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서울시립보라매병원에서 근무 중 임신한 비정규직 간호사를 무기계약직 전환 3개월을 앞두고 해고하면서 법적으로 보장한 단체협약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3월에 입사해 지난해 11월 30일까지 1년 9개월간 보라매병원 수술실에서 계약직 간호사로 일했던 강아무개씨(32)는 6개월마다 3번에 걸쳐 내부 평가 후 재계약됐지만, 마지막 3개월(2013년 9월~11월) 계약을 끝으로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병원 측에서는 계약만료 사유에 대해 “임신과 상관없고 재계약 평가 점수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지난해 9월 17일 담당 수술장 수간호사에게 임신 사실을 알린 후 임신 4개월(14주차)에 접어들 무렵 병원 측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낮은 평가를 주게 했다는 게 강씨의 주장이다.

병원 측은 지난 1월 14일 윤강섭 보라매병원 병원장 등이 참석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해당 간호사가 임신했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노측 위원의 질문에 “임신 사실을 몰랐고 수간호사로부터도 그렇게 보고받았다”고 대답했다.

노측 위원들에 따르면 임신한 강씨는 업무 중에 엑스레이(X-ray)를 쬐면 기형아 출산 등 위험이 커 수간호사에게 재계약 평가를 앞둔 9월 17일 임신 사실을 알렸다. 수간호사는 수술하는 의사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수술실 간호사의 근무 스케줄을 수간호사가 작성하므로 임신 여부를 모를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 2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등은 서울 중구 여성가족부 앞에서 '서울대병원 위탁 운영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임신 간호사 해고 철회와 복직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강성원 기자
 
아울러 병원 측은 서울대병원 단체협약으로 보장하고 있는 임신 중 조합원에 대한 정기검진 (유급)휴가도 주지 않아 법률적 효력을 가진 단협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대병원 단협 제38조 4항에는 “임신 중인 여자 조합원(비정규직 포함)은 정기검진을 위한 휴가를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사전 부서장의 승인하에 월 1일의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2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등이 서울 중구 여성가족부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강씨는 “처음엔 임신부 검진 휴가가 있는지 몰랐고 내가 챙겨야 하는지도 몰라 9월과 10월은 검진휴가를 못 쓰고 계약 만료 이틀 전인 11월 28일에야 검진휴가를 썼다”며 “누구나 하는 실수와 누구나 겪는 일을 마주하며 수술실 내 간호 업무를 했는데 지금 거대 병원은 앞으로 일할 근로자에게 능력 없는 간호사라고 낙인찍으며 한 개인의 인권을 폄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계약 기간 마지막 주에야 평가자 중 한 사람이 수간호사의 압박으로 평가점수를 최대 80점대 초반(85점 이상이면 재계약)으로 주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부당 해고 사실을 알았다”며 “정당하지 못한 평가로 1년 9개월만 일하고 나가야 한다는 비정규직 틀을 그대로 두고 해고된 계약직 간호사 두 명의 자리는 다른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고 덧붙였다.

공공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에서조차 임신 중인 비정규직 간호사를 해고함으로써 박근혜 정부가 상시·지속적 업무를 담당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2015년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은 공염불에 그치게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등은 서울 중구 여성가족부 앞에서 '서울대병원 위탁 운영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임신 간호사 해고 철회와 복직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강성원 기자
 
이날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등 단체들도 “지난 3월 박근혜 정부는 임산부의 경우 12주에서 36주 사이에 임금삭감 없이 1일 2시간 노동시간을 단축해 주겠다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이것은 본인이 청구하지 않으면 주지 않아도 되고 비정규직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이번 해고 사례에서 보듯이 사용자들은 평가 등을 통해 마치 합법적으로 해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규직 채용에서 불이익을 볼까 봐 부당한 평가도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에겐 기만적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라매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병원은 해당 간호사의 담당 수간호사에게 ‘임신 사실을 몰랐다’는 말을 들었고, 구체적인 내용은 병원 내부업무 관련이라 답변이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임신 직원에게 검진휴가를 주지 않은 것은 단협 위반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고, 더 이상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정규직보호법상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한 평가조작 논란과 관련해선 “평가자 5명이 수기로 밀봉해 보고하는 것이므로 평가 당사자를 제외하곤 인사계 담당자도 모른다”며 “(평가점수 조작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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