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KBS 사장에 대한 퇴진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권오훈·이하 KBS본부)가 12일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고 사실상 길환영 사장에 대한 퇴진투쟁에 돌입한데 이어 13일 새벽, KBS 기자협회(회장 조일수)가 길환영 사장과 임창건 보도본부장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제작거부에 돌입키로 했다. KBS 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이하 KBS노조)도 같은 날 비상대책위원회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길 사장 퇴진투쟁에 나섰다.

이들이 길환영 사장 퇴진에 나서게 된 계기는 길 사장이 청와대와 유착해 KBS 보도에 개입했다는 폭로 때문이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지난 9일 기자회견과 JTBC와의 인터뷰에서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세월호 뿐 아니라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국장은 “길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 유족들이 김시곤 KBS 전 국장의 발언에 대해 길환영 사장의 사과와 김 전 국장의 파면을 요구하자, 길 사장은 지난 9일 청와대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 중인 유족들을 찾아 사과했다. 길 사장은 이 자리에서 보도국장의 해임을 약속했지만 정작 김 전 국장은 KBS 보도 공정성 논란의 중심에 길환영 사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 길환영 KBS 사장
 
신임 백운기 보도국장 인사와 관련한 논란도 이어졌다. KBS노조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KBS가 새로 임명한 백운기 보도국장이 임명 직전 청와대 관계자와 접촉한 정황을 폭로했다. 길 사장이 지난 9일 유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시간 이후부터 정확하게 여러분 마음을 헤아리고, 이 사고가 조기에 수습됨으로써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마음에 위안이 되고 우리사회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방송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또 다시 청와대와의 연계설이 번진 것이다.

KBS본부는 길 사장의 자진사퇴를 먼저 촉구한 뒤, 이에 응하지 않으면 KBS노조와 함께 길 사장에 대한 신임투표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KBS본부는 “보도국장 말대로 KBS 보도의 편파성이 청와대와 오로지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사장의 지시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면 길 사장이 스스로 책임지는 길 밖에 없다”며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KBS 구성원의 손으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본부와 KBS노조는 13일 양대 노조 집행부가 만나 신임투표와 관련 협의를 가졌다. KBS본부는 금주 중 KBS노조와 함께 신임투표에 돌입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며 KBS노조는 14일 입장을 밝히겠다는 계획이다. KBS본부는 KBS노조가 신임투표에 참여하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15일부터 3일 간 신임투표를 벌일 계획이다.

KBS노조는 14일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비대위’를 출범시키고, 길환영 사장의 퇴진과 대통령 사과, 청와대 정무·홍보수석 해임 그리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특별다수제 등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는 길 사장 등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거부 투표에 돌입했다. 지난 12일 진행된 총회에서 투표 인원 193명 중 182명이 찬성, 94.3%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기자협회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고 제작거부 돌입 시기와 방식은 비대위에 위임하기로 했다. 조일수 KBS 기자협회장은 “구체적인 우리의 결의를 회사 측에 전달하고 이에 대한 회사 측 답변을 들어야 한다”며 “그 답변에 따라 비대위에서 논의를 거쳐 안 되겠다 싶으면 제작거부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KBS 외부에서도 길 사장에 대한 퇴진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K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른 사람도 아닌 보도본부의 핵심 인사에게서 나온 이야기인 만큼 KBS에서 보도통제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KBS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탈바꿈시키려면 우선 보도통제의 주역, 청와대의 하수인 길환영부터 KBS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와 길환영 사장은 내부의 퇴진 요구에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청와대 개입설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KBS 측 관계자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주장에 대해 “전반적으로 사실과 다르다”며 “일일이 반박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백운기 신임 보도국장의 청와대 접촉설에 대해서는 “당시 시사제작국장이던 백운기 국장은 지난 11일 삼청동 총리공관 주변 커피숍에서 업무 협의차 관련자와 만났지만 이는 보도국장 임명과는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며 “보도국장 임명은 부사장과 보도본부장의 추천을 받아 내부 인사절차를 거쳐 사장이 임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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