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각 방송사에 이른바 ‘낙하산 사장’이 투입되면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장악되기 시작했다. 이후 MBC
등 비판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가 시작됐고 언론사 노동조합들이 이에 맞서면서 이명박 정부 5년 간 언론사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리고 시작된 박근혜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이했지만 공정방송에 대한 위협은 여전하다. 문제는 그 양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 6년 간 정권의 압력이 있었다면 최근 방송사들의 행태는 자발적인 ‘충성 경쟁’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일 열린 청와대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규제개혁’을 명분삼아 공직사회 단속을 강화하고 정치권과 재계에 까지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방송사들까지 이 회의를 경쟁적으로 생중계하고 나선 것이다.

   
▲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이 20일 오후 TV를 통해 생중계된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정권이 밀어붙이는 특정 이슈에 대해, 토론회도 아니고 회의를 생중계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KBS는 회의 하루 전인 19일 오전, MBC는 19일 오후 중계를 결정하는 등 결정도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SBS는 20일 당일에도 편성표에 회의 생중계는 없었다. 방송 방식도 자사 중계가 아닌 KTV의 송출을 받아 중계하는 형태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핵안보 정상회의 출국과 독일 국빈방문이 예정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강조하는 보도를 지상파 방송들이 앞 다퉈 낸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보도 내용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에서 경제개발 차관을 얻어오고 해외 근로 중인 국민들을 울며 위로했다는 업적 홍보에 불과했다.

특히 KBS는 지난 22일 이 같은 보도를 짧게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23일 다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보도했다. 방송계에서는 전날 MBC나 SBS가 KBS에 비해 이 소식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을 방송3사가 생중계 했다는 점도 ‘충성 경쟁’의 사례다.

왜 그럴까? 일각에서는 김종국 전 MBC 사장이 교체된 이후 임기 중반을 지난 길환영 사장도 정권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KBS 내부에서는 길 사장이 이명박 정부 당시 캠프 특보 출신인 김인규 사장에 비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연임을 위해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지상파들이 종합편성채널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종편이 친 정부적 편향보도를 노골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들의 공정보도 의식이 무뎌졌다는 지적이다.

   
▲ 지난 23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 청와대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그동안 지상파에서 ‘박비어천가’ 같은 찬양보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눈치를 봤던 것이 있었다”며 “그런데 최근에는 양으로도 누가 더 많이 하나는 식으로 나오니까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추 총장은 “지금은 지상파에 대해 작은 비판에 머물러 있지만 이제 심각하게 지상파 체제 자체를 검증해야 한다는 비판의 기조가 만들어질 것 같다”며 “지상파 방송들은 종편이 저렇게 해대고 있으니 눈치를 보다가 무뎌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는 “지상파 방송들의 눈치보기는 결국 KBS나 MBC의 경영진 선임구조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하는 것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나아가 정부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공영방송의 임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는 직접 언론사에 사람을 심고 그 사람을 통해 반대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구조화됐다”며 “언론사 내부의 비판적인 세력의 힘이 많이 빠지면서 내부 비판도 줄어들고, 이명박 정부 때의 관행이 구조화 되면서 지상파 방송에 고착화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방송사 내부에서도 ‘충성 경쟁’이라는 지적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권오훈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장은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방송사들의 충성 경쟁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 같다”며 “이제 방송노동자들이 공정방송을 위한 경쟁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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