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지난 8일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오마이뉴스의 청와대 춘추관 출입을 정지하는 징계를 결정했다.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는 63일, 한겨레는 28일, 한국일보는 18일간 출입정지다. 청와대 대변인이 비보도(오프더레코드)를 요구하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을 했는데 몇몇 기자가 이를 보도했다고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청와대 출입을 제한한 것이다.

사건은 이렇다. 세월호 참사 당일이던 4월 16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의전용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4월 21일 공식 브리핑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비보도(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서남수 장관에 대한 비판여론을 두고 “(서 장관이) 계란을 넣어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 먹은 것도 아니다. 쭈그려 앉아서 먹은 건데 팔걸이의자 때문에…”라며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서 장관은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는 체육관 내에서 응급 치료가 이뤄지던 탁자의 의약품을 치우고 컵라면을 먹었다며 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비보도를 전제한 민경욱 대변인의 발언은 부적절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비보도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밝힌 뒤 22일 관련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이후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수많은 매체가 이 사실을 보도했다.

   
▲ 지난 2월 6일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는 민경욱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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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계속해서 비보도를 유지하며 민경욱 대변인의 발언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에게 징계를 통보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징계결정은 중앙일간지․통신사․방송사․경제지․인터넷매체․영문뉴스․지역언론 등 매체별 간사들이 모인 징계위원회에서 결정했다. 징계기간 동안에는 청와대 출입 제한은 물론 청와대가 제공하는 일체의 자료를 받을 수 없다. 출입정지 징계를 받으면 일주일 안에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

이번 징계는 대다수 기자들이 ‘출입기자단’이란 이름으로 최고 권력기관의 감시와 견제를 외면한 사건으로,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한 기자들을 오히려 징계함으로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해 논란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민경욱 대변인의 발언은 참사에 대한 청와대의 현실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음에도 결과적으로 기자단이 대변인의 부적절한 발언의 확산을 막으려 한 것이어서 문제다.

징계를 받게 된 한겨레신문은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진 상황에서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했으며, 발언 내용이 대통령의 경호상 필요한 포괄적 엠바고도 아니고, 국가안위나 개인의 안전 문제가 결부된 사안도 아니어서 비보도 약속이 계속 유지돼야 할 이유가 없었다”며 징계에 대한 재심을 요청한 상황이다.

박래용 경향신문 정치부장은 “통상 오프가 깨질 경우 당국자의 발언은 자유롭게 보도하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청와대 기자 간사단은 이례적으로 비보도를 계속 유지키로 결정했다. 민경욱 대변인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오르는 상황에서도 보도 금지 방침을 내린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라며 기자단을 비판했다. 오마이뉴스 한 기자는 “누구를 위한 청와대 출입기자단인지 모르겠다”며 개탄했다.

   
▲ 2013년 5월 출입기자단 오찬에서 건배하는 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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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한 출입기자는 “신문매체는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 징계에 대해 부당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신문들끼리 회의를 했는데 재심결과를 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이지운 청와대 출입기자단 대표간사(서울신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재심을 논의 할 것이다. 시점 등은 미정이다”라고 밝혔으며,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징계결정에 대해선 “발언하기에 민감하다. 우리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르다. 논의과정이 필요하다”며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청와대와 출입기자단과의 유착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란 지적도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과거에 비해 엠바고와 오프더레코드가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필요했던 이상으로 남용되고 있으며 기자들은 이를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기자라면 오프를 요구한 청와대에 문제제기 하는 게 맞지만 청와대기자단은 스스로 언론의 존재 이유를 축소시키며 청와대와의 유착관계를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춘추관에는 현재 취재기자 60여명을 포함해 180여명의 기자가 상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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