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나 통일에 대한 전 방위적 협력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주요하게 다뤘다. 하지만 몇몇 언론은 박정희 대통령도 50년 전 독일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며 통일을 박근혜 대통령 부녀의 ‘못 다 이룬 꿈’인 것처럼 보도했다.

독일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메르켈 총리와 만나 독일의 통일경험을 공유하고, 통일을 위한 양국의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관련 부처와 기관들이 통일협력체계를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베를린 시내 중심지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베를린 시청을 찾았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과거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던 곳으로, 독일 통일의 상징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50년 전 서독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12월 7일~14일 서독을 방문했고 본, 베를린, 뮌헨을 들렀다. 경제개발용 차관을 얻기 위해서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만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한 브란덴부르크 문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미 방문했던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보를 따라가며 ‘통일’이라는 의제를 강조할 수 있다. 문제는 언론이 앞장서서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방문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결시키며 ‘띄우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번에 독일을 방문한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인지 박정희 대통령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몇몇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을 5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꿈꿨던 통일을 이룰 지도자로 묘사했다. 조선일보는 27일 기사에서 “당시 기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포츠담광장의 목제(木製) 전망대에 올라 소련이 점령한 동베를린 지역을 한동안 바라봤다고 한다”며 박 전 대통령이 “저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시작한 철의 장막은 동유럽과 소비에트의 광대한 영역을 거쳐 만주로 뻗어 내려가 우리나라의 판문점에 이르고 있다” “이것(통일)은 결코 꿈이 아니고 실현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두드리면 문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 27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은 이어 “그런 ‘염원’은 그 딸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들고 나와 ‘통일’을 우리 사회의 중심 어젠다로 끌어올렸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 역시 27일 기사에서 “1964년 12월 11일 베를린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베를린 장벽의 철조망을 바라보며 ‘베를린 장벽을 통해 북한을 봤다’는 말을 남겼다. 아버지에 이어 50년 만에 독일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이곳에서 ‘한반도 통일’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공식화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과업인 ‘통일’을 수행 중인 것처럼 썼다.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을 읽어내는 관심법 보도도 이어졌다. 국민일보는 같은 날 기사에서 “정확히 반세기만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정을 밟아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아버지는 그곳에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바라봤고, 딸은 통일된 조국의 밝은 미래를 꿈꿨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서베를린에서 베를린 장벽을 방문해 조국 분단의 현실을 절감했다”며 박 전 대통령이 당시 “나는 오늘 북한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결코 북한을 볼 수 없었으나 오늘 동베를린을 통해 북한을 보았다” “나는 이제 자유를 지속하겠다는 서베를린 시민의 결의와 동베를린 시민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한국도 독일도 통일이 돼야 한다”고 말한 점을 강조했다.

국민일보는 이어 “박 대통령은 사라진 베를린 장벽 대신 분단 시절 베를린을 동과 서로 나눴던 브란덴부르크문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 국정의 주요 화두로 내건 ‘통일 대박론’을 통독의 역사현장에서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이를 마음에 새겼는지 안 새겼는지 언론이 어떻게 알까?

   
▲ 27일자 국민일보 2면
 
이런 언론보도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력 증진을 이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통일을 이룰 기세다.

조선일보는 “50년 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80달러였고, 2013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2만6205달러로 327배 늘어났다”며 “아버지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한국의 국력을 배경으로 박 대통령은 한반도 주변 4강(强)에 적극적으로 통일을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박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당시 한국은 후진 약소국이었고, 서독은 신흥 부흥국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전용 비행기조차 없어 서독 정부가 제공한 여객기를 일반 승객과 함께 탄 채 일곱 군데를 경유해 28시간 만에 서독에 도착했다”며 “반세기가 지난 현재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순위 세계 15위로 부상한 경제 강국이 됐다”고 전했다.

세계일보는 조금 더 노골적이다. 세계일보는 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방독 이후 서독의 ‘라인강 기적’을 ‘한강의 기적’으로 재현해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며 “50년의 시간이 흐른 뒤, 딸인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부국강병을 지렛대로 통독의 교훈을 배워 ‘통일 대박’ 실현에 나섰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난 22일 지상파 방송사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난 독일 방문을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방문과 엮어 부풀리는 보도를 했다. KBS 9시뉴스는 22일 “박 대통령은 핵 안보 회의에 이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차관을 얻기 위해 찾았던 독일을 50년 만에 국빈자격으로 방문한다”고 전했고 MBC 뉴스데스크 역시 22일 “박 대통령은 이어 독일을 국빈 방문한다. 지난 1964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차관을 얻기 위해 독일을 찾아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고, 통일의 의지를 밝힌 뒤 50년 만”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SBS 8뉴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육성을 사용해가며 네덜란드에 이어 독일도 방문하는데 1964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방문 이후 50년 만에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에 이어 보다 구체적인 통일 구상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27일 신문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관련 기사 : <아버지 박정희 이어 50년만의 독일방문, 오버하는 언론>)

   
▲ 23일자 SBS 8시뉴스 갈무리
 
언론이 박근혜 대통령 부녀의 스토리에 집중하는 사이 한국이 독일 통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할지, 독일이 한국과 공유할 수 있는 통일의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잘 전달되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27일 기사 <서독, 동유럽과 관계 개선 통해 신뢰 구축…국제사회 지지 얻어>에서 독일이 동유럽과의 실리 외교를 통해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었다고 분석한 내용이 전부였다.

박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치자 많은 언론들이 대통령의 말을 따라 통일 의제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대통령의 뜻대로 ‘통일은 대박’인 상황을 만들고 싶다면 통일을 위해 우리가 다른 나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할지 분석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아닐까. 언론이 ‘통일’조차 대통령 홍보에 이용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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