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4대 국정과제로 ‘문화융성’을 강조하고 인문·예체능 관련 학과는 취업률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제 대학에서 진행 중인 구조조정은 이와 엇박자를 내고 있어 교수와 학생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대학과 교수들을 압박하고 학생들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어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대학 측은 예술계열 학과 등 취업률이 낮아 상대적으로 대학평가에 불리한 조건에 처한 학과들을 중심으로 폐지와 통폐합 등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밀고 있어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일대 연극과 학생들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대학의 일방적인 폐과 통보에 항의하는 퍼포먼스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서일대 문예창작과 학생들도 지난달 27일부터 무기한 수업거부에 돌입했다.

이와 함께 계원예술대학교와 남서울대학교, 서원대학교 등에서도 취업률 평가와 학교 특성화사업을 이유로 예체능계열 학과 구조조정과 인원감축을 교수·학생회와 충분한 논의과정 없이 강행해 학생들이 단체행동을 하는 등 진통을 겪거나 여전히 진행중이다. 예술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예술대학·학회 총연합도 지난 5일 ‘예술대학 취업률 폐지와 생존을 위한 투쟁위원회’를 결성해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안에 반대하며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오세곤 예술대학·학회 총연합 의장(순천향대 연극무용학과 교수)은 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투쟁위 결성 계획을 밝힌 후 교육부 관계자로부터 직접 전화가 와서 지난해 9월 나승일 교육부 차관의 ‘전문대는 예술가를 키우는 곳이 아니다’는 발언은 곡해라고 말했다”며 “(이 관계자는) 교육부 방향을 잘 이해하는 전문예술대 교수들에게 우리를 찾아와 설명도 하게 했다”고 밝혔다.

8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전문대학 육성방안 정책연구진 회의’ 발언록(지난해 9월 4일 교육부 대회의실)에 의하면 나승일 차관은 “예체능 계열의 취업률을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단언컨대,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의 예체능 계열의 취업률을 제외할 의사가 없다”면서 “전문대학의 예술교육은 예술가를 양성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나 차관은 또 전문대학 취업률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현재 첫 직장을 구하는 시점까지 기간이 너무 길어, 전문대학의 교육이 이 기간을 단축해줄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까지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존재해 왔지만 전문대학의 특성화 사업은 시대적 과제이자 사명으로 (주력계열) 편제정원 70% 이상을 규정한 이유는 구조개혁을 촉진하라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오 의장은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보더라도 교육부에서는 NCS를 반드시 적용 안해도 된다고 하지만 NCS를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전체 반영 비율을 보고 있다”며 “결국 교육부 정책은 NCS에 포함 안되는 학과는 없애려는 것이어서 나 차관의 말과 같다”고 비판했다.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란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지식·기술·태도)을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한 것이다.

오 의장은 이어 “전문대뿐만 아니라 전체 4년제 대학 예술학과에서도 특성화사업에서 정원 축소와 구조조정은 중요한 평가 지표”라며 “일부 대학 교수들은 학교를 통해 부단히 취업률 압박을 받으며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연구에 전념할 교수들이 학생들 취업에 급급한 상황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서일대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교내 퍼포먼스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서일대 문예창작과
 
이형환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 회장(중앙대 교수)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실제로 교수들도 교육부의 취업률 평가에 학교를 통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학생들을 잠재적 실업자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정책은 어디에 정책적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어 산업과 긴밀히 연관되는 전공이 아닌 학과에 대해선 대학평가를 할 때 선별적으로 적용해 가중치를 둔다든지, 학문의 다양성과 순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전문대학정책과 관계자는 “전문대 예술계의 경우 특성화 전문대 육성사업으로 특별히 배려하고, 취업률이 낮게 평가되는 문제도 올해부터 기존의 정량적 평가를 개선해 산업인력수요를 고려한 정성적인 평가를 50%까지 대폭 확대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NCS 개발이 유보되거나 미개발 분야는 산업현장에 맞도록 교육과정을 자체 개발해 운영하면 인정해주고 있어, NCS를 무시하고 교육과정을 짜거나 NCS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학과를 폐지하거나 인원을 감축한다면 대학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과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도 이 관계자는 “일반대는 10% 감축에 5점의 가산점을 주므로 지방대는 인원 감축으로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지만 전문대는 상대적으로 7% 자율감축에 3점을 부과하고 있어 부담이 덜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4년제 예술계열 학과의 경우 특성화사업 평가와 인원감축에 훨씬 큰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관계자는 나승일 차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전문대학은 일반대학과 설립목적부터가 다르고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곳이므로 취업률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전문대는 예술가를 키우는 곳이 아니라는 취지의 말이 아니라 전문대는 다양한 예술전문가를 만드는 곳이라는 뜻이고,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예술인에 대한 배려도 필요함을 강조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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