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길환영 체제’가 혼돈에 빠졌다. KBS의 혼란은 세월호 참사 관련 KBS 보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KBS 앞을 항의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그 중심에 김시곤 전 국장이 있었다. 하지만 김시곤 전 국장의 ‘사장의 보도통제’ 폭로로 이제 관심은 길환영 KBS 사장의 진퇴 여부로 이동하고 있다.

김시곤 전 국장은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KBS 보도에 길환영 사장이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국장은 지난 9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언론에 대한 가치관과 식견도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 전 국장은 같은 날 JTBC와의 인터뷰에서 “길환영 사장 같은 언론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공영방송 사장을 해선 안 된다.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했다”며 “(길 사장은) 윤창중 (성추행)사건을 톱뉴스로 올리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고 폭로했다. 아울러 “길환영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며 “권력은 KBS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지난 9일 청와대 인근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1박 2일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 유가족들에게 사과하는 KBS 길환영 사장. 사진=강성원 기자
 
공정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해야 할 공영방송의 사장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어서 파장은 컸다. 김 전 국장의 주장대로라면 길환영 사장 취임 이후에도 KBS는 지속적으로 정권 편향적인 보도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를 주도한 사람이 길 사장이라는 얘기다. KBS의 보도 책임자가 직접 이와 같은 주장을 했기 때문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권오훈·이하 KBS본부)와 KBS 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이하 KBS노조) 등 양대 노동조합과 KBS 기자협회(회장 조일수)가 모두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세 조직 모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고, 기자협회는 회원 다수의 찬성으로 제작거부까지 결의했다.

KBS본부와 KBS노조는 공동행동도 모색하고 있다. 양 측은 13일 길 사장에 대한 신임투표를 놓고 협의를 가졌다. 길 사장은 사장 취임 직전 KBS 양대 노조가 꼽은 ‘사장이 돼서는 절대 안 될 인물’에 포함된 바 있다. 이후 보도공정성뿐 아니라 학자금 문제 등 몇 차례 노사 갈등을 겪은 바 있어 신임투표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조만간 KBS 내부에서 길환영 사장에 대한 퇴진 투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조일수 KBS 기자협회장은 제작거부 시기에 대해 “봄이 왔는데 언제 꽃이 피냐는 질문과 같다”고 말했다. 시기문제만 남았을 뿐, 요구사항을 받지 않는다면 제작거부 돌입은 확고하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길 사장에 대한 퇴진요구는 확고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길 사장에 대한 퇴진요구는 언론계 전반이나 정치권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언론단체들은 지난 12일 오후 K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길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13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를 열고 길 사장과 임창건 보도본부장 등 KBS 간부들에 대해 출석을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의 상임위 개최 거부로 파행됐다.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미방위 간사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공영방송이 편파보도와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는 배경은 길환영 사장의 역할 때문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라며 “미방위 차원에서도 현안질의 개최를 요구하고 길환영 사장 등에 대한 출석을 요구 한 상태지만 새누리당이 여야 간 세월호 진상규명 관련 원칙적 합의에도 이를 거부한 것은 진정성이 의심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해진 새누리당 미방위 간사는 이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정략적인 입장을 갖고 언론사를 불러 따지는 것은 부당하다”며 “야당은 KBS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데, 방송사 인사에 대한 간섭이자 압박”이라고 반박했다.

KBS 안팎에서 길환영 사장 퇴진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길 사장과 KBS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길 사장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주장에 대해 KBS본부가 공개질의서를 보냈지만 이에 대해서도 답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길 사장의 침묵에는 사실상 자진사퇴 거부의 뜻이 담겨있지 않겠냐는 것이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퇴진 압박에 길 사장이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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