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10월 6일, 노종면·권석재·우장균·정유신·조승호·현덕수 등 6명의 YTN 기자가 동시에 해고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YTN에 이 대통령 캠프 출신 구본홍 씨가 사장으로 취임하자 ‘낙하산 반대’ 투쟁을 벌이다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2014년 3월 28일, 이들은 해직 2000일을 맞는다.

6명의 기자들이 해고된 그 해, YTN에는 매년 그렇듯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이들은 수습신분으로 YTN 기자들이 해고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그리고 해직의 긴 시간만큼, 이들 역시 어느덧 7년차 기자가 됐다.

미디어오늘은 YTN 해직기자 발생 2000일이 지난 시점에, 당시 신입기자로 들어왔던 YTN 12기 중 일부를 인터뷰했다. 해직 2000일을 맞은 그들의 심경엔 해직기자들에 대한 부채감과 미안함, 그리움이 묻어났다. 해직기자들을 향해 “함께 일하자”는 것은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공통된 바람이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은 이들의 인터뷰를 엮어 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해직 당시의 상황과 해직 2000일을 맞는 심경 등을 재구성했다. <편집자 주>

2000일 전, 그 날.

2008년 2월, 우리는 YTN에 입사했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진실을 찾아내는 ‘돌발영상’의 정신, YTN에서 ‘진정한 기자’가 되고 싶었다. 선배들은 “초심을 잃지 않는 기자가 돼라”고 가르쳤다. 오랜 기자의 꿈을 YTN에서 이루고 싶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그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그 선거캠프에서 특보로 활동하던 구본홍이 신임 사장으로 낙점된 것이다. 선배들은 구 사장을 ‘정권의 낙하산’이라 불렀고, 그 때부터 싸움은 시작됐다.

구본홍 씨는 그해 7월 17일 YTN의 신임 사장으로 낙점됐다. 선배들은 구 사장의 출근을 저지했고 구 사장은 처음엔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선배들을 달랬다. 그런데 구 사장은 곧 표정을 바꿔 선배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해 선배들에게 징계성 인사를 내리고 노조 지도부 선배들을 무더기 고소했다. 선배들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젊은 사원모임’ 선배들은 단식을 하기 시작했고 많은 선배들이 함께했다.

그때 우리는 수습이었다. 입사 2년이 지나야 정식 사원이 돼 노조에 가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다. 선배들이 왜 싸우는지, 우리는 알고 있었다. 수습기간, 동기들끼리 다니면서 회사 로비 앞을 지날 때면 선배들이 싸우는 모습을 봤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냥, 말없이, 죽은 듯 지나갔다.

마음속으로 동참하고 싶어도 얽매여있는 신분이라 동참하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지나야 했던 그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왜 우리는 같은 YTN 기자인데, 같은 문제의식도 공유하고 있는데 같이 못하는가’, 그런 부채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했다. 입사 때 까지만 해도 이런 일에 휘말릴 것이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땐 그냥 시키는 대로, 방송을 메우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 뿐이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혼란스러웠다.

   
▲ 지난해 6월 28일 YTN 해직기자들이 공정방송염원 국토순례를 마치고 남대문 YTN 사옥으로 돌아오자 YTN 직원들이 맞이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그리고 그해 10월 6일, 회사는 6명의 선배들을 해고했다. ‘수습딱지’를 막 떼었을 때다. 메인센터에 공지가 올라왔는데 6명의 선배들 이름 옆에 ‘면직’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옆에 있는 선배에게 물어봤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선배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사태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정황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일 자체가 너무 바빴을 때였다. 워낙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역할이 주어지면 눈앞에 것만 보고 그걸 헤쳐 나가는데 급급한 시절이기도 했다. 어쨌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선배, 파업에 참가한 선배 얘기를 듣다보면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일하면서 정말 참담한 기분이었다. 선배들은 해직된 선배들의 복직을 위해 파업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구멍을 메우려 뛰고 있으니…. 파업이란 것이 회사에 타격을 주기 위해 노조의 힘과 가치를 알리기 위한 건데, 착잡한 마음뿐이었다. 또 한편으로 심하게는 구사대가 된 느낌까지 들었다.

보도국 안에서는 매일같이 선후배들 간에 고성이 오갔고 욕설도 오갔다. 서로 인사도 안하고 몸싸움까지 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난감하기도 했고, 우리가 계속 일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파업에 참가한 어떤 선배들은 ‘너희 때문에 파업한 티가 안난다’고 놀리기도 했다. 그게 농담이라는 걸 알지만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하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닌데, 사실 그 빈자리를 메운다면서 현장에 인력이 없으니 다른 회사 기사를 받아쓰기도 했다. 밖에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 후, 2000일.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선배들이 해직된 지 100일이 지났고, 1000일이 지났고, 5년이 지났고 이제 2000일이 흘렀다. 그 날 이후, 회사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만 같다. 해직된 선배들, 남아있는 선배들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뿐이었다.

2000일이라는 시간, 그 시간이 오지 않길 빌었다. 그 날을 기념하고 싶지 않다. 없어져야 할 기념일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5주년 행사 때도 선후배들끼리 그런 얘기를 했다. “여기 앉아있을 줄 몰랐다”고.

그 사이 YTN의 보도공정성은 참담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배웠던 가치들이 시간이 지나가도 지켜지고 YTN의 중심에서 실천돼야 할 텐데, 그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많은 보도들이 묻히거나 삭제됐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선배들에게 가르침 받았던 ‘기자에 걸 맞는 행동’인지 의심스러워졌다.

지금 YTN은 시대정신을 전혀 담지 못하고 있다. 종편도 나름 이슈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데 YTN은 주변으로 빠져있다. 그게 중도라지만 엄청나게 편향된 중도일 뿐이다. 이제 근로의욕도 떨어지고, 자기방어만 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런 문제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말로는 공정성이 중요하고, 경쟁력이 중요하다면서 실제 중요한 이슈는 침묵 아니면 뒷북이다.

문득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란 말이 생각이 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고 취재를 열심히 해도 정부를 비판하거나 예민한 것은 난도질됐다. 선배들도 동기들도 싸워봤지만 도저히 안됐다. 일부 간부들,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간부들에게 기대할 것도 없다. 지금은 딱 그런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때를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최근 회사에서 홍보영상을 만들면서 초대 앵커였던 우장균 선배의 얼굴을 뺀 것은 너무 치사했다. YTN의 첫 방송, 그것 자체가 역사인데. 우 선배의 얼굴을 지운다고 역사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회사가 그 화면을 용인할 만한 그릇이 아니란 것을, 그래도 짜증나고 치사했다.

이제 YTN은 상암동으로 이사를 간다. 마침 그 시간은 해직기자가 발생한지 2000일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온다. ‘집 나간 아들들이 안돌아왔는데, 가족들이 짐을 싸서 간다’고, ‘남대문에서 해결될 줄 알았다’고. 물론 상암동으로 이사 가면 좋겠지, 좋은 스튜디오에 좋은 장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만 이 좋은 걸 누려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선배 한 분이 해직기자 선배 한 분에게 새로 나온 사원증에 해직기자 선배 얼굴을 넣어 선물하기도 했다. ‘짠’ 했다. 그 출입증, 같이 썼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해직사태가 너무 오래되면서 무덤덤해졌다. 해직자 선배들과 신입기자들 간격도 늘어났다. 이사한다고 콘텐츠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릇만 좋으면 뭐 하겠나, 음식에 맛이 있어야지.

우리가 회사에 들어온 지 어느덧 2000일이 넘었다. 공정성이 무너진, YTN에 들어온 걸 후회하지 않냐고? 후회…. 그래도 후회는 해보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많은 YTN 선배들은 공정방송과 기자의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 해직사태까지 벌어졌음에도 해직기자들과 그들을 위해 떳떳하게 남아있는 노조 조합원 선배들이 버티며 같이 싸우자고 하고 있다.

그런 선배들이 대다수다. 그것이 자랑스럽다. 그 선배들이 있어 시청자들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선배들이 있기 때문에 나도 배우면서 다닌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난 후 2년 뒤, 노조에 가입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해직 2000일 선배들에게, 입사 2000일 후배들이


“우리에게 미안해하지 않길”, “웃는 얼굴로 다시 볼 것”,
“우리보단 선배 걱정을”, “공정방송의 가치로 함께하자”


YTN 해직사태가 발생한 2008년 입사한 YTN 12기들이 해직기자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미안함’이다. 해직기자들을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고도 밝혔다. 따라서 해직기자들이 YTN에 돌아오는 것이 YTN 정상화의 출발점이며 이들이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YTN 해직기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대체로 독립언론에서 언론의 또 다른 텃밭을 가꾸고 있다. 노종면 기자는 국민TV에서 <뉴스K> 방송제작국장으로 활동 중이다. 권석재 기자는 뉴스타파 카메라팀장으로, 정유신 기자도 뉴스타파에서 활약하고 있다.

   
▲ YTN 해직기자. 왼쪽부터 조승호, 우장균, 현덕수, 노종면, 권석재, 정유신 기자.
 
우장균 기자는 해직 후 한국기자협회장으로 활동하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특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승호 기자는 방송기자연합회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덕수 기자는 기자협회 부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대학원을 다니는 중이다.

한 기자는 “해직기자 선배들 중에 가끔 회사에 나오는 분들이 계신다”며 “선배들은 후배들이 미안해하니까 우리를 보는 것도 미안해 하시더라”고 말했다. 이어 “안 그랬으면 좋겠다”며 “지금은 잠깐 회사를 떠나있는 상태라는 마음을 갖고 계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시기의 문제일 뿐, 선배들은 곧 돌아올 것이라고 본다”며 “그때까지는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신 뒤 회사에서 웃는 얼굴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우리 기수는 사실 해직기자 선배들과 직접 일해 본 기수는 아니”라면서도 “하지만 투쟁현장에서 봐 왔기 때문에 멀게 느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며 “밖에서 각자 역할을 하시고 계시지만 우리는 안에서 무기력하게 복직에 도움도 안돼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2000일이란 시간이 결코 짧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 많은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같이 공유하고자 했던 공정방송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그 날이 언제가 됐든 꼭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선배들을 보면 늘 자기 걱정보다 우리 걱정을 많이 한다”며 “지난 2012년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해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대선 후 실의에 빠졌는데 우리를 오히려 위로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 걱정보다 선배들 걱정을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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