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장관 및 기업인 등 1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열었다. 지상파 방송들은 이날 이례적으로 청와대 회의를 2시간여에 걸쳐 생중계했는데, 이들은 이날 저녁 뉴스에서도 해당 소식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기업활동 관련 규제를 전면 개혁하겠다고 선포했다. 아직 청와대가 구상하는 규제개혁의 그림이 그려지진 않았지만, 문제는 경제정의와 관련된 제도도 도매금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들고 나왔지만 기업들의 경제활동을 위해 규제를 개혁하겠다는 것은 이와 배척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이날 지상파 뉴스는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강조하며 규제를 타파하는 것만이 한국경제 모순 해결의 알파와 오메가란 식의 보도를 이어갔다. 물론 규제개혁의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구색 맞추기에 수준이다.

KBS는 <뉴스9>에서 톱기사부터 6개의 리포트를 다뤘다. 첫 리포트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온전히 소개했고 두 번째 리포트는 박 대통령의 규제개혁 의지에 따른 정부 부처의 대처방안을 소개했다. 세 번째 리포트는 회의에서 나온 기업인들의 주장에 관계부처 장관들이 땀을 흘렸다는 내용이다.

   
▲ 2014년 3월 20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그리고 네 번째 리포트는 또 다시 회의에서의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내용을 소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다섯 번째 리포트다. KBS는 다섯 번째 리포트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국민과의 소통 사례를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정책에 따라 기업·소상공인을 모아놓고 일종의 소원수리를 듣는 과정을 KBS는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의미부여한 것이다.

규제개혁의 어두운 단면은 여섯 번째 리포트에서야 나온다. 그나마 규제개혁 얘기를 하다 마지막에 ‘규제를 없앨 때도 부작용은 없을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수준이다. KBS는 앞서 철폐해야 할 규제를 언급하면서 삼성 불산 누출사고 후속조치로 나온 ‘화학물질 관리법’을 예로 들기도 했다.

20일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장장 4시간짜리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시작하며 의원 입법을 통한 규제가 양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정부가 국회 활동에 개입해 국회의 입법권을 제약하겠다는 초헌법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고, “규제개혁이 결국 대선 때 철썩 같이 약속했던 경제민주화를 포기하고, 재벌기업들의 소원 수리를 들어주겠다는 거짓의 정치를 숨기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야당 반론을 KBS는 보도하지 않았다.

   
▲ 2014년 3월 20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MBC도 비슷하다. MBC는 이날 <뉴스데스크>에서 6개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MBC는 관련 이슈 마지막 리포트에서 “어떤 규제가 암덩어리인지, 규제를 남겨두는 것이 푸는 것보다 정말 이익인 것인지, 정확한 진단과 함께 과감한 처방이 요구되고 있다”고 보도했을 뿐, 나머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하는데 급급했다.

공영방송들은 청와대 회의를 이례적으로 생중계 한 것도 모자라 뉴스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깊이 있는 분석 대신 박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할 뿐이었다. KBS, MBC는 각각 6개의 리포트 중 아주 작은 부분만 할애해 피상적으로 우려점을 짚었다. 그나마 ‘잘 하라’는 것일 뿐, 본질적인 경제민주화 공약 파기에 대한 문제도 짚지 않았다.

이는 KBS나 MBC가 정권의 홍보방송으로 전락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정애 민주당 대변인은 21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어제 KTV 정책방송이나 할 법한 6시간, 7시간 생중계가 KBS를 비롯한 여러 언론매체에서 편성됐다”며 “종박방송이라고 불릴법한 파격적이고 전례없는 정권 홍보방송이 여과없이 흘러나갔다”고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특히 KBS는 정권의 홍보방송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더 이상 국민에게 수신료 올려달라는 후안무치한 생떼는 쓰지 않기를 바란다”며 “지금의 수신료라도 계속 받길 원한다면 노골적인 정권 홍보 편파 방송을 내보내는 전파낭비를 다시는 시도해선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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