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유명 사립대에서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시간강사들이 학교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인권유린과 부당해고를 당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학기까지 이화여대 불문과에서 11년간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쳐왔던 남봉순(49·여) 박사는 지난해 6월 기말고사 시험 감독을 하다가 한국어가 서툰 학생에게 영어 문제지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7월 해고 통보를 받았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한국 국적을 가진 권아무개 학생은 교양과목인 ‘프랑스어Ⅰ’ 기말고사에서 한국어로 출제된 문제지가 아닌 영어로 된 문제지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해당 학생에 대한 사전 정보를 담당 강사로부터 전달받지 못해 이 학생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남 박사의 설명이다.

경찰 조사 등에 따르면 불문과는 지난 2006년 2학기부터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못하는 외국인 학생을 위해 영어 문제지를 책임 교수의 허락 하에 비공식적으로 제공해 왔다. 학교 측은 재외한국인과 외국인 학생에 대한 ‘배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외국 국적 학생에 대한 일종의 ‘특혜’로 영어와 프랑스어는 철자와 문장 구조가 유사한 게 많아 훨씬 시험에 유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타 대학에서는 이 같은 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남봉순 전 이화여대 불문과 시간강사(가운데)가 이대 정문 앞에서 부정시험과 인권유린 등 불문과 교수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남봉순 박사 제공
 
또한 경찰 조사 결과 권 학생의 담당강사는 권 학생이 진단서나 정당한 사유 없이 결석을 했음에도 수업참여 점수에서 만점을 준 사실도 드러났다. 아울러 이 강사는 상대평가 과정에서 본의의 재량으로 권 학생을 포함한 일부 학생의 점수를 고의로 올려줬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결국 한국어 문제지로 시험을 치르게 된 권 학생은 시험 다음날 담당 강사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고, 남 박사는 6월 26일 열린 불문과 교수회의 결과 2학기부터는 강의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남 박사는 학교 측의 부당해고에 불복해 경찰에 부정시험과 교수회의에 불려가 받았던 폭언·폭행,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이아무개 학과장과 장아무개 교수, 정아무개 강사 3명을 고소했고, 경찰은 이 학과장을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장 교수와 정 강사를 부정시험에 대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이에 대해 미디어오늘은 이 학과장과 수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또한 장 교수는 1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물음에 “자세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학교 홍보실과 법률 대리인에게 받으라”고 말했다.

이대 홍보팀 관계자는 2일 “해당 학생은 미국 영주권을 소유했으며, 국적은 한국”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남 강사는 자신의 일방적인 판단만 믿고 학생을 의심했으며 이는 권한 없는 행위로,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다른 강사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유사한 일이 재발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강의 배정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해당 강사가 일부 사실만을 왜곡해 불문과 교수진은 물론 관련 학생에게 심각한 정신적인 피해를 초래하고, 학교 명예를 훼손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소송 당사자인 관련 교수들은 남 강사가 주장하는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이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법적 절차 후에 다시 한 번 확인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류승완 박사의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조윤호 기자
 
이와 함께 지난 1995년 대학입시 본고사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던, 영화 <부러진 화살>로도 유명한 김명호 수학과 교수를 징계·해임했던 성균관대에서도 재단(삼성)을 비판했다는 등의 이유로 한 시간강사와 지루한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성균관대의 강사직 박탈 철회와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외치며 약 2년 동안 1인 시위를 하다 지난해 성대 동양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임용됐던 류승완 박사(전 동양철학과 시간강사)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통해 ‘품위유지’와 ‘신의성실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또다시 학교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에 류 박사는 이 해고가 부당하다며 지난해 10월 30일 성대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 심리로 열린 두 번째 변론기일에서 류 박사 측 변호인은 “성대는 오랜 기간 힘겨운 시간을 보낸 류 박사와 지난한 협의를 통해 도출한 계약서의 법률적 효과를 모두 부인하며 해고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며 “이런 모습은 헌법과 법률, 당사자 간의 계약조차 불리한 것은 모두 부인하고 회피하려는 성대의 무책임한 태도를 웅변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성대 측 변호인은 “유학대학 전체교수회의에서 류 박사가 위촉 과정과 위촉 조건 등을 사실과 다르게 과장하거나 왜곡하고 학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결정했다”면서 “류 박사와 계약을 체결한 연구소장은 성대 법인과 무관하게 별도의 계약을 체결해 일반적인 근로계약으로 볼 수 없고, 연구원으로 임용된 게 아니라 연구소에서 위촉받은 객원연구원이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와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등 8개 단체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등으로 구성된 ‘류승완 박사 부당해고 대책위원회’는 “학교법인과 교직원의 잘못을 비판하는 강사들을 해고로 답하며 특정기업이나 개인이 대학의 주인이라는 주장은 대학의 공공성을 부정하는 잘못된 논리”라며 “성대 학생들의 학습권과 학내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의 교육권 보장, 류 박사의 복직과 함께 학자로서의 양심과 학문연구가 위협과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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