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6일 본회의에서 제9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끊임없이 제기했던 적립금 이자 발생과 예산 불법 전용 등의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1월 외교부가 미국 정부에 지급한 방위비 분담금 예치금에서 이자 수익이 발생했음을 인정하면서 미국이 그동안 수천억 원의 이자소득을 취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안홍준 위원장·새누리당)는 지난 15일 전체회의를 열어 SMA 비준동의안을 가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동안 정부 측에 △한국이 지급한 방위비 미집행 적립금 7110억 원의 이자 발생 문제에 대한 국회 보고 △방위비 분담금 전용 문제에 대한 사과와 대책 마련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처우개선 △88% 현물 제공 규정 명문화 등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서 수년 전부터 제기해왔던 방위비 분담금이 예치된 커뮤니티뱅크(CB)에서 이자가 발생한 문제에 대해선 아직까지 CB의 법적 지위도 규명하지 못했다고 밝혀 이자소득 문제를 해결한 의지조차 없는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진보연대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 12일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9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협정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안을 부결하고 재협상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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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용 외교부 1차관은 15일 외통위 회의에서 “방위비분담금의 이자 발생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그동안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해결이 지연된 점은 유감스럽다”며 “CB의 법적 지위와 그동안 발생한 이자규모 등에 대한 사실 관계를 파악해 올해 안에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CB가 민간은행이면 이자소득에 대한 과세 등 법령에 따른 조치를 취하고, 미 정부기관으로 판명되면 이자를 차기 분담금 협상 시 총액에 반영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3년째 임금이 동결된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의 처우 문제와 지난 8차 협정 때 대표적 성과로 내세웠던 군사건설비 현물지원 88% 조항이 삭제된 것에 대해서도 SMA 발효 후 국방부와 주한미군 간 체결될 ‘이행약정’에 관련 대책이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무마해 실효성 있는 개선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영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가 지난 2007부터 7년 동안 방위비분담금 이자소득 발생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제까지 액수가 얼마인지도 모른다는 말은 제대로 진상규명하겠다는 의지 없이 덮어놓고 협상안을 통과시키자는 심산”이라며 “이번 기회가 이자소득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흐지부지 비준동의안이 통과돼, 이후에도 정부에 실효성 있는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유 팀장은 8차 협정문에 설계·감리비를 제외한 88% 군사건설비를 현물로 지원한다는 조항이 9차 협정에서 빠진 것에 대해서도 “미국은 협정을 맺고도 불리하면 규정을 지키지 않는데, 아무 규정도 없이 88% 현물지원을 지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미국은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군사시설을 짓는 데 분담금을 전용하려는 목적으로 현물보다 현금으로 받으려고 하는 것인데 우리 정부가 이에 굴복하고 받아들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 팀장은 이어 “한미 당국은 협정 유효기간을 5년으로 합의했는데 평택 기지 이전사업이 예정된 2016년까지 마무리가 안 될 가능성이 높아 이 사업이 연장될수록 미국이 부담해야할 비용은 줄어들 공산이 크다”며 “2016년 이후에도 2018년까지 군사건설비가 더 늘어나는데 1조원 가까이 미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분담금으로 충당할 우려가 높아 협정 발효 후에도 이 부분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15일 참여연대와 평통사 등 27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협정은 모든 면에서 ‘미국 퍼주기’ 굴욕협정이자 그동안 시민사회가 제기해 온 문제점들을 시정하지 않은 불합리한 협정”이라며 “국회 차원의 철저한 평가와 검증을 통해 방위비분담금 협정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미군주둔비 부담금이 대폭 늘어나고 미군기지 이전비용 전용방지 장치 마련에도 실패했지만 이에 대한 대책도 없고, 협정 유효기간을 5년으로 해 국회의 예산심의 확정권과 국민의 감시권을 원천적으로 침해한 것도 문제”라며 “3년 간 동결된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보장을 요구한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9차 SMA에 따라 올해 정부가 부담해야 할 분담금은 9200억원으로, 오는 2018년까지 5년 동안 전전년도 소비자 물가지수(CPI)를 적용해 매년 최대 4%까지 분담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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