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는 수백 명의 생명을 물속에 잠기게 한 시린 고통의 산물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던 정부의 총체적인 무능과 몰염치를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는 엄포에 사고 원인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 당국의 숱한 실책들이 국민과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은폐·조작 의혹을 키웠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진실을 숨기려 해도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빠뜨린 참사의 진상은 계속해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민간잠수부들의 폭로, 정부의 언론통제 정황 등 국가권력과 탐욕에 눈이 먼 기업의 추잡한 민낯들이 밝혀지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국민의 분노가 거리로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려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청와대와 유착한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짜 맞춘 왜곡된 사실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된 시민들이 ‘우리의 힘으로 진실을 찾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변 세월호 참사 특위 “명백한 진상규명이 피해자를 위한 최선의 예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달 25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사고와 관련된 여러 의혹과 문제점을 파헤치기 위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세월호 참사 민변 특위)를 구성했다.

민변은 지난 8일 세월호 참사 특위 공식 출범과 함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17대 과제’를 제시했다. 민변은 “사고와 관련한 제반 문제들에 대한 명백한 진상규명만이 사망자 등 피해자들에 대한 최선의 예우이자 지원이라는 판단하에 17대 과제를 선정했다”며 “수백 명의 생명을 수장시킨 세월호의 침몰과 엉터리 구호의 구조적인 배경과 원인을 밝히고, 참사와 연계된 모든 책임을 가려내 주요 책임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처벌, 탄핵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민변 특위는 정부 주도가 아닌 세월호 피해자들과 함께 시민사회 차원의 투명한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이나 희생자들에 대한 피해 배상을 앞세워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흐리거나 이를 방해하는 일은 어떤 경우든 용납돼서는 안 된다”며 “희생자들에 대한 피해 배상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에 따른 결과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권영국 민변 특위 위원장은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정부의 발표와 실제 구조 내용과 인원이 차이가 나는 등 모두 엉터리였다”며 “이처럼 안전관리에 무대책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사고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조사를 못할 것이므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진상규명 노력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변 특위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밝혀내고자 하는 과제는 크게 △세월호 침몰의 근본적인 원인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 △세월호 구조과정에서의 문제점 △사고 이후 정부대응과 수사과정에서의 문제점 등 4가지다.

이 중 여전히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정확한 침몰 경위와 원인이다. 이와 관련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기록 은폐·조작과 갑작스러운 자동식별장치(AIS) 고장, 배가 기울기 시작한 시점 등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세월호 사고의 최초 이상 징후가 언제 발생했고 그 이후 이상 징후에 대한 보고와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는지, 사고 당시 AIS가꺼져 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의문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게 민변 특위의 요구이다.

이와 함께 사고 이후 정부가 언론과 국민 여론을 통제하고 사복경찰을 동원해 피해자 가족들을 감시한 의도와 이를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에게 압력을 행사해 합리적인 문제제기에 재갈을 물리려 한 사실도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 해경 수사를 받으며 해경 수사관의 집에 머물렀던 이유와 이들의 출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아파트 현관 CCTV가 왜 지워졌는지, 아파트에서 이 선장이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국정원이나 청와대, 청해진해운 관계자인지) 밝히는 것도 민변 특위가 선정한 진상규명 과제다.

세대행동 “시민백서에 진실 담고 KBS 수신료 거부로 언론 바꿀 것”

한편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로 세월호 사고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세대행동)은 세월호 침몰사고를 기억하고 행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지를 마련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지난달 16일 세월호 사고가 터진 후인 20일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을 비롯한 8명의 시민이 뜻을 같이해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고, 지난달 29일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 공식 카페
 
지난 7일 2차 모임까지 진행한 세대행동은 즉시 실천 가능하고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의논했다. 이 모임의 제안자이기도 한 선대인 소장은 “참여 인원을 늘려서 대중적인 힘과 파급력을 키우는 단체를 만들기보다 온라인 카페를 근거지로 하고 정보 축적에 중점을 두려 한다”며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들이 큰 행동이 아닐 수 있어도 누군가 해야 하는, 조그만 행동이라도 할 수 있는 모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 소장은 이날 세월호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시민백서’ 제작도 제안했다. 정부에서 만들어질 백서나 보고서는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해 정부의 입장을 합리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시민백서 제작을 위해 필요한 전문가 그룹이나 백서에 담을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확정하진 않았지만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세월호 생존자들의 증언 등도 담아낼 계획이다. 백서 제작 비용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소셜펀딩(social funding)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선 소장은 시민백서 제작의 필요성에 대해 “가장 중요한 생존자들의 증언이 아직 충분히 안 나오고 있고 전반적인 취합도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이들의 기억도 흐려지고 증언만이 아니라 갖고 있던 증거물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모으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본적으로 현장에 있었던 가족들과 생존자, 세월호 사고와 관계된 내부고발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전문가 그룹이 언론보도 등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낼 것”이라며 “독립적인 블로거나 작가 등 폭넓은 인력풀을 활용해 정부에서 숨기려고 하는,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목소리를 담아내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세대행동은 이번 세월호 사고를 보도하면서 사고 첫날부터 실종자 수 등 수많은 오보를 양산하고, 실제 구조 현장과 괴리된 기사로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우롱한 언론 환경을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특히 공영방송이자 국가재난주관방송으로서 역할을 못 하고 관제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KBS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과 새누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수신료 인상 반대 서명 운동을 주도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KBS 사장과 보도본부장 퇴진도 촉구하고 있다.

선 소장은 수신료 거부 운동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KBS 이사회에 청와대 눈치만 보는 여당 인사가 다수 포진된 현 상황에서 지배구조 개혁은커녕 올바른 보도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국민이 집단으로 대규모 수신료 납부를 거부해 정말 실질적인 재정 타격을 준다면 KBS가 청와대가 아닌 국민의 눈치를 보며 제대로 보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BS 개혁은 단순히 간부 사퇴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라 나아가 방송법 개정까지도 요구해야 하므로 국민의 수신료 거부 운동이 국회에 압력을 줄 수 있는 지렛대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선 소장의 진단이다. 아울러 세대행동은 연간 350억 원이 넘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연합뉴스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도록 정치권과도 접촉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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