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오리와 닭들이 굉장히 귀여웠다. 하지만 (살처분) 회가 거듭될수록 가축을 강제로 몰아서 주워담아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어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고 싫었다. 나중엔 내 자신이 짜증스러운 사람이 되고 스트레스로 잠을 못 이뤘다. 살처분으로 내가 정말 괴물이 되는 게 아닌가 너무 괴로웠다.” 

충북 음성군청에 근무하며 AI 방역과 살처분에 동원됐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를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한 공무원이 9일 한 증언이다. 지난 구제역 사태 때도 동원됐던 이 공무원은 이번 AI가 발생하자 살처분 절차 등 내용도 충분히 전달받지도 못한 채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다.

그는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먹으라고 해서 몇 번 먹었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속이 매스껍고 더부룩해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주변 동료 중에선 구토 등 복용 후유증이 있어도 쉬쉬하고 있다가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

오리 살처분에 투입됐다는 또 다른 음성군 공무원 최아무개씨(41)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던 오리가 떠오른다”며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꽥꽥’거리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꿈에도 나타나 잠을 설친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지난 2월 12일에는 진천군청에서 사회복지직으로 일하던 한 공무원이 본인의 본래 업무에 더해 AI 살처분 지원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됐다.

   
9일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AI대책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AI 방역 및 살처분 피해증언대회’가 열렸다. 사진=정재수 공무원U신문 기자 
 
9일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AI대책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AI 방역 및 살처분 피해증언대회’에서 문재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충북지역본부 사무처장은 AI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겪고 있는 ‘AI 트라우마’를 고발하며 공무원에 대한 위법적 살처분 인력동원 중단을 촉구했다.

문 처장은 “동물보호법과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살처분에 동원하는 인력이 공무원이라는 규정이 없는데 강제 동원하는 것은 위법이며 인권침해”라며 “질병관리본부에서 2003~2004년 AI 살처분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항체검사를 한 결과 9명이 양성으로 나왔듯이 이종 감염 문제도 있는데 농림부와 방역당국은 10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을 안 내놓는 것은 매우 비인권적이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비인도적이고 무리한 살처분 방역 방식과 비현실적인 보상 대책 등에 대한 농민과 동물단체들의 지적도 쏟아졌다. 전남 나주에서 오리 1만 수를 사육하다 이번에 AI 양성 판정을 받아 모두 살처분했다는 전영옥 예진농장 대표는 “지난 2월 25일 의심신고 후 26일 시료채취 결과 AI 음성통보를 받았는데, 오리·양계농가 9곳을 예방적 살처분 한다면서 3월 11일 채취한 시료에선 오리농가 7곳 모두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참담한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AI 양성 판정과 항체까지 형성됐다면 우리 농장 오리는 (항체 생성 기간을 감안하면)최소 2주 전에 AI 양성판정이 나왔어야 하는데 우리 농장 오리 폐사율을 5%에 채 미치지 못했다”며 “이는 일반 전염병이 돌았을 때와 비슷한 폐사 수준이어서 정확성이 없는 시료 검사가 농가 피해액 20%를 삭감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수의학자 등 AI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리가 고병원성 AI에 감염되면 바이러스 잠복기는 최대 3주가량으로 그 전에 집단폐사를 보이게 된다. 또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음성 판정이 나온 예방적 살처분 농가는 피해 가축에 대한 전액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양성 판정이 나온 농가는 80%만 보상해 줘 농가에도 책임을 지우고 있다.

   
지난 1월 22일 전북 부안군 줄포면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병지로부터 3㎞이내에 들어있는 한 오리농장에서 살처분 작업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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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경 동물자유연대 상임대표는 “농림부 가축방역협의회 위원 중에는 ‘공장식 축산’은 북한에서 쓰는 용어라고 말하며, 실내에서 키우는 동물복지농장 가축까지도 방사형으로 잘못 알고 다 죽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농림부 위원으로 있는 것도 굉장히 문제고, 동물복지를 통해 질병 저항력이 강한 축산업 육성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FTA 시대 지속가능한 축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당부했다.

이날 피해 공무원과 농가 등의 증언에 대해 권재한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국 국장은 “농가에 AI 발생하면 철새와 사람, 차량, 쥐 등으로 주변 농가로 전염되므로 더 많은 농가의 피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한다”며 “농가 지원과 보상 문제도 생산자단체·협회와 충분히 상의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이석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질병관리부 부장은 “현장에서 신속히 방역하다 보면 어려운 상황이 많이 발생해 동물단체 말처럼 AI긴급행동지침을 지키며 인도적 살처분할수 있도록 지속적인 방법 개발과 교육 등을 통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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