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광주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제 및 노동절 행사에서 ‘횃불’이 등장한 후 경찰이 행사 주최자에 대한 신속한 수사에 나섰다. 

광주에서는 과거에도 이 같은 횃불시위가 종종 있었지만 경찰이 특별히 제지하거나 수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SNS 등을 통해 횃불시위에 대한 여론의 호응이 커지자 경찰이 이례적으로 발 빠른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광주지역의 시민단체들도 경찰이 행사 주최자의 출석요구서를 집에 혼자 있는 초등학생에게까지 전달한 것은 아동인권마저 경시한 과잉 법 집행이며, ‘횃불시위’는 광주 5·18정신을 상징하는 통상의 집회 문화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는 124주년 세계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저녁 광주역 광장에서 노동자대회와 함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제를 가졌다. 당초 노동절에 쉬지 못하는 교사와 공무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30일 노동자대회가 미리 잡혀 있었지만, 지난달 16일 예기치 못한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추모제 성격으로 바뀌었다.

   
124주년 세계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저녁 광주에서 노동자대회와 함께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행진에 '횃불'이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사진=트위터 이용자 @revchang
 
광주시민단체 “횃불시위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

박봉주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후 추모제도 같이 진행하기 위해 노동자대회를 촛불집회 형식으로 바꾼 것”이라며 “행사의 후반부까지도 추모제로 치러졌고 마지막에 대회사를 하면서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슬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정권의 잘못에 대해서도 분노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촛불 추모제에 이어 금남로까지 행진하는 과정에서 횃불이 등장한 이유에 대해 “본부 차원에서 미리 준비했던 것은 아니고 촛불이 추모의 의미라면 횃불은 역사적으로 광주의 저항과 분노의 의미를 형상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며 “정작 행사 당일에는 행진을 취재하는 기자가 한 명도 없었고, 경찰도 폴리스라인 잡아서 인도해줘 물리적 마찰이나 제지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횃불이 전혀 위협을 주지도 않았고 주변 시민들 역시 오히려 지지하고 박수도 쳐줬다”며 “당일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튿날 인터넷상에서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면서 논란이 됐고, 1일 저녁 느닷없이 경찰이 집에 찾아와 초등학생 딸에게 출석요구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광주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마다 종종 횃불이 등장했으며 횃불시위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현주 참여자치21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나도 사건기자 생활을 10년간 했지만 5·18을 취재할 때마다 구도청 분수대 광장에서 횃불시위를 많이 했고, 민주노총 등 노동 관련 단체에서 선전전 형태로도 해 왔다”며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횃불에 민감해지면서 통제를 했지만 경찰과 합의가 잘 돼 진압하지 않았고, 과열 시위로 번진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평화적인 횃불집회로 끝났음에도 경찰이 과잉 대응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그는 “횃불시위 자체보다는 정권 퇴진 목소리가 나오다 보니 반정부 시위를 우려하는 경찰청 차원의 지시로 봐야 할 것 같다”며 “세월호 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정권 윗선에서부터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7년 5·18 광주민중항쟁 27주년을 기념하는 전야제가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대형 태극기를 선두로 횃불시위가 재연되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연합 “과잉 법 집행…아동인권 경시한 참으로 얼빠진 처사”

광주동부경찰서 수사관들은 1일 저녁 7시경 박 본부장의 자택으로 찾아가 부재중인 박 본부장 대신 그의 딸인 박아무개양(11)에게 출석요구서가 담긴 봉투를 전달했다. 아울러 수사관들은 박양에게 박 본부장의 연락처를 물었고 경찰로부터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박 본부장은 경찰의 과잉 집행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이와 관련해 광주동부서 수사과 관계자는 2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횃불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상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고 여러 개가 연기를 날리고 인도의 플래카드 등 화재 위험성도 있어 위법성을 검토해 판단한 것”이라며 “박 본부장의 딸에게 출석요구서를 전달하긴 했지만 범죄사실까지 밝힌 건 아니고 현장에서 바로 박 본부장과 전화번호를 물어 통화하면서 설명도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경찰의 ‘몰인권’적 행위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노총은 2일 성명을 내고 “대회를 개최한 민주노총 광주본부장을 조사하겠다며 재빠르게 출석요구서를 발부하고, 이를 집에 홀로 있는 어린 자녀에게 전달했다”며 “우리는 어린 생명들을 버린 정부의 행태를 떠올리며 아이가 느꼈을 공포에 다시금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김정현 새정치민주연합 부대변인도 이날 오전 논평을 통해 “이미 이 집회는 신고가 돼 있었고, 당일에도 경찰은 현장에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교통을 통제하고 행진에 폴리스라인을 치며 협조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면서 “초등학교 5학년 딸에게 출석요구서를 전달한 것은 세월호 참사로 민심 동향을 크게 우려한 무리한 과잉 법 집행이고 아동인권 보호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참으로 얼빠진 처사”라고 비난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