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 하루 앞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일제히 박 대통령의 독일 국빈방문에 주목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4년 독일 방문 소식을 함께 엮어 전했다.(관련기사 - 아버지 박정희 이어 50년만의 독일방문, 오버하는 언론)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독일 국빈방문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에 독일을 방문해 경제개발 차관을 얻어 왔다는 사실이나 당시 독일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굳이 박 대통령 출국에 앞서 이와 같은 보도를 했다.

그런데, 22일 이 소식을 짧게 전했던 KBS가 23일 또 다시 관련 리포트를 내보냈다. 이번엔 아예 2번째 리포트로 한 꼭지를 따로 떼어냈다. 보도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을 강조하는 내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국빈방문하는 독일은 50년 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 차관을 얻으러 갔다가 파독 광부, 간호사들과 함께 눈물을 흘린 나라로 방문 의미가 남다릅니다.”(앵커멘트)

“1964년 12월 6일,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와 24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독일로 출발합니다. 경제개발에 꼭 필요한 차관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77달러에 불과했던 우리나라는 대통령 전용기가 없어 독일 정부가 민항기를 주선해줬습니다”, “방문 기간 내내 박 전 대통령은 독일 인사들에게 경제 개발 차관을 부탁했고, 주요 기업과 제철소 등을 찾아서는 경제 성장의 비결을 들었습니다. 또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에 대거 파견됐던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났는데 이역만리에서 고생하는 이들의 모습에 일행 모두 눈물을 흘린 것으로 유명합니다.”(기자 리포트)

   
▲ 2014년 3월 23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이 보도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일 국빈방문이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되는 지점은 단 하나다. “마침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반세기가 흘러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의 교훈을 배우기 위해 수행원 150여 명과 함께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독일 땅을 밟게 됩니다”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5년 독일을 국빈방문했을 당시, 노 전 대통령이 ‘통일을 구상한다’느니,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40년 만의 방문이라느니 하는 말은 없었다. 대체로 당시 일본 과거사 문제가 불거진 만큼, 같은 전쟁 주축군인 독일에서 노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일본에 전달할지가 관심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국빈방문에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부녀지간임을 강조하며 부각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차관 대출 등의 업적을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시키려는 의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무리 부녀대통령의 독일 방문이 관심을 끌 만한 뉴스라고 해도, 한 번 했으면 될 일을, KBS는 두 번이나 9시뉴스를 통해 내보낸 셈이다. 왜일까?

지난 22일 보도에서 KBS는 MBC나 SBS에 비해 관련 리포트를 짧게 소개했다. 22일 KBS는 박 대통령의 핵안보 정상회의 출국 소식을 전하며 “박 대통령은 핵 안보 회의에 이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차관을 얻기 위해 찾았던 독일을 50년 만에 국빈자격으로 방문한다”는 수준으로 보도했다.

반면 같은 날 MBC는 “박 대통령은 이어 독일을 국빈 방문한다”며 “지난 1964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차관을 얻기 위해 독일을 찾아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고, 통일의 의지를 밝힌 뒤 50년 만”이라고 보다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를 만나 통일 경험을 공유하고, 드레스덴 대학 연설에서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비전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SBS는 같은 날 <8뉴스>에서 “네덜란드에 이어 독일도 방문하는데 1964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방문 이후 50년 만에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이라며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일 방문 시 육성까지 보도했다.

결국 지난 청와대 규제개혁 점검회의 생방송을 두고 KBS부터 시작해 방송사들이 전격적으로 해당 회의를 생중계 편성한데 이어 이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 부각에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나선 모양새가 됐다. 언론사들의 충성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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