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할 대학생들이 강의실 밖으로,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학교의 학과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학과가 폐지되거나 통폐합될 위기에 처한 예술대 학생들이 학교의 일방적 통보에 반발해 무기한 수업거부에 돌입하는 등 갈등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학과 폐지와 통폐합 논란에 휩싸인 서일대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지난달 27일부터 무기한 수업거부에 들어간 데 이어 31일엔 교육부가 있는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후문 앞에서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서일대는 지난달 21일 대학 총학생회를 통해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방침에 따라 학령인구 감소와 취업률 저조 등을 이유로 문예창작과, 연극과, 사회체육 골프과 등을 폐지하고 레크리에이션과 야간학부를 폐강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와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학과 폐지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지난달 23일 연극과 학생들이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퍼포먼스 시위를 벌이며 논란이 확산되자 학교 측은 폐과 대신 학과를 통폐합하는 방향으로 재논의 절차에 들어갔다.

   
서일대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교내 퍼포먼스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일대 문예창작과
 
학생들 “일방통보·대화거부 일관하면 투쟁 수위 높일 것”

이준호 문예창작과 학회장은 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달 21일 학과 교수를 통해 학과 폐지를 일방적으로 전달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교수회의 소집도 없었고 학생회와 논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우리 과와 함께 통폐합 통보를 받은 미디어출판과의 경우 교수와 조교, 학회장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학생들이 주말을 포함해 시위를 이어가자 학교 측에서는 지난달 27일까지 학생들과 논의할 시간을 주겠다고 해놓고선, 26일 문예창작과와 미디어출판과 인원을 절반씩 줄여 통폐합하기로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며 “교수협의회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동문과 타 학교 학생들도 서명운동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학교가 계속 대화 거부로 일관한다면 이들과 연대해 투쟁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일대 교수협의회는 지난달 24일 낸 성명에서 “3월 17일 월요일부터 3월 21일 금요일까지 불과 일주일 동안 다수의 학과가 학교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 혹은 정원 감축 통보를 받았다”며 “지난해 교수들의 문제 제기로 통폐합 자체를 이미 원점에서 다시 논하기로 한 바 있는데 학교 측이 내놓은 안 가운데 일부 학과 폐지 통보도 포함돼 있어, 자의적이고 비논리적인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데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동국대, 중앙대 등 전국 16개 대학 문예창작·예술 전공 학생들과 현역 배우 등 125명은 지난달 30일 서일대 연극과와 문예창작과 등의 일방적 폐과·통폐합 통보에 반대하는 서명을 서일대 학생회에 전달했다.

이들을 대표해 성명을 발표한 한예종 연극원 17대 학생회는 “이는 서일대만의 문제는 아니고 한예종도 불과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고, 동국대 등 전국에 있는 수많은 예술대학 역시 근본적인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애초에 폐과 결정의 명분은 ‘취업률’이었다고 하는데 문제의 해결 방안이 일방적인 폐과·통폐합 결정으로 귀결돼서는 안 되고, 진정으로 예술계 학생들이 실업자가 되는 것을 우려한다면 학교에서 학생을 위한 복지와 다양한 진로 프로그램을 실행하며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계원예대 건축디자인과 학생들이 학교 측의 일방적으로 폐과 통보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월식 계원예대 순수미술과 교수 페이스북
 
학교 측 “대학평가에 취업률 커…정원 감축 불가피”

이에 대해 서일대 홍보과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학과 통폐합과 관련해선 아직 정확히 결정이 난 바가 없고 이사회에 상정도 안 된 상황”이라며 “학교의 일방적 통보로 모든 게 결정됐다면 분규가 일어나기 전에 모두 결정했을 텐데 지금도 학과와 협·합의가 진행 중이고 교수들과도 상의 중에 있어 여러 가지 안이 있지만 아무것도 결정된 부분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학생회와 논의 과정이 생략된 이유에 대해서는 “학과와 협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구조조정 내용이 달라질 수 있어 이 같은 조율 과정에서 학생들이 알게 된 것”이라며 “학생들이 급히 판단해 왜 알리지 않았느냐는 주장은 시기상조이고, 학생들에게도 얘기하고 이해를 구하는 절차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학과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에 대해 “교육부 정책과 학교 사정 등 여러 복합적 요인으로 학생 정원을 감축해야 하고, 학령인구도 줄고 있어 정원을 그대로 두고 학생 모집을 못 하면 대학으로서도 문제”라며 “대학 평가에 취업률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교육부 지침도 마찬가지여서 이에 역행할 수 없어 학생과 교수, 교직원 처지도 있지만 결국 학교가 살아있어야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계원예술대학교 건축디자인과 학생들도 지난달 28일 학교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폐과를 통보받고 피켓 시위와 대자보 활동을 벌이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들은 대자보를 통해 “학생들은 3월 14일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야 건축 디자인과의 폐지 소식을 들었고 이후 28일 공식적으로 학교 측의 일방적인 폐과 통보를 들었다”며 “학교 측은 한 달여 동안 학과 폐지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철저히 학과 교수님들을 통해서만 이뤄져 학교의 학과 폐과 절차는 비민주적이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학령인구의 감소로 입학정원 미달이 우려된다면 기존 학과를 유지하면서 정원을 축소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음에도 학교는 폐과의 강수를 두고 있다”며 “학과의 자구책이나 해결방법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음에도 폐과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인 양 밀어붙이는 불도저식 통보는 정당화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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