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해양수산부 재난관리 매뉴얼에 “충격 상쇄용 기사 아이템 개발”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안전행정부의 ‘재난 유형별 주관기관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기자들 질문에 “빠른 시간 내에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하고 가정을 포함한 질문에는 “가정해 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대답하라고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 재난상황반 운영계획에는 방송정책국에서 “방송사 조정 통제”를 주요임무로 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방통위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서 ‘사회적 여론환기’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방통위나 해양수산부 등의 문건과는 별개로 이미 언론에는 ‘충격 상쇄용 기사’가 나오고, 정부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은 환기되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북한의 핵실험 징후가 있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풍계리 핵실험장 남쪽 갱도에 차량 움직임이 늘어나고 가림막이 설치됐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날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 정부가 통합위기관리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비유하자면 언제든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는 오픈 항공티켓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고,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당시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묻는 공문을 보냈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 일반적인 북한 핵실험 징후와 거리가 멀다.

한국일보는 지난 25일자 10면 <해수부 위기관리 매뉴얼 보니 “대형사고 땐 충격상쇄 아이템 발굴하라”> 기사에서 “북한이 비상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태도를 우리 측에 보였다”며 “세월호 참사로 위기에 몰린 우리 정부가 핵실험 비상 정국으로 몰아간 게 아니냐는 뒷말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 지난 23일 KBS 뉴스9를 통해 보도된 구원파 종교시설 보도, KBS는 이 시설에 대해 ‘본거지’라는 표현을 썼다
 
KBS는 지난 22일 세월호 직후 보도로 관련 소식을 전했고 23일에도 관련 리포트를 했다. 24일에는 3개의 리포트로 해당 소식을 다루었는데 <위로·협박 북한의 ‘두 얼굴’…핵실험 강행하나?> 리포트에서는 “한반도 정세가 긴장 국면을 맞은 가운데 북한의 핵실험 강행 여부가 앞으로 남북 관계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MBC도 비슷하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 징후에 대해 언론이 보도할 수는 있다. 문제는 세월호 참사 보도는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보도’는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의 구원파 보도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충격상쇄용’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부정과 세월호 관련 의혹 등이 확산되는 와중에 구원파에 대한 ‘신변잡기식’ 보도에 무게중심을 두는 보도행태를 보이고 있다.

MBC는 지난 23일 뉴스데스크 <구원파 신도들 집단생활…철통보안 ‘금수원’ 누구 소유?> 리포트에서 구원파 신도들이 모인다는 교단 수련원까지 찾아가 보도했다. 그리고 “검찰은 유 회장 일가가 전국 곳곳에 이 같은 시설을 조성하면서, 소유 회사의 자금을 동원했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세월호와의 연관성에 무게를 뒀다.

KBS도 23일 같은 내용을 보도했고, 구원파 신도들이 집단으로 일하는 것을 권하고 십자가는 설치하지 않고 목사와 장로도 없다는 교내 문화에 대한 리포트도 만들었다. KBS는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빠져나온 것도 이 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는데, 실제로 세월호 선장은 구원파 신도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사들의 이 같은 보도태도와 관련, 사고 원인의 일정 책임을 구원파에 돌리면서 구원파에 대해 사이비 종교집단 이미지를 덧씌워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제는 이들 방송사들이 정부나 해경에 대한 비판은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29일 대다수 일간지가 해경의 초기 대응 허점에 대한 비판 기사를 내보냈지만 하루 전인 28일 KBS 뉴스9는 <‘구조 안간힘’ 해경 뒤로 ‘줄행랑’ 선원들> 리포트를 내보냈다.

때문에 해수부의 ‘지침’이나 방통위의 ‘방송 통제’ 문건과 KBS 보도가 연결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정부의 영향이 있었는지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지상파 방송들이 사회적 문제를 밝히거나 정부의 책임을 밝혀내기 보다는 선장과 선주에 대한 지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분명 제대로 된 재난보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김 처장은 “지금 당장 구원파에 대해 밝혀내는 것이 시급한 문제인지는 의문”이라며 “수사가 진행되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지금은 국민들에게 욕을 먹을 대상을 처음엔 선장으로 잡았다가 유병언 회장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반면 진짜 책임져야 할 단위에 대한 보도는 굉장히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국민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의 보도 통제와 맞아 떨어지는 그림”이라며 “정부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방통위나 정부 부처의 매뉴얼 때문에 언론이 이와 같은 보도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방통위가 문건에 따라서 지상파를 조정 통제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방통위가 지상파를 통제할 만한 여력도 없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상파 방송사들은 방통위나 특정 기관의 통제가 없어도 그런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며 “KBS의 성금 모금 논란 뿐 아니라 희생자들의 미담을 부각시키고, 안타까운 사연을 기사로 내보내고 있는데 이는 재난이 발생하면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관점으로 접근해 기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여러 문제들을) 차분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시점에 부수적인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화제전환 시키려는 것”이라며 “서로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아 이 위기를 극복하고 끝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언론사들이 이 상황에 정치적 측면을 고려하면서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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