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 부패도 안 돼 있고, 피부색도 안 변하고 말랑말랑했다.”

지난 22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표단은 “단순 익사라고 보기 힘든 시신들이 나오고 있어 가족들의 요청대로 정확한 사망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더 일찍 구조될 가능성이 있었는지는 부검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검을 통해 단순 익사로 밝혀질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상대가 해운사이겠지만, 만약 여객선 침몰 후 오래동안 살아 있었음에도 구조가 늦어져 공기 부족으로 질식사했거나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면 ‘늑장 구조’에 대한 상당한 책임은 정부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23일 진도 임회면 팽목항으로 운구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모인 가족대기소에서 만난 한 단원고 실종 학생의 아버지는 “일요일(20일) 새벽까지 육안으로 봐도 아이들의 상태가 아주 좋았고 월요일 이후에도 거의 식별이 가능했다”며 “현재에도 그 정도 상태가 유지돼 있어 아이들이 오래 살아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반인의 상식으로 봤을 때도 물에 며칠 동안 잠기면 부패가 어느 정도 되고, 손이 어느 정도 붓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여기 대부분 부모들의 생각은 죽은 지 얼마 안 됐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봤을 때도 일단 상태는 좋았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실종 학생의 어머니가 진도 팽목항 바닷가에서 오열하다가 경찰과 구급요원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소로 가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사고 이후 정부 대응이 오락가락 혼선을 빚으며 구조 작업이 늦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해양경찰 등이 초기 대응을 분명히 잘못했다는 여러 가지 정황이 나와 있지만 정부는 절대 인정을 안 한다”며 “나도 첫날부터 두 번 사고 현장에 들어가서 보고 친척까지 세 번이나 가서 계속 확인했는데 민·관·군 합동으로 수백 명의 구조 인력과 함정 수백 척이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언론보도와 달리 배만 70대 떠 있을 뿐 구조는 안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복지부는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하고, 안산시에서도 실종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만 이제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이 이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일주일 있어보니 말로만 때우려 하지 실제로 책임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없어 정말 형편없는 것 같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처럼 정부의 사고대책이 총체적으로 허술함에도 부검까지 해서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기엔 생각할 여유도, 확신도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구조가 늦었으면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직은 가족 대표단의 의견 조율이 필요하고, 부검을 통해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뚜렷한 증거가 있어야 인정될 것”이라며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날 죽은 게 아니어서 사망 시간 등 조건도 달라 가족 대표단에서 소송을 진행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한 대책과 관련해서도 그는 “내가 지금껏 살면서 국가가 인정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봐서 아마 소송을 안 한 가족 대부분은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고 현 정권은 분명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몰린 상황에서 이를 뚫고 나가려면 특단의 대책밖에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실종자 가족 대표 중 한 명은 시신 부검과 관련해 “지금은 찾는 게 우선이고 부검은 가족들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며 “현재 우리에게 힘이 없는 상황에서 너무 앞서나가선 안 되고, 보상 문제는 나중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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