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 본부)와 KBS 노동조합이 공동행동에 돌입했다. 청와대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 생중계에 이어 다음달 7일 예정된 봄 개편에서 친박 평론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성국씨의 1TV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낙점설 등 KBS의 청와대 눈치보기가 도를 넘어섰다는 양대 노조의 판단 때문이다.

특히 양대 노조는 지난 21일 진행된 3월 정례공정방송위원회를 KBS 사측이 사실상 파행시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이에 24일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피케팅 시위를 진행하며 ‘KBS가 친박방송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50여명의 양대 노조 조합원이 시위에 참석했다.

권오훈 KBS본부 위원장은 점심시간에 진행된 피케팅 시위에서 “선거가 가까워져서인지 길환영 사장의 오만이 도를 넘었다”며 “(본부의) 3대 집행부가 출범할 당시 파업이라는 무기를 아껴쓰려 했지만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려울 땐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길 사장은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고 고성국 MC와 관제 방송화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현진 KBS노조 부위원장도 “공정방송에 노조나 직제를 나눌 필요가 없다”며 “하루 전에 연락을 받아 조합원의 참여가 많지 않았지만 향후 투쟁의지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봄 개편에서 고성국씨의 라디오 MC 낙점을 저지했는데, 이번에 또 막아내지 못하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 24일 정오께 서울 여의도 KBS신관 로비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
사진=정상근 기자
 
앞서 21일, KBS 본부에 따르면 KBS 사측은 정례공정방송위원회에 참석해 KBS 1라디오 개편과 관련해 노사 간 대화를 시작하다 논의를 거부하고 퇴장해 파행시켰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제원 한민족방송부장은 “방송법에 따라 편성과정에서 제작자율성 침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즉 사측의 입장은 공정방송위원회는 방송 이후 해당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놓고 공방이 오가는 자리일 뿐, 편성권은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KBS 단체협약에 따르면 ‘공방위는 공정방송에 관한 편성, 제작, 보도와 관련한 제반사항을 논의한다’고 되어 있다. 편성규약에도 ‘각 본부별 편성위원회에서 조정이나 해결되지 않은 사안은 전체 편성위원회에 상정하며, 전체 편성위는 공정방송위원회가 그 기능을 대신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부장의 발언이 단협과 규약 위반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다.

KBS 노사 공방위는 1라디오 편성 관련 논의를 하다가 고성국 평론가의 MC 낙점에 대한 얘기를 꺼내보지도 못했다. KBS 본부 측 관계자는 이것이 사측의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이 이미 안건으로 상정된 편성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고성국 MC 논란이 거론되기 전에 정회를 선언하고 이후 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KBS 본부는 성명을 통해 “사전 노사 협의로 채택된 안건이 공방위 자리에서 사측의 말바꾸기로 다뤄지지 못한 경우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며 “노사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던 김인규 사장 시절에도 사측이 이런 식으로 공방위를 결렬시킨 경우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고의적으로 공방위를 파행시킨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KBS 본부는 “이번 봄 개편에서 ‘친박 평론가’ 고성국씨를 신설되는 1TV <시사진단> MC로 기용하려는 등 ‘친박 개편’에 대한 회사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자 아예 공방위 자리에서 개편에 대한 논의 자체를 차단하려는 것 아닌가”라며 “편성이 공방위 안건이 될 수 없다는 이제원 부장의 의견이 사측 공식입장이라면 아예 단협을 파기하고 앞으로 공정방송을 입에 담지 마라”고 비판했다.

한편 양대 노조는 24일 공동 피케팅에 이어 길환영 사장에 대한 전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BS 본부는 “이번 공방위 파행은 노사관계에서 사측의 입장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며 “외부에는 길 사장 취임 이후 공정방송의 최소 장치들이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는지 알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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