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 오전 8시55분부터 9시38분까지. 제주 해양교통관제센터(VTS·관제센터)에 최초로 조난 신고가 들어간 시점부터 43분간 승객들을 최대한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할 수 있었던 목숨 같은 시간이 허무하게 지나갔다.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함으로 날아가 버린 사실이 20일 공개된 세월호와 진도 관제센터 사이의 교신 기록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편 세월호에서 생존한 선박직 선원 15명은 자신들만 보유하고 있는 무전기를 이용해 탈출을 모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에서 갑판과 기관을 맡고 있던 선원들은 모두 탈출에 성공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살아남은 선박직은 선장 이준석씨(69)를 비롯해 1·2·3등 항해사 4명, 조타수 3명, 기관장·기관사 3명, 조기장·조기수 4명 등 15명이다.

전 국민이 비통한 심정으로 실종자들의 생환을 애타고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폭탄주’를 돌리며 건배사까지 외치는 '정신 나간' 정치인도 있었다. 새누리당 세종시장 후보인 유한식 현 세종시장(65)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인 진도에서 비상근무를 하던 안전행정부 고위공무원이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려고 한 것을 두고 거센 항의가 쏟아지며 논란이 일자 안행부가 해당 국장을 즉시 직위해제했다.

답답한 정부 구조대책에 참다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까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에 저지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날 경찰은 동영상 카메라를 동원한 채증까지 했다.

다음은 21일 아침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생존 선박직 12명, 전용 무전기로 ‘탈출 교신’>
국민일보 <‘대리 외상 증후군’에 빠진 대한민국>
동아일보 <금쪽 같은 43분을 그냥 버렸다>
서울신문 <“탈출시켜라” 지시받고도 선장·승무원 ‘뺑소니’>
조선일보 <세울號 “탈출할까요” 海警 “선장이 판단하라” 서로 미뤘다>
중앙일보 <“선장·선원들 브리지 모인 뒤 모두 탈출”>
한겨레 <“더이상 당신들을 믿을 수 없어요”>
한국일보 <“대피”지시에 “할 수 없다”등 무책임한 답변만>

관제센터 “승객 대피” 지시에 선장 ‘제 살길’만 찾았다

16일 오전 8시55분부터 9시38분까지. 제주 해양교통관제센터(VTS·관제센터)에 최초로 조난 신고가 들어간 시점부터 43분간, 승객들을 최대한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할 수 있었던 목숨 같은 시간이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함으로 날아가 버린 사실이 20일 공개된 세월호와 진도 관제센터 사이의 교신 기록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09:12]
진도VTS→세월호 : 세월호, 여기 진도VTS. 지금 승선원들은 라이프래프트 및 구조 보트에 타고 있습니까?
세월호→진도VTS : 아니, 아직 못타고 있습니다. 지금 배가 기울어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09:24]
진도VTS→세월호 :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 바랍니다.
세월호→진도VTS : 본선이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습니까?
진도VTS→세월호 : 라이프링이라도 착용 시키고 띄우십시오. 빨리!

[09:25]
진도VTS→세월호 : 세월호, 인명 탈출은…선장님이 직접 판단 하셔서 인명 탈출 시키세요.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께서 최종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 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리십시오.

[09:26]
세월호→진도VTS :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 한겨레 21일자 2면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오전 9시14분, 근처를 지나던 상선 ‘둘라 에이스’호가 진도 관제센터의 호출을 받고 침몰 현장 근처로 이동했다. 이 선박은 진도 관제센터에 ‘승객들이 탈출하면 구조하겠다’고 했다. 이에 진도 관제센터는 다시 세월호를 호출해 ‘승객들이 탈출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러나 세월호의 답변은 ‘배가 많이 기울어 탈출이 불가능하다’였다.

476명의 승선자를 안에 태우고 배가 침몰하면 구조가 극히 어려울 텐데도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이상한 상황 판단을 한 셈이다. 9시18분 둘라 에이스호는 ‘사람들이 (배 밖으로) 탈출을 안 하면 접근할 수 없다’고 알렸다. 승객들이 탈출하지 않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한겨레는 “이준석 선장 등 일부 승무원들은 뱃머리에 있다가 9시40분께 구조 선박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결과적으로 구조 선박을 애타게 찾은 ‘효과’는 이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 등 일부만 본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도 “세월호 승무원들이 이처럼 다급한 상황에 한심한 교신을 하는 동안 승객들은 오전 9시쯤부터 ‘움직이지 마라’는 방송안내를 듣고 객실에 머물러 있었고, 선장의 탈출 지시는 끝내 없었다”며 “오전 9시38분 마지막 교신 직후 선장과 함께 있던 선박직 승무원들은 모두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승객에게 “움직이지 말라”던 선장·선원은 무전기 교신하며 모두 탈출

한편 세월호에서 생존한 선박직 선원 15명은 자신들만 보유하고 있는 무전기를 이용해 탈출을 모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에서 갑판과 기관을 맡고 있던 선원들은 모두 탈출에 성공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갑판원과 기관원 등 선박직들이 모두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중 12명이 무전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들을 상대로 한 수사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살아남은 선박직은 선장 이준석씨(69)를 비롯해 1·2·3등 항해사 4명, 조타수 3명, 기관장·기관사 3명, 조기장·조기수 4명 등 15명이다.

   
▲ 중앙일보 21일자 1면
 
중앙일보가 재구성한 당시 상황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8시48분. 전남 진도군 병풍도 근처를 지나던 세월호에 이상이 발생했다. 몇 분 뒤 승무원들이 하나 둘씩 브리지(조종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배의 눈과 두뇌에 해당하는 조종실은 배의 꼭대기 층 맨 앞쪽에 위치해 배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구조 매뉴얼에 따르면 선원들은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자기 위치에서 주어진 승객 대피업무를 해야 하지만 세월호 승무원은 이날 이상 징후가 발생한 지 20분 가량 지난 오전 9시17분 전에 거의 대부분 이곳에 집결했다. 당시 객실에는 “움직이면 위험하니 방에 대기하라”는 선장의 지시가 반복 방송되고 있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조종실은 가장 높은 곳으로 아래 학생들이 다 보인다”며 “학생들에게는 움직이지 말라고 해놓고 자기들은 모여 구조를 기다리다 평소 익숙한 통로를 이용해 탈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정용현 전 해군 충주함 함장은 “제대로 된 선장이라면 배가 기울기 시작한 오전 8시55분에는 이미 구명보트를 내리고 승객들을 탈출시켰어야 한다. 그런데 탈출시키긴커녕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질책했다.

이 와중에 “기념사진 찍자”는 ‘무개념’ 안행부 국장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인 진도에서 비상근무를 하던 안전행정부 고위공무원이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려고 한 것을 두고 거센 항의가 쏟아지며 논란이 일자 안행부가 해당 국장을 즉시 직위해제했다.

서울신문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20일 오후 6시쯤 진도 팽목항 대합실 건물 1층에 마련된 가족지원상황실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다가 문 앞에서 거센 항의를 받았다”며 “실종자 가족들은 상황실 주변에 있는 안행부 송영철 감사관을 지목하며 ‘고위공무원이 상황실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려고 했다’고 소리를 질렀고, 현장은 격한 분위기로 치달았다”고 전했다.

   
▲ 서울신문 21일자 4면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안행부는 즉각 송 감사관을 대기 발령하고 “정확한 경위를 파악한 뒤 잘못이 있으면 엄중히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을 벗어난 송 감사관은 “사실관계를 떠나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에 보도에 의하면 송 감사관은 차기 국가기록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앞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과 김수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도 부적절한 처신이 실종자 가족들의 비난을 받았다.

서 장관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인 지난 16일 구조된 단원고 학생들과 가족들이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들켰다. 그러자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의전용 팔걸이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에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김수현 서해해경청장은 19일 진도 팽목항에서 있었던 실종자 가족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일이 없다”며 “난 두 손 다 들었으니까 더 원하는 게 있으면 내 윗사람한테 가서 얘기해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청장을 배석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김 청장이) ‘물러나야겠다’고 하기에 ‘그러면 안 된다’ ‘아랫사람들을 위해 참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폭탄주에 헹가래까지…“정신 나간 새누리”

전 국민이 비통한 심정으로 실종자들의 생환을 애타고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폭탄주’를 돌리며 건배사까지 외치는 정신 나간 정치인도 있었다. 새누리당 세종시장 후보인 유한식 현 세종시장(65)이다.

유 시장은 지난 18일 저녁 세종시 조치원읍 한 식당에서 열린 청년당원들과의 만찬에 홍순승 세종시교육감 예비후보 등과 함께 참석했다. 자리에선 폭탄주가 돌고, 유 시장을 위한 건배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홍 후보는 건배사에서 “유 시장님 당선을 측면에서 돕겠다”며 지지를 호소해 선관위가 조사에 착수했다.

   
▲ 서울신문 21일자 11면
 
20일 JTBC가 보도한 녹취에서 홍 후보는 “세종 교육감 후보님께서 건배제의 한번 하시겠답니다. 유한식 시장님 당선을 측면에서 돕고, 유한식 시장님과 세종시 행정수도 한국의 D.C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라고 외쳤다.

파문이 일자 새누리당 윤리위는 20일 회의를 열고 유 시장에게 ‘경고’ 처분을 내렸다. 한때 자격 박탈까지 거론됐지만 ‘경고’에 그치면서 유 시장은 후보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경대수 윤리위원장은 “본인은 음주 사실이 없고 짧은 시간만 있었던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앞서 유 시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술잔을 받았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앞서 침몰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3시 새누리당 파주시장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일부 지지자들이 후보를 헹가래치면서 분위기를 띄운 것으로 알려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한겨레는 “이재홍 후보는 연설 서두에 “말씀에 앞서 오늘 어려운 일을 당하신 안산 단원고 실종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빠른 구조와 건강회복을 바란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이날 후보자와 지지자들은 참사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나머지 후보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애도의 표현조차 일절 없었다”고 밝혔다.

대통령 면담요구 가족 불법 ‘길막’에 ‘채증’하는 나라

답답한 정부 구조대책에 참다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까지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에 저지당하기도 했다. 20일 새벽 1시30분, 세월호 선체 안에서 주검이 발견됐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냥 있을 수가 없게 된 실종자 가족 대표단은 버스를 타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로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새벽 2시께 300여명의 가족들이 구호품으로 받은 모포를 두르고 체육관 밖으로 나왔다. 그런 가족들 앞을 경찰 100여명이 득달같이 막아섰다. 경찰이 4차선 도로로 나서는 가족들 앞을 통제하자 몸싸움이 벌어졌다.

   
▲ 한겨레 21일자 1면
 
사흘 전 새벽 체육관을 찾았다가 가족들의 물병 세례를 받았던 정홍원 국무총리가 급히 체육관으로 왔다. 정 총리는 “모든 방법을 검토해 동원하겠다”며 가족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분노와 슬픔이 뒤엉킨 가족들에게 말뿐인 총리의 약속은 들리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은 10㎞를 도로 갓길을 따라 걸었다. 오전 6시30분쯤 진도대교를 앞두고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 3개 중대가 가족들을 에워쌌다.

게다가 이날 경찰은 동영상 카메라를 동원한 채증까지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과도한 채증을 중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경찰청은 지난 9일 “불법행위가 이뤄지고 있거나 이뤄진 직후, 증거보존의 필요성이나 긴급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채증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겨레는 “또 ‘시간적, 장소적으로 근접하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 집회 참가자들을 차단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대법원의 2008년 판례도 있다”며 “2010년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서 출발하려던 전국자치단체 상용직 노조원 79명이 경찰의 제지로 발이 묶이자,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해 1인당 10만원의 위자료를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이 가족들을 진도 현장에서 가로막은 것은 직권을 남용해 시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차단한 것이고, 동시에 불법한 공무집행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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