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세월호 침몰사고는 대한민국을 슬픔의 바다로 만들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들의 유언과도 같았던 마지막 메시지와 끝까지 승객을 구하려다 숨진 승무원 등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면서 이들을 위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은 전국을 뒤덮었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에 눈멀어 안전을 내팽개친 모든 어른의 안일함과 무책임, 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구조작업이 빚어낸 비극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를 더 불행하게 하는 것은 이 같은 비극이 대한민국의 언제, 어디서나 되풀이될 수 있다는 불안이다.

실제로 참사는 세월호가 잠긴 바다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버스사업장에서도, 활동보조인도 없이 홀로 생활하던 장애인의 집 안에서도, 해고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에도 이들을 끌어안지 않은 쌍용자동차 공장 밖에도,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시장 후보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서도 많이 이들이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 속에서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떠났다.

전남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가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쓰러져가던 그날, 전북 전주에 있는 한 시내버스 회사에서도 노동자 한 명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동료들의 신고로 119를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급성 심근경색으로 끝내 숨졌다.

   
공공운수노조 전북버스지부는 지난달 17일 오전 전주시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부지회장의 죽음은 버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규탄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전북버스지부 제공
 
전주 시내버스 신성여객지회 부지회장인 김부관(52)씨는 16일 오후 간부 회의를 마치고 노조 사무실로 돌아온 후였다. 동료들에 따르면 그는 전주 시내버스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노무관리를 바꾸기 위해 지난 2010년 민주노조 건설에 참여한 후 긴 파업 투쟁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조합원들에게 모범이 됐다.

그래서였을까. 김씨의 죽음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씨는 하루 18시간 동안의 장시간 노동에서 오는 과로와 사고 위험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왔으며 지난 1월부터 3월까지는 적정 근무일수(66일)를 12일이나 초과한 78일을 일했다. 게다가 그는 민주노조를 결성한 이후 사측의 극심한 노동탄압에까지 시달려 왔다는 게 동료들의 증언이다.

자살기도 버스노동자 “다음 생에는 버스기사가 대우받는 곳이었으면…”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는 “버스노동자들은 그동안 심근경색을 포함해 긴장감과 스트레스 질환, 불규칙한 식사와 생리활동으로 인한 위장병과 방광염, 노후차량과 경직된 자세에서 기인한 허리와 어깨, 목의 근골격계 질환 등 산재에 시달려왔다”며 “민주노조는 이런 열악한 근로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오히려 사업주들은 이런 활동을 빌미로 조합원에 대한 차별, 과도한 징계와 해고를 자행하고 노노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성여객에 버스노동자들은 노동절인 지난 1일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날벼락과 같은 비보를 받았다. 신성여객 해고노동자인 진기승(47)씨가 지난달 30일 밤 11시20분경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진씨를 발견한 조합원들에 의해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현재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진씨는 휴대폰에는 “버스파업이 시작된 지 몇 해 동안 나는 열심히 투쟁했지만 그간 가정이 파괴되고 내 생활은 엉망이 돼버렸다. 또다시 나같이 억울하게 해고당하는 일이 없도록 똘똘 뭉쳐 투쟁해서 여러분의 권리를 행사해 달라. 다음 생에는 버스기사가 대우받는 곳에서 태어나겠다”는 유언이 남겨져 있었다.

진씨는 지난 2012년 사측의 공격적 직장폐쇄에 맞서 파업을 벌이던 중 폭행 혐의로 기소됐으며 사측은 단체협약을 위반하면서까지 징계위원회를 열어 진 조합원을 해고했다.

   
▲ 진기승씨가 30일 동료에게 보낸 예약 문자 메시지. 이 메시지는 노동절인 지난 1일 오전 도착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연맹 전북본부 제공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지난해 5월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이 났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판정을 뒤집고 사측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진씨가 자살을 기도한 바로 다음 날이자 노동절인 지난 1일 열린 행정소송에서 광주지방법원은 중노위의 판결은 부당하다며 진씨의 손을 들어줬다. 사측이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복직만 시켜줬어도 그는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성여객 측 관계자는 6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회사에서도 김씨가 산재 처리될 수 있도록 서류를 준비하는 등 최대한 배려하고 있고 산재의 최종 판단은 근로복지공단에서 하는 것”이라며 “노측에는 유족보상금을 주장하고 있지만 유족 보상은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도, 의무사항도 아니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그는 진씨의 복직과 관련해선 “복직 명령이 떨어지면 복직시켜야 하는데 중노위에서 해고 명령을 내렸고, 행정법원의 복직 명령이 14일 이내에 떨어지면 그때 복직을 해야 하는데 지금 진씨가 안타깝게 그렇게 됐다”고 덧붙였다.

25번째 故쌍용차해고노동자 “병원에 있어 투쟁기금 못 도와줘 미안해”

해고 무효 판결을 받고도 사업장으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는 진씨만이 아니다.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 사태 이후 세상을 등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은 벌써 25명에 이른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7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낸 해고무효확인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사측은 해고자 문제 해결보다는 대법원 상고로 이들을 끝까지 외면했다. 결국 또 한 명의 해고노동자가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 2월 14일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평택공장 앞에서 "정리해고 진짜 주범,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1993년 쌍용차 창원공장에 입사해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회사에서 쫓겨난 정아무개(50)씨는 지난달 23일 경남 창원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되고 있지만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에 따르면 그는 해고 이후 생계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며 택배기사부터 폴리텍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몸이 붓고 아파도 입원조차 못 했다.

정씨가 숨지기 며칠 전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을 준비 중이던 창원지회 해고노동자에게 “온몸이 부어서 병원에 있음. 입원하라는 것 학교 땜에 곤란하다 하고 통원치료(중). 몸에 힘이 전혀 없고 심장 및 옆구리에 물이 많이 찼다”며 “걷지를 잘 못 함. 못 도와줘 미안하네”라는 문자를 남겼다. 동료들에게 남긴 이 마지막 말이 그의 유서가 됐다.

정부 특별근로감독 받는 날도…현대重 비정규 하청노동자 추락사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몽준 서울시장 새누리당 경선 후보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사에서도 지난 3월6일부터 4월28일까지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비정규 하청노동자가 산업재해 사고로 8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쳤다.

특히 지난달 28일은 울산 현대중공업 사업장이 앞선 선박 화재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은 날이었음에도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인 우성기업에 고용돼 일하던 김아무개(37) 노동자는 비가 오는 악천후 속에서 야간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랜스포터(선박 조립용 블록을 옮기는 차) 신호 작업을 하다 안전조치 없이 바다로 추락해 숨졌다.

‘시민의 안전을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던 정몽준 후보는 지난달 29일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TV토론에 나와 “현대중공업에서 최근 안전사고와 인명사고가 발생한 점에 대해 유족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지만 “현대중공업은 나쁜 회사가 아니다”고 말하며 기업의 책임은 두둔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정몽준 후보 캠프 사무실 앞에서 현대중공업 산재사망을 외면하고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강성원 기자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정 후보는 자신이 실소유주인 현대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는데 산재 사망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대책 수립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만을 전면방어하고 있다”며 “산재 예방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수립 요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그는 서울시장 당내 경선 후보에서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열린 문으로도 나오지 못해…중증장애인 화재로 숨져

몸이 불편해 안전의 사각지대에 있음에도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13일 중복장애 3급인 송국현씨(53)는 서울 성동구 자택 화재로 전신 3도의 화상을 입은 후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17일 상태가 악화돼 결국 숨을 거뒀다.

뇌병변 5급에 언어장애 3급인 송씨는 사고 당일 집에 혼자 있다가 불이 나자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거동이 불편해 열려 있는 문으로도 혼자 탈출하지 못해 이 같은 변을 당해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24년 동안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지내다 지난해 10월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 시작한 송씨는 편마비가 심해 혼자서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중복장애 3급 판정을 받아 정부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송씨가 1·2급 장애인에게만 주어지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았다면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충분히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장애 인권·복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녹색당 역시 성명을 통해 “중증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 24시간 서비스가 실행되지 않아 2013년 사망한 고 김주영 활동가와 ‘파주남매’ 등 화재로 인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장애 등급에 의해 서비스 신청조차 제한하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해 장애인들의 몸과 정신을 파괴하는 사회적 타살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故 송국현씨. 사진=비마이너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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