자는 “최대한 참여를 높이고 찬성률을 높일 것”이라며 “각 조직별로 독려를 부탁했고 21일에는 전국 동시 실국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얘기를 듣고 공감을 높이면서 (파업 투표를)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 길환영 KBS 사장. 사진=전국언론노조 KBS본부
 
KBS노조 측은 “우리 조합은 직급, 직종 등의 분포가 다양하기 때문에 딱히 조합원 정서가 어떻다고 규정하기 힘들다”며 “결국 찬반투표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모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KBS본부와) 함께 항거하지 않으면 사태 해결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KBS 내부에서 이번 사태만큼은 직종·직급을 막론하고 일치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어느 정도 불신의 벽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KBS 보도본부 부장·팀장들이 사퇴했을 때, KBS 33기는 “불이익을 감수한 자기희생에 감사하다”고 밝혔지만 “‘왜곡된 9시 뉴스’의 얼개를 꾸린 것은 그 선배들”이라며 “무엇이 과오였는지 고백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하나의 관건은 정부·여당의 입장이다. 청와대는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청와대의 KBS 보도·인사개입을 폭로했음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19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재차 사과했지만 KBS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미래창조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를 통해 KBS 사태를 다루려 하지만 새누리당의 비협조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길환영 사장 등 KBS 관계자들을 국회로 부르는데 소극적이다. 조해진 새누리당 미방위 간사는 20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방송사의 경우 정치권에서 불러 실랑이 하는 건 최소화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현재 KBS의 사장 선임구조가 정치권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KBS 문제를 ‘모른척’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난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파업했을 때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업에 돌입할 경우 장기화가 우려되고, 장기화 될수록 노동조합이 입을 상처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KBS 노조 측 관계자는 “(길환영 사장이)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벌써 자진사퇴를 했어야 옳다”며 “그런데 저렇게 버티고 있는 걸 보니, 3년 전 김재철 사태를 떠올리게 되면서 일말의 불안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전면파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빠른 해결 방식은 KBS이사회(이사장 이길영)가 길 사장을 해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KBS 이사회 야권추천 이사들이 길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제출했고 21일 이 문제가 논의된다. KBS 여권추천 이사들은 이에 19일 길 사장을 불러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7:4구조의 KBS 이사회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침묵 속에 길 사장을 해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청와대가 CBS의 조문 연출 보도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정작 사실이 아니라면 더 큰 명예훼손인 김시곤 전 국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또한 지난 9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으로 갔을 때 청와대가 빠르게 길 사장을 불러냈다”며 “청와대와 KBS 사장의 커넥션이 필요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인데 청와대가 지금 침묵을 지키는 것은 심각한 신호”라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21일 특별이사회가 열리는데, 아마 이 자리에서 사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총파업으로 가게 되면 노측은 크게 다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길 사장은 노조에 정치적 색을 씌웠다”며 “일종의 신호”라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하지만 이런 대응은 결국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반KBS 정서가 확산돼 KBS가 제2의 해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5일 보도된 한겨레 여론조사에 따르면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62%가 ‘정부에 편향적인 보도였다’고 답했다. 최 평론가는 “이미 SNS나 국민들의 집회에서도 언론은 중요한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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